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경남 밀양 홍제사에 있는 표충비 14~15일 또 땀 흘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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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7 20:13 | 최종 수정 2024.02.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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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 홍제사 경내에 있는 표충비가 지난 14~15일 물(땀)을 흘려 관심을 끌고 있다.
홍제사는 표충비가 14일 오후 3시 30분쯤부터 15일 오전까지 10시간이 넘게 땀을 흘린 것으로 확인했다.
검은색 대리석으로 높이가 3.8m인 표충비는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로,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조짐을 알려주는 비석으로 알려져 있다.
표충비는 앞면에 사명대사의 행적과 임진왜란 때의 활약상을 담았고, 뒷면에는 서산대사와 제자 영규의 사적을 기록했다. 측면에는 사명대사의 사당인 표충사의 사적기를 적어놓았다.
표충비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처음 땀을 흘린 후 지금까지 국가적인 큰일이 있을때 땀을 흘여와 유명세를 타고 있다. 1910년 한일강제합방, 1919년 3·1운동, 1945년 해방, 1950년 6·25전쟁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 때만다 비석 표면에 땀을 흘렸다.
3·1운동 때는 5말 7되(100리터)를 흘렸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나 이명박 정부 당시 수입 쇠고기 파동 때 땀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석의 안과 밖의 기온차로 인해 물방울이 맺힌 것, 즉 결로현상"이라며 국가적 큰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부정한다.
이들의 주장은 겨울에 비석 내부가 차갑게 냉각돼 있다가 봄에 날이 풀리면서 주위의 수분이 응결돼 나오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차가운 표면에 따뜻한 수증기가 만나면 이슬이 표면에 생기는 건 자연의 이치라는 주장이다. 표충비가 있는 곳은 습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홍제사는 조선 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한 사명대사(유정)를 기리는 표충사당과 표충비각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수호사찰이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후 일본에 가 협상 끝에 우리의 포로 3천여 명을 데리고 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간의 연혁은 자세하지 않으나 밀양시 무안면에 표충비가 세워진 1742년(영조 18) 사명대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사명대사는 1544년(중종 39) 무안면 고라리에서 출생해 13세에 출가했고 18세에 승가에 급제했다. 이어 금간산에 들어가 서산대사에게서 배웠고, 합천 해인사에서 입적했다.
무안면에는 사명대사가 창건한 백하암이 있고, 홍제사는 사명대사가 입적한 뒤 백하암에 세웠던 표충사의 후신이다.
홍제사는 밀양시가 추진 중인 사명대사 성역화사업의 중심이며 국가의 중대사나 위기 때마다 표충비에서 땀이 흘러 '땀 흘리는 비'를 지키는 사찰로 전국에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