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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경남뉴스 기자들이 푸는 미주알고주알] 속담에 '초겨울이 따뜻하면 1월에 심한 한파가 오기 쉽다'는데

정창현 기자 승인 2023.12.17 18:39 | 최종 수정 2024.01.28 13:58 의견 0

미주알고주알 어원이 흥미롭습니다. 미주알은 '창자의 끝 항문'을 뜻하는데, 미주알고주알은 '미주알'에 '고주알'을 합친 말입니다. 어문학계는 고주알이 미주알과 운을 맞추기 위해 덧붙인 말로 해석합니다. 창자 밑구멍의 끝인 미주알은 '눈으로 보기 어려워 숨은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 말하거나 캐묻는 것'을 뜻합니다. 더경남뉴스 기자들이 숨은 기삿거리를 찾아 '사랑방 이야기식'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겨울 텃새인 참새들이 눈 내린 전깃줄 위에 다소곳이 앉은 모습. 추워보인다. 지난 2월 내린 한겨울 함박눈이 빚어낸 경남 진주시 진성면 구천마을의 아침 풍경이다. 정창현 기자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한파특보(주의보와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요즘은 잘 안 쓰는 '동장군'이 공격하는 형국입니다. 기상청은 이번 급습 한파가 오는 22일까지 이어진다고 하네요.

멀리 갈 것 없이 1주일 전인 지난 10일(일요일)은 '춘사월'의 봄 날씨 같은 이상고온으로 외투를 벗어 들고 반소매 옷만 입거나 심지어 바닷에서 물놀이 하는 풍경까지 봤습니다.

스위스,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눈이 완전히 녹아 한창 붐벼야 할 스키장이 휑하니 비어 있다는 전갈입니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외곽의 스키 리조트인 '나바세라다'에는 눈이 아닌 푸른 풀이 나 있다더군요. 이를 두고 현지에선 "(기후 변화에) 무서운 기분마저 든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지구가 폭발하는 날이 올 것만 같은 무서움입니다.

인간 세상이 배출하는 탄소로 인한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나 외국의 날씨 변덕이 하늘을 찌릅니다. 더 잦아들었지요.

이래서 이번 [더경남뉴스 기자가 푸는 미주알고주알]에서는 [농사 속담 탐방] 코너에 쓸만한 겨울 추위 관련 속담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초겨울이 따뜻하면 1월에 심한 한파가 오기 쉽다'는 속담입니다.

기자의 어줍잖은 날씨 상식으로는 '겨울엔 강하고 차가운 시베리아기단이 한반도로 세력을 확산해 춥다'고 압니다.

그런데 올해만 봐도 날씨를 종잡을 수 없습니다. 며칠간 춥다가 초여름 기온(30도)이 되는가 하면 이제 초강력 추위(영하 17도)가 다가섰습니다. 널을 뛰는 기분입니다.

앞의 속담과 달리 거꾸로 '초겨울이 춥고 한겨울이 따뜻하면 늦추위가 오기 쉽다'는 속담도 있군요.

날씨를 포함한 기상에 관해 깊지 않게 소개해봅니다.

끊이지 않고 변하는 기상은 그날그날의 날씨 추이(흐름)를 만드는 게 기상과학의 이치입니다. 이런 이유로 겨울인데도 한때 엄청 따뜻하거나 추우면 그 다음 이어지는 시기엔 완전히 거꾸로 되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이겠지요.

우리나라 겨울철 날씨를 말할 때 '삼한사온(三寒四溫)'을 듭니다. 3일간 춥고 4일은 따뜻하다는 뜻인데, 겨울의 정석처럼 쓰여왔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겨울철에 주로 나타나는 날씨 현상이지요.

한반도의 겨울 날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베리아기단인데, 이 기단의 세력이 강해지고 약해지는 과정이 대략 7일 단위로 반복된다는 경험치에서 나온 것이지요. '삼한사온'이란 말을 만든 옛 시절에 과학적인 기상데이터를 내는 기상청과 같은 기관이 있을리 만무해 농사와 연관시킨 경험으로 만들어진 단어이겠습니다.

한반도 먼 북서쪽 시베리아에는 바이칼호수가 있습니다. 바닷물처럼 짜지 않는 담수호입니다.

바이칼호에서 만들어지는 겨울철 시베리아기단이 편서풍(남서풍)을 타고 한반도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세력을 확장하면 한파가 닥칩니다. 하지만 시베리아기단이 따뜻한 남쪽 기단과 마주쳐 세력이 조금 약해지면 한반도의 날씨가 상대적으로 따뜻해지고 눈도 많이 오곤 합니다.

참고로 바이칼호는 길이 636㎞, 평균 너비 48㎞로 면적은 남한의 1/3이나 됩니다.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거리가 380km입니다.

바이칼호(중간) 위치. 구글 맵

시베리아기단 말고도 한파 원인은 또 있습니다.

강한 '음의 북극진동'인데, 이로 인해 지난해까지 3년간 겨울철 라니냐 현상이 지속돼 한파가 발생했었습니다. 엘니뇨 현상과 반대 개념인 라니냐 현상이 발생하면 우리나라 동쪽에서 저기압이 발달해 차고 건조한 북풍 계열의 공기가 강하게 들어옵니다.

이유는 12월 북반구에는 음의 북극진동이 한달 내 강하게 지속되면서 우랄산맥 부근에서는 블로킹(막음) 현상이 발달하고 우랄산맥의 풍하측(바람이 불어 나가는 방향)인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 지역으로 찬 북풍이 자주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양의 북극진동(왼쪽)과 음의 북극진동(오른쪽) 개념 모식도. 부산기상청 제공

그런데 삼한사온의 말이 근자에는 쏙 들어갔습니다.

요즘 겨울 날씨가 하도 변화무쌍해 잘 쓰지 않는 듯합니다. 실제 기상청의 예보에도 이 단어를 찾기 어렵습니다. 과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기상청이 삼한사온의 단어를 잘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1년 어느 방송국은 기상청의 자료를 기반으로 한반도 겨울철 '삼한사온 현상'이 십수 년 동안 사라졌다고 보도를 했는데, 1년 후 겨울에 삼한사온 현상이 정확하게 나타나 어리둥절하게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중·후기에도 삼한사온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글들이 있습니다. 조선 중기인 효종 2년(1651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했던 김상헌이 “작년의 기후가 무척 추워 삼한사온이라는 말은 역시 믿기 어렵다”는 글을 쓰는 등 삼한사온 현상이 맞지 않았다는 글이 많았습니다.

‘제트 기류(Jet Stream)’도 삼한사온 현상에 큰 영향을 줍니다. 제트 기류는 북반구 중위도 지역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는 강한 바람인데, 바이칼호에서 형성되는 시베리아기단과 만나면서 기상 여건을 바꾸는 것이지요.

시베리아기단과 남쪽의 온난한 공기가 만날 때, 온도 차가 크지 않으면 제트 기류는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사행(蛇行)'이라고 하는데 시베리아기단의 영향 강도에 따라 한반도 겨울철 기온이 좌우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그나마 우리나라는 사계절 가운데 겨울철의 기후 변화가 그중 규칙적이어서 삼한사온이란 틀이 탄생하고 자리한 것으로 봅니다.

아무튼 더 깊이 들어서는 것은 여기서 멈추고 날씨와 농업과의 관계를 알아봅니다.

천수답(天水畓·비에 의존하는 논)이란 말이 있듯이 기상 즉, 날씨는 쌀 농사 중심(농자천하지대본)이던 당시의 실물경제엔 절대적이었습니다.

혹자들은 겨울철이 가을 추수가 끝나면 푹 쉬는 농한기인데 뭐가 큰 문제냐고 하겠지만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은 한파가 몰아치면 두둑한 외투 등 옷차림과 수도관 동파, 도로 결빙 등을 걱정합니다만 농업이 주된 옛시절엔 다음해 봄철 농삿일에 큰 신경을 씁니다. 겨울철 날씨는 다음 봄철 농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에 매우 중요했지요.

우선 벌레와의 관계입니다.

벼 등 곡식들을 수확한 논둑과 밭둑의 풀숲 밑에는 벌레, 즉 병해충들이 겨울철 동면을 합니다. 요즘엔 산불 우려에 못 하지만 이른 봄에 논둑과 밭둑에 불을 놓는 것이 이런 이유입니다. 그런데 맹추위가 닥치면 얼어죽습니다.

또한 요즘엔 비닐하우스 재배가 일반화돼 있고, 축산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각종 시설 채소와 소, 돼지, 흑염소 등의 추위 관리도 꼼꼼히 신경써야 합니다.

바다 양식업은 날씨에 더 민감합니다. 혹한으로 수온이 적정 이하로 양식 고기들이 얼어죽습니다. 기상예보에 귀를 곤두세우는 것이 이래서입니다.

어민들이 한파로 해상 가두리양식장에서 동사한 어류를 걷어내고 있다. 해양수산부 제공

요즘의 농어촌은 전통 농어업을 하던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가꾸는 대상만 많이 달라졌지 신경을 써야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오히려 농어업이 산업화·대규모화 돼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합니다. 피해를 입으면 그 규모가 엄청 큽니다.

요즘엔 날씨 변화를 보면 종잡기 아주 힘듭니다. 늦가을부터 하루 기온이 전날보다 10~15도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게 경험을 합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경우 당연히 겨울은 매섭게 추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물질문명의 편리함이 일상화하면서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현상이 뚜렷해졌습니다.

예전 어르신들은 "겨울은 겨울 다워야 한다", "겨울은 추운 맛이 있어야지"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겨울 맛이란 강원 화천 지방의 산천어축제 맛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처럼 한반도의 사계절은 모든 생물이 기후 여건에 맞춰져 있습니다. 꽃은 봄에 피어야 하고, 열매는 가을에 맺어야 하는 것이지요.

아무튼 요즘 한반도의 날씨는 주일 내지 보름 간격으로 급한 요동을 친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요즘 사람들에겐 너무 추운 겨울은 호감스런 계절은 아닌듯합니다. 손가락을 입김으로 호호 불며 얼음치기를 하던 일은 특정 세대의 추억이고, 요즘엔 나에게 이롭냐 아니냐란 현실의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인간이 벌레보다 더 날씨 변화에 민감해졌습니다. 역설적으로 기상과 한판을 뜨지 않아 '인간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봐도 되겠지요.

속담 '초겨울이 따뜻하면 1월에 심한 한파가 오기 쉽다'는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이어진다거나 나쁜 일이 있으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온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요즘의 기후 변화가 지구온난화가 주범인지, 5대양6대주를 오가는 대류의 문제인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상들이 쌓은 경험으로 만든 속담이 맞아떨어지는 시대가 됐으면 합니다. 변화의 폭이 큰 돌발변수가 적어져 생활이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한다"는 말처럼 극한 추위가 닥쳐도 '겨울이 춥다'면 예측 가능한 대처를 잘 할 수 있습니다. 겨울을 겨울답게 안전하게 즐긴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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