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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이야기] 흰쌀밥 같아 보릿고개 넘겼다는 이팝나무-조팝나무꽃

정창현 기자 승인 2024.05.04 20:54 | 최종 수정 2024.05.06 17:48 의견 0

더경남뉴스가 '꽃 이야기' 코너를 만듭니다. 꽃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꽃에 침 뱉으랴'는 말도 있습니다. 꽃을 유독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요. 다만 지천의 꽃에 관해 아는 사람이 드문 것도 사실입니다. 꽃의 성질은 물론 전해지는 야사(野事), 약초로서의 효능 등을 종합하겠습니다. 꽃 농사는 원예업으로, 농업을 중시하는 본 매체의 성격에도 맞은 연재입니다. 많은 애독을 바랍니다.

5월 2일 찍은 이팝나무꽃 자태. 정기홍 기자

지난 4월 10일 활짝 피기 전 조팝나무 모습. 정기홍 기자

싱그러운 5월이다. 초봄부터 피던 1~2세대 봄꽃들이 저물고 튜울립 등 3세대(늦봄~초여름)의 꽃들이 활짝 피어 바통을 터치했다.

요즘은 집 주위나 도로가에 눈처럼 하얀 꽃이 소담스럽고도 은은하게 피어 있는 나무를 어렵지 않게 본다.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다. 모내기철에 피어 들로 오가는 길가가 화사하다.

이팝나무는 4월부터 햐얀 눈처럼 꽃을 피운다고 해서 '사월설(四月雪)', 조팝나무는 5월에 핀다 해서 '오월설(五月雪)'로 불리지만 요즘은 개량종들이 나와 시절이 대중없고 두 꽃이 한꺼번에 피는 듯하다.

초봄에 피는 벚꽃처럼 하얀 자태가 닮았지만 느낌은 분명 다르다. 나무에 흰 구름이 덮여 있는 듯해 특히 보기가 예쁘다. 우리의 정서에도 맞다.

'키 큰 나무'(이팝나무)와 '울타리 같은 나무'(조팝나무)에서 각각 피어 멀리서 꽃만 보면 비슷해 좀 헷갈린다.

먼저 이팝나무 꽃이다.

꽃이 쌀밥같이 보여 '이밥나무'라고 하다가 이팝나무가 됐다고 한다. 절기 입하 무렵에 가장 아름답게 핀다고 해서 입하 발음이 연음이 돼 이팝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한자 이름은 유소수(流蘇樹)라고 하는데 유소(流蘇)는 깃발이나 가마, 옷 등에 매듭짓게 꼬아서 다는 술을 말한다. 또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 무렵에 가장 아름답게 핀다고 해 입하수(立夏樹)라고 불린다. 차로 마실 수 있어 차엽수(茶葉樹)라고도 한다.

조팝나무보다 키가 훨씬 크다. 라일락꽃 정도는 아니지만 꽃 향기도 있다.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 한때는 집 조경수 정도로 심었으나 십 수 년 전부터 각 지자체에서 가로수로 많이 심어 요새는 가로수 정취를 한껏 드러내는 곳이 많다.

흰 꽃이 20여 일간 나무 전체에서 핀다. 따라서 이른 봄을 화사하게 바꾸는 벚꽃과 비교된다. 나무의 키도 엇비슷하다.

대체로 벚꽃은 화려한 흰색인 반면 이팝나무는 은은한 흰색으로 대별한다. 즉 벚꽃은 10~20대 아가씨가 빼입을대로 빼입은 화려한 자태라면, 이팝나무는 40~50대 여인네가 새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볼 수 있겠다.

이팝나무는 번식이 쉽지 않아 삽목(접 붙임)이 잘 안되고 종자는 이중휴면을 해 두 해를 지나야 겨우 발아된다.

오래 살아 천연기념물로 등재된 나무도 있다.

전국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는 8주로 알려져 있다. 200~500년 된 노거수도 20여 주가 된다고 한다.

전남 순천시 쌍암면에 있는 500년 정도 된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36호)가 국내에선 가장 오래된 나무로 친다. 전북 군산시 어청도와 경북 포항에는 꽤 넓은 이팝나무 군락지도 있다.

다음은 조팝나무 꽃이다.

미인이 미소를 지을 때 드러나는 보조개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소엽화(笑靨花)’라고 한다. 꽃말은 단정한 사랑이거나 헛고생, 헛수고, 하찮은 일 등이다.

키가 큰 이팝나무(교목)와 달리 1~2m 높이의 관목으로 개나리처럼 줄기 형태로 산과 들에서 많이 자란다. 울타리, 도로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정원이나 공원에 심어 몇 해만 지나면 가는 줄기가 많이 생겨 수형이 자유롭고 균형이 잡혀 꽃과 함께 조경적 가치가 큰 나무다. 이 줄기를 따라 길게 흰꽃들이 개나리처럼 다닥다닥 붙어 무리지어 안개꽃처럼 핀다. 개화 기간도 길다.

요즘에는 꽃과 잎 모양, 개화 시기 등을 달리한 개량 품종들이 나와 있다. 개화 시기로만 보면 4, 5월 조팝나무를 시작으로 공조팝, 꼬리조팝, 황금조팝, 삼색조팝 순으로 핀다.

이 가운데 공처럼 둥글게 뭉쳐서 피는 공조팝은 꽃 모습이 가장 풍성하고 오래 동안 피어 조경용으로 인기있다.

꽃잎 모양은 자세히 보면 이팝나무와 확연히 다르다.

이팝나무는 뾰족하고 긴 잎이 4쪽으로 핀 형상이지만 조팝나무 꽃은 5쪽에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언저리가 몽글몽글하다. 가까이서 보면 변별되지만 멀리서 보면 둘 다 흰 쌀밥과 같아보인다.

조팝나무 이름은 꽃 모양이 조로 지은 밥인 조밥처럼 생겨 '조밥나무'라고 불렸는데 조 뒤에는 발음상 'ㅎ'이 덧나 '조팝나무'라고 한다. 달리 꽃이 흰 쌀밥에 좁쌀을 튀긴 것 같다고 해서 붙였다고도 한다.

튀긴 좁쌀도 못 먹던 시절 보리 수확 전인 4~5월 보릿고개에 얼마나 배 고팠으면 꽃을 보고 밥풀과 같다고 했을까 싶다. 역설적인 해석이다.

우리의 산야에선 잎이 둥글고 흰 쌀밥을 수북이 그릇에 담아 놓은 것처럼 많은 꽃을 피우는 산조팝나무가 많다. 간혹 진분홍색 꽃을 피우는 꼬리조팝나무도 볼 순 있다. 꽃겹으로 된 기본종은 일본산이며 관상용으로 심는다.

조팝나무 번식은 분주 또는 삽목을 해도 되고, 가을에 종자를 따 놓았다가 이끼 위에 파종하면 된다.

조팝나무는 '환경정화수'이기도 해 도로변 등에 심기를 권장한다. 오염에 강하고 미세먼지를 줄여주고, 꽃이 진 뒤 잎이 나오면 반대편 차선의 빛을 차단해주기도 한다.

따라서 정원수나 공춴수, 가로수로 좋은 나무다.

가을이면 콩 모양의 보랏빛이 도는 타원형 열매가 열린다.

좁쌀 같은 햐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 이팝나무 자태. 정기홍 기자

이처럼 두 나무의 꽃은 배 곪던 옛날 보릿고개에 항시 비유된다. 이팝 꽃은 흰쌀밥처럼 생겨 입에 풀칠하기 힘들던 옛날엔 이팝나무를 보며 가을 쌀 풍년을 기원했다고 한다.

보릿고개는 6월 보리 수확 전 때거리가 없어 소나무 껍질과 물로 배를 채우던 시기를 말함이고, 풍년은 가을 수확을 준비하며 모내기를 하거나 보리가 익어 수확을 앞둔 철을 의미한다.

이팝나무가 습기를 좋아해 꽃이 활짝 피면 여름철 가뭄 없이 풍년이 될 것으로 점쳤다고 한다. 천수답이 많았던 옛 농부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터득한 지혜이다.

또한 두 나무 꽃이 필 때는 못자리를 하는 철로 꽃이 화사하게 핀다는 것은 가물지 않고 비가 적당히 왔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두 나무는 생활에서 활용한다.

조팝나무의 경우 새눈은 나물로 먹고 뿌리엔 살리실산이 함유돼 해열·진통을 수렴하는 효능이 있어 한방에선 감기로 인한 열, 인후통을 치료하고 몸이 쑤시고 아픈 신경통 증상을 잡는데 이용한다.

이팝나무도 어린 잎을 말려서 차를 끓여 마시고 살짝 데쳐서 나물로 먹는다.

조팝나무의 뿌리는 상산 혹은 촉칠근이라 하는데 동의보감에 '맛은 쓰며 맵고 독이 있으나 학질을 낫게 하고 가래를 토하게 할 뿐 아니라 열이 심하게 오르내릴 때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말라리아에 걸리거나 구토할 때 또는 열이 많이 날 때 민간 치료 약으로 뿌리나 줄기를 썼다고 전한다.

조팝나무에 있는 살리실산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의약품 ‘아스피린(Aspirin)’의 원료다. 살리실산 성분은 진통·해열·소염에 잘 듣는다.

독일 제약사인 바이엘은 지난 1893년 진통제 아스피린을 개발할 때 조팝나무에서 추출한 살리실산과 아세틸을 합성한 물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기존엔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해 사용했는데 맛이 너무 써 위에 부담을 주는 단점이 있었다.

아스피린 이름은 '아세틸(Acetyle)+스피리어(Spiraea)'를 합성한 것이다. 조팝나무 잎에서 합성한 아세틸살리실산의 ‘A’와 조팝나무의 스피리어(Spiraea)의 Spir에서 따왔다.

중국에서는 조팝나무를 수선국이라고 한다. 부르게 된 전설이 있다.

어느 마을에 수선이라는 효성이 지극한 처녀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갔다가 적군에게 잡혀 감옥에 갇힌다. 수선은 아버지를 구하려고 남장을 하고 적군에 들어가 감옥을 지키는 옥리가 됐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통곡하다가 적군임이 발각됐다. 하지만 적군도 효성에 감복해 풀어줔다.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 무덤 가에 작은 나무를 심었는데 이 나무가 하얀 꽃을 피워 수선국으로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 추가 자료(시)

다음은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인 김밝은 시인의 '이팝나무 아래서'다.

저만치서 머뭇거리는 봄을 불러보려고

꼭 다물었던 입술을 뗐던 것인데

그만, 울컥 쏟아버린 이름

말라버린 젖을 더듬던 가시내에게

고소한 밥 냄새로 찾아오는 걸까

뾰족한 시간의 조각들이 꽃처럼 팡팡 터져도

어제 같은 오늘이 다시 되풀이 되는 날

눈으로 들어오는 향기마저 아릿해 고개를 들면

기억을 뚫고 파고드는 할머니 목소리

악아, 내 새끼

밥은 묵고 댕기냐

다음은 계간문예작가회 이사 김이대 시인의 ‘조팝꽃’ 시다.

소리 없이 봄이 다가 오는데

문득 이 눈물은 다 무엇이냐

외진 산밭 가에

하얀 조팝꽃

작년에도 피었는데 그냥 보냈습니다

꼭 잡지 못하고 떠나간 손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이

모두 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얗게 아파 옵니다

하얀 것은 다 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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