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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경남뉴스 기자들이 푸는 미주알고주알] 큰스님 '자승' 입적에 다시 관심 끈 '이판사판 공사판'···유래 봤더니

정기홍 기자 승인 2023.12.05 11:05 | 최종 수정 2024.09.15 21:08 의견 0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스님(69)이 지난 29일 오후 6시 50분쯤 경기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칠장사 화재로 입적(入寂·스님 사망)을 했습니다.

자승은 스님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사판승(事判僧)'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판승이란 불교 용어로 '사찰 사무를 보는, 즉 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스님'입니다. 사판승과 대비되는 '이판승(理判僧)'이 있는데 이는 '속세를 떠나 수행만을 하는 스님'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스님(69)의 영결식이 열리기 하루 전인 2일 밤 늦은 시간에 영정을 봉안한 조계사 대웅전 모습. 자승은 지난 29일 오후 6시 50분쯤 경기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칠장사 화재로 입적(入寂·스님 사망)을 했다. 정기홍 기자

이판승과 사판승을 서두에 꺼낸 이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말하는 '이판사판(理判事判)'이란 말 때문입니다.

이판승과 사판승 둘을 합치면 이판승사판승(理判僧事判僧)이 되지요. 여기에서 그 유명한 '이판사판(理判事判)'이 태어납니다.

한자의 훈(한자의 음 앞에 풀이한 뜻)과 음(音)은 '다스릴 리(理), 판단할 판(判)'이고 '일 사(事), 판단할 판(判)'입니다.

이(理)는 이치나 도리를, 사(事)는 이에 상대되는 말로 일이나 사무를 뜻합니다.

굳이 둘을 합쳐 풀이하자면 '이치를 공부하고, 일을 처리한다'는 뜻이 되겠네요.

'이판승'과 '사판승'을 조금 더 알아봅니다.

이판승은 사물의 원리와 법칙을 중시해 공부, 즉 참선을 통한 수행만 하는 스님입니다. 모름지기 승려(일반 스님을 이름)는 속세와 인연을 끊고 깊은 산중에서 경전 공부와 참선을 통해 부처의 가르침을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스님이지요.

반대로 사판승이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일, 즉 사무를 중시하는 스님을 말합니다. 살림을 도맡다 보니 참선을 조금 덜 합니다.

다음은 이판승과 사판승이 구분된 유래입니다.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시대엔 다른 생각이나 행위 없이 수행만 하면 되는 이판승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모든 의식주는 나라에서 지원되고 시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이판승과 사판승 제도를 구분해 부른 것은 억불책(抑佛策)으로 승려(일반스님을 말힘)들이 천인 대우를 받았던 조선 후기였습니다.

아다시피 조선은 숭유억불(崇儒抑佛·유교 숭상, 불교 억압) 정책을 해온 왕조입니다. 당시의 승려들은 천민 대우를 받으면서 관(官)이나 유생(孺生·유교를 배우는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기름과 종이, 신발을 만드는 잡역(雜役)에 종사했습니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핍박하던 조선시대엔 사찰의 살림살이가 팍팍해 이런 하찮게 여기던 일도 사찰을 건사하는 데 매우 중요했지요. 참선하는 스님도 때거리가 있어야 수행을 할 수 있겠지요.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찰은 폐사(廢寺)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래서 사찰에서 사판승이 득세하는 여건이 만들어졌지요.

수행에 전념하는 이판승은 사찰의 사무나 여러 역임(役任)에 종사하는 것을 불명예로 여기고 시끄러움을 피해 산중의 사암(寺庵), 즉 절이나 암자로 가고 반면 사찰을 운영하고 사무(寺務)를 관장하는 사판승이 자연스레 생겨나 세를 넓힌 것입니다.

다만 사판승은 빠듯한 사찰 운영에 신경을 쓰면서 참선(參禪)이나 간경(看經) 공부를 할 기회가 줄어 참선과 거리가 멀어져 설법(說法·불교의 교리)에 무지하게 됐고, 공부와 담을 쌓은 범승(凡僧)이 많았습니다.

사판승이 본연의 수도를 외면하고 사원 운영에만 몰두한 것은 수행 불자로서의 진정한 자세는 아니지만, 당시 위정자와 유생의 횡포에 짓눌린 교단(敎團)을 유지해 불법을 전할 수 있게 한 것은 사판승의 큰 공로입니다.

사판승들은 500년 조선시대에 관가의 주구(誅求·관청에서 백성의 재물을 강제로 뺏음))와 잡역, 사회 천대 속에서 잡역과 모멸을 감당해 내고 견디며, 사찰 재산을 확보해 사찰의 황폐를 방지하고 교단의 명맥을 유지시켰던 것이지요.

사판승은 저잣거리에 나아가 탁발을 하며 때론 선비들에게 얻어맞거나 관가에 고발당해 고초를 겪는 등 갖은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찰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나 큰 행사가 있을 땐 좋으나 싫으나 모두가 모여야 하지요. 즉 이판승과 사판승이 자리를 함께해야 합니다.

하지만 때론 양측은 대립을 심하게 하고 서로를 비난하기도 했겠지요. 수행만을 하며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이판승이 "부처를 따르는 수행에 있어 모든 격식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하면 사판승이 "먹고 지낼 돈이 어디서 나오냐"고 하는 식이었겠지요.

여기서 이판승과 사판승이 모여 중요한 결정을 하는 일을 '대중공사(大衆供辭)' 또는 '대방공사(大房供辭)'라고 하는데 이를 줄여 공사(供辭)이라고 합니다. 공사를 풀이하면 이바지할 공(供), 말씀 사(辭)로 '말을 서로 받들고, 일반 대중에게 도움이 되는 말'입니다.

양쪽 스님들이 모여 '대중공사'를 하는 한자어를 이판사판에 붙이면 '이판사판 공사판(吏判事判 供辭判)'이 됩니다. 이를 줄여서 '이판사판(吏判事判)'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양측이 물러서지 않고 다투면 대책이 없습니다. 불법 수행에 정진하는 이판승이 정도이지만 사찰이 망하지 않게 한 공로도 엄청나지요. 양측의 주장이 평평하게 맞서면 해결책을 도출하긴 난망합니다. 아니할 말로 모든 것을 나누자는 종교인이 의외로 고집이 셉니다. 역사적으로 '종교 전쟁'은 가장 길고 잔혹했다고 평가합니다.

따라서 이판사판이란 뜻은 선택의 기로에 서 선, 즉 막다른 골목에 몰려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하는 데 사용합니다.

우리가 자주 말하고 듣는 말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이판사판이다"가 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말이 있지요.

자주 말하는 "이판사판 공사판"인데, 여기서의 공사판을 건물을 짓는 등의 '공사판'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저잣거리에서 말하는 '난장판'의 뜻이 아닌, 정 반대의 뜻입니다.

여기서의 '공사(供辭)'란 '함께 받든다'는 뜻이며 뒤에 판(判)을 붙인 겁니다. 판(判)은 '대중이 모여 있는 자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이판승과 사판승이 한방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고 대책을 세우고 앞일을 설계하는 자리가 바로 '이판사판, 공사판'입니다.

여기까지 '이판사판'과 관련해 유래와 의미 등을 짚어봤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금의 고찰(古刹·오래된 사찰)들이 유지되고 불교가 종교로서의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사판승들의 눈물어린 고초로 절의 살림이 유지될 수 있었고, 또한 깊은 산중에서 참선과 경전 공부를 하는 이판승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금의 불교의 정신과 문화는 '혼돈의 시대'에 커다란 정신적 자산입니다.

'이판승'과 '사판승'은 한쪽이 없으면 안 되는 수레의 양바퀴와 같은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지요.

덤으로 알아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일제 때부터 광복 이후 한동안 사중(寺中·절 안)에서 이판승과 사판승의 이해 관계처럼 비구승(比丘僧·출가해 구족계를 받은 남자 승려)과 대처승(帶妻僧·결혼을 하고 고기도 먹는 승려) 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비구승을 이판승, 대처승을 사판승의 연장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이는 출가한 비구승이 계율을 준수하면서 수행에 몰두하는데 비해 대처승은 처자를 거느리고 사찰의 살림살이나 경제적 유지에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이들과 조금 다른 뜻이지만 사찰에는 일을 차례대로 한다는 차서(次序)란 게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서열과 차례란 뜻인데, 위와 아래가 정해지면 윗자리를 상판(上判), 아랫자리를 하판(下判)이라 부릅니다.

대표적인 사판승으로 불리던 자승스님의 입적을 계기로 '이판사판'의 유래 등을 미주알고주알처럼 알아봤습니다.

조계종이 자승스님(69)의 영결식을 종단장으로 치른다고 조계사에 경내에 붙여놓은 안내문. 정기홍 기자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념과 세대 등에서 심각한 이분화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정치는 국민은 온데 간데 없이 날선 칼만 휘둘러 삭막하기 그지 없습니다. 국민의 삶을 논하는 정치는 앙칼진 언변으로 삿대질만 난무하고 국민도 사사건건에서 양분화돼 분위기가 사뭇 음산합니다.

걱정거리를 크게 짊어진 지금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불교 말인 '이판사판 공사판'처럼 공론의 장을 크게 펼쳐 논의 과정은 시끄럽더라도 합의된 결론들을 생산하고 도출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다음은 '이판사판 공사판'에 이어 불교용어인 '아수라'로 썰을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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