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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이야기] 7월의 꽃밭에서 잊힌 꽃, '봉선화'에 보내는 연정(戀情)

정창현 기자 승인 2023.07.31 08:54 | 최종 수정 2023.08.04 17:55 의견 0

더경남뉴스가 '꽃 이야기' 코너를 만듭니다. 꽃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꽃에 침 뱉으랴'는 말도 있습니다. 꽃을 유독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요. 다만 지천의 꽃에 관해 아는 사람이 드문 것도 사실입니다. 꽃의 성질은 물론 전해지는 야사(野事), 약초로서의 효능 등을 종합하겠습니다. 꽃 농사는 원예업으로, 농업을 중시하는 본 매체의 성격에도 맞은 연재입니다. 많은 애독을 바랍니다.

무더운 6~7월에 피고서 씨앗을 담아내는 봉숭아를 첫 이야기 꽃으로 소개합니다.

봉숭아는 봉선화로 잘 알려져 있는 꽃입니다. 어쩌면 그중 안타까운 꽃입니다. '울 밑에 서 있던' 그 봉선화가 그리움의 꽃이 된 지 오래됐기 때문이지요.

잡풀과 함께 자라는 봉숭아 꽃밭

요즘엔 '꽃의 계절' 봄은 물론 신록의 여름, 단풍의 가을, '눈 내리는' 겨울에까지 울긋불긋한 꽃이 지천이니 그렇습니다. 신세가 화려한 꽃만을 찾는 발길들에 툭 차이다가 "오메, 손톱에 물들이던 거!"라는 말에 반가워서 숙이고 있던 꽃잎을 쑥 빼 들 것 같은 꽃이 됐습니다.

봉숭아가 어떤 꽃입니까? 이른 봄에 어린 고사리 손으로 마당 귀퉁이에 작은 돌담 꽃밭을 만들고서 심었던 꽃이지요. 선분홍색 꽃을 피우면 따다 손톱에 물을 들이던 그 꽃입니다. 지금은 이 습속(習俗)이 흔적마저 없어졌습니다. 다행히 공해에 강해 주택가 등에 더러 심어져 있어 추억만 되새겨 주는 꽃입니다.

길가 작은 화단에서 꽃을 피우고 씨앗주머니를 만들고 있는 봉숭아를 찍었습니다.

봉황이 나는 모양의 봉숭아꽃

7월 말이라 꽃과 씨주머니가 공존한다. 이상 정기홍 기자

봉숭아 꽃잎과 잎을 따서 백반이나 소금과 함께 짓이겨서 손톱 위에 올려놓고 비닐봉지와 고무줄로 하룻밤 동안 동여매 놓으면 다음날 손톱이 붉게 물듭니다. 잘 지워지지 않아 악귀를 쫓는다는 습속이 있습니다.

조선의 동국세시기에는 "봉선화(봉숭아의 당시 이름)로 손톱에 물을 들이는 것은 손톱을 아름답게 하려는 여인의 마음과 붉은색이 악귀(요사스러운 귀신)를 물리친다는 믿음에서 몸을 보호하려는 민간신앙 의미도 내포돼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눈이 오기 전까지 봉숭아물이 빠지지 않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봉숭아 물을 들인 손톱. 농촌진흥청

이런 속설에 울타리나 장독대, 밭둑 등에 심으면 질병 등 나쁜 일이 생기지 않고, 뱀이 들어오지 않는다며 많이 심었습니다. 실제 뱀이 봉숭아 냄새를 싫어한다고 해 '금사화(禁蛇花)'라고도 합니다.

봉숭아 이름에서의 봉은 꽃의 생김새가 봉황(鳳凰)이 머리와 날개를 펴고 나는 듯해 봉을 썼다고 하네요.

꽃씨 주머니가 잘 터지는데 "툭" 하며 터져 꽃씨가 멀리 날아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툭 터지는 것은 결백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꽃말이 '나를 건들지 마세요'도 꽃씨주머니를 건드리면 씨가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가는데서 유래했답니다. 손톱을 발갛게 물들이려고 마구 따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한쪽엔 내년을 기약하는 듯 꽃이 진 곳에 씨를 잉태했습니다. 이상 정기홍 기자

■봉선화(봉숭아) 전설

봉선화 구전(口傳·입으로 전해 내려옴)입니다.

중국 원나라(몽골)의 부마국(제후국)으로 전락한 고려 충선왕 때의 이야기입니다.

충선왕은 원나라에서 결혼한 공주보다 먼저 결혼한 왕비(조비)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로 원나라의 미움을 받아 왕위를 내놓고 원나라 수도 심양(瀋陽)으로 불려가 살게 됐지요.

어느 날 충선왕은 한 여자가 자신을 위해 가야금을 타고 있는 꿈을 꾸었는데 여자의 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왕은 하도 기이해 자신을 모시는 궁녀들을 조사했더니 한 여자가 손가락을 흰 헝겊으로 동여매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고려에서 원나라로 끌려온 소녀인데 고려에서 살 때 했던 봉선화 물들이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충선​왕은 남의 나라에 와 있으면서도 고국의 풍습을 지키는 것을 갸륵히 여겨 알아보니 이 소녀는 아버지가 충선왕파여서 면직을 당하고 끌려왔던 것이었습니다.

​이 소녀는 이어 충선왕이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길 기원하는 가야금 가락을 들려주었습니다.

이후 충선왕은 원나라 무종이 왕위에 오를 때 크게 도와 준 공으로 고려에 돌아올 수 있었고, 왕위에 오른 뒤에 그 소녀를 불러오려고 했으나 이미 죽은 후였습니다.

또 다른 버전도 있습니다.

충선왕과 악기를 타는 두 여자가 원나라에 끌려갔습니다.

충선왕은 이 두 여자와 함께 고국과 부모님 생각에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악기를 연주하며 시름을 달랬다고 합니다.

충선왕은 이 여인들의 애환을 보고서 나라를 꼭 되찾아야겠다고 결심했고 훗날 귀국해 두 여인을 찾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충선왕은 두 여인이 손가락에 헝겊을 감고 있던 모습이 봉숭아 꽃물을 들인 것과 같다고 여겨 두 여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궁궐의 뜰에 봉숭아를 심게 했다고 합니다.

■ 효능

​봉숭아는 꽃과 씨앗, 줄기 등 모두가 약초로서의 효능이 있습니다.

현대병인 비만, 과음·과식으로 생긴 병, 두통, 공해로 인한 병, 종기와 소화기 계통 암 등에서 효과가 있다네요.

봉숭아꽃은 노랗거나 희거나 자주색 등 여러 개가 있습니다.

토종 흰봉숭아는 요통, 신경통과 생리불순, 대하, 어혈, 불입증, 신장 및 요로 결석, 물고기 중독, 변비 등의 질병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네요. 하지만 흰 봉숭아는 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봉숭아의 특이한 효능은 '단단한 것을 물렁물렁하는' 성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봉숭아를 '투골초(透骨草)'라고 하는데 약효가 뼈 속에까지 침투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이는 벼 등 단단한 것을 물렁물렁하게 하는 특성과 관련이 있지요.

봉숭아 씨앗은 '급성자(急性子)'라고 불리는데 약성이 급해 즉시 효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물론 꽃과 잎, 줄기, 뿌리에도 씨앗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봉숭아 씨앗, 줄기 등을 달인 물을 마실 땐 이빨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달인 물이 이빨에 닿으면 이빨이 물렁물렁해져서 빠질 우려가 있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충치 등을 예방한다며 애용하는 빨대로 목 안으로 바로 삼키는 게 좋겠지요.

사례를 몇 개 들어보겠습니다.

배 속에 딱딱한 덩어리가 있을 때와 냉증으로 인한 불임증 일 때 말린 봉숭아 줄기 40g을 달여 맥주잔으로 한 잔씩 하루 3번 빨대로 마시면 좋답니다. 대개 10~15일이면 딱딱한 덩어리나 냉증이 풀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심한 요통이나 심경통, 어혈에도 봉숭아 씨앗이나 잎을 30~40g을 달여서 하루 3번 마시면 좋아진다고 하네요. 줄기는 달여 하루 3번을 한 달쯤 마시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특히 요통이 심한 불임 여성은 봉숭아 줄기와 잎을 달인 물을 20일쯤 마시면 요통이 없어지고 임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심장 결석이나 요로 결석으로 통증이 심할 때는 씨앗과 꽃을 술에 담가두었다가 소주잔으로 한 잔씩을 마시면 두 시간쯤 뒤에 통증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또 생선가시가 목에 걸렸을 때 봉숭아 씨앗 가루를 물에 타 마시면 녹아 쑥 내려갑니다. 고기나 생산을 삶을 때 씨앗 몇 개만 넣어도 고기가 연해진다고 합니다. 가시가 살갖에 박혔을 때 봉숭아 씨앗 가루를 바르면 쉽게 뽑을 수 있다고 합니다. 신기합니다.

봉숭아 씨앗을 술에 담가두었다가 그 술을 먹거나 바르면 효과가 좋다네요.

식도암, 위암, 대장암 등 소화기 계통의 암에는 봉숭아 씨앗 30~60g을 물 한 대접에 넣고 달여 하루 두 번씩 나눠 마시면 좋다고 합니다.

■가곡 봉선화/ 작사 김형준, 작곡 홍난파

일제 강점기 때인 3·1운동 직후 한민족의 애환(슬픔)을 노래한 가곡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가수 현철의 '봉선화 연정'

이 가요는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가사로 유명하지요.

봉숭아 열매가 여물면 꽃씨 주머니를 조금만 건드려도 톡 터지는 힘으로 씨앗이 멀리 날아갑니다.

​이 곡을 작사한 김동찬 씨는 충남 부여고 재학 시절 짝사랑 했던 여학생 추억을 되살렸다고 합니다. 39세 때 발표했습니다.

​이 곡을 부른 가수 현철(본명 강상수) 씨는 부산 출생(1942년)으로 오래도록 무명 가수로 지내다가 1988년 ‘봉선화 연정’으로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
더 이상 참지 못할 그리움을 가슴 깊이 물들이고
수줍은 너의 고백에 내 가슴이 뜨거워
터지는 화산처럼 막을 수 없는 봉선화 연정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
더 이상 참지 못할 외로움에 젖은 가슴 태우네
울면서 혼자 울면서 사랑한다 말해도
무정한 너는 너는 알지 못하네 봉선화 연정
봉선화 연정

■ 가수 박은옥의 '봉숭아'

이 노래는 봉숭아물을 들인 손톱 문화와 관련해 알려져 있습니다.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 가면 질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다가면 질 터인데
손가락 끝에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 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밝은 달 구름 거쳐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났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가락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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