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이형기문학상 시상식과 제5회 이형기디카시 신인상 시상식이 지난 21일 경남 진주시 상대동 상평산업단지 복합문화센터 컨벤션홀에서 개최됐다.

디카시는 디카(디지털카메라)와 시(詩)의 합성어로, 디카로 찍고 써 영상과 문자가 한 덩어리가 된 멀티언어 예술이다.

시상식에는 이형기문학상 수상자인 원구식 시인과 박서영 이형기디카시 신인상 수상자(시인), 강희근 심사위원(경상국립대 명예교수·시인), 박우담 이형기 시인 기념사업회 회장, 차석호 진주시 부시장 등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제14회 이형기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와 참석자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원 시인은 시집 '오리진'으로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이날 시상식에서 창작 지원금 2000만 원과 상패를 받았다.

원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저의 시집 '오리진'은 세상의 기원을 탐구하는 시집으로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을 물으면서 바깥의 사유들로 가득하다"며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신 심사위원과 관계자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원구식 시인이 이형기문학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원구식 시인의 시집 '오리진'

원 시인은 1955년 경기 연천군에서 태어나 서울 배재고, 중앙대 문예창작과, 숭전대(현 숭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원 시인은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탑'이 당선돼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먼지와의 싸움은 끝이 없다'(1992년 한국문연), '마돈나를 위하여'(2007년 한국문연), '비'(2015년 문학과지성사), '오리진'(2023년 한국문연) 등이 있다.

제40회 한국시인협회상(2008년) 등을 수상했다.

강희근 시인이 이형기문학상 시상식에서 원구식 시인의 '오리진'의 심사평을 전하고 있다.

강희근 시인은 심사평에서 "원구식 시인의 시에는 생명체 가운데 '귀'라든가 '삼장'과 같은 근원적 파동에 관해 탐구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또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나 입으로 말하는 '궤변' 같은 것에서 독특한 이미지를 살려낸다. 따라서 원 시인의 시에는 함축과 역설의 언어로 가득하다"고 했다.

이어 "시인의 행위는 탐미주의에 빠져 있거나 절대미학에 젖어있는 것일 수 있다"며 "하지만 시의, 시적인 것의 가치는 절대한 방식이고 자기만의 세계일 수 있다는 것이 원 시인의 시학으로 읽힌다. 시집 '오리진'의 책장을 열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진주포구락무 예능보유자인 박설자 국악 명인과 제자들이 국악 공연을 하고 있다.

시상식에 앞서 박설자 국악 명인과 제자들의 국악 공연과 함께 시 낭송이 있었다. 박설자(82) 명인은 진주포구락무 예능보유자로 고향이 진주이다.

전남 목포시 공무원인 윤경희 시낭송가가 이형기 시 '낙화'를 낭송하고 있다.

차석호 진주시 부시장은 인사말에서 “문학이란 것이 힘들고 어려울 때 새로운 마음다짐과 위안이 되는 그런 활동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진주를 대표하는 이형기 시인의 문학제로 이형기 시인의 가치를 높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이형기문학상을 수상한 원구식 시인과 디카시신인상 수상한 박서영 시인에게 축하 말씀을 전하며 앞으로도 이형기문학상이 대한민국 최고의 문학상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시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우담 이형기시인기념사업회 회장과 이형기디카시 신인상 수상자인 박서영(오른쪽) 씨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형기문학제'는 지난 4월부터 전국 학생 디카시 백일장, 전국 청소년 시낭송 대회, 디카시 신인 문학상 공모전 등을 개최하고 수상작 자료집인 '청천문학'을 발간해 시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많은 문학인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한편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인 이형기 선생은 재학 당시(1949년) 영남 최고 명문인 진주농림학교(진주농고) 2학년(16세) 때 최연소로 등단해 천재 시인으로 불렸다. 이어 '문학의 명문'인 동국대(불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동양통신, 서울신문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부산에 있는 국제신문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부산산업대 교수를 거쳐 모교인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도 역임했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 시

이형기 시인은 193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2005년 73세에 별세했다.

대표 시로는 '죽지 않는 도시', '낙화' 등이 있고 시집으론 '적막강산', '그해 겨울의 눈'이 있다. 시 평론인 '시란 무엇인가(부제: 우리나라에서 제일 쉽게 쓴 시론)'를 썼다.

스무네 살 때인 1957년에 한국문학가협회상을 수상한 이래 제1회 공초문학상(1993년)과 대산문학상(1994년) 등을 받는 등 많은 수상을 했다. 정부로부터는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이형기 시인. 진주시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낙화' 시는 1963년 간행된 시집 '적막강산'에 수록된 시다.

<죽지 않는 도시>

이 도시의 시민들은 아무도 죽지 않는다
어제 분명히 죽었는데도
오늘은 또 거뜬히 살아나서
조간을 펼쳐든 스트랄드브라그* 씨의 아침 식탁
그것은 위대한 생명공학의 승리
인공합성의 디엔에이 주사 한 대가
시민들의 영생불사를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머리가 깨어진 채
오토바이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대는 젊은 폭주족
온 몸에 암세포가 퍼져서
수술한 배를 그냥 덮어버린 노인이
내기 장기를 두다가 싸운다
아무도 죽지 않기 때문에
장사를 망치고 죽을 지경인 장의사 주인도
죽지 않고 살아서 계속 파리를 날린다
1년에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는 계산은
전설이 되어버린 도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누구도 제 나이를 아는 사람이 없다
젊어도 늙고
늙어도 늙고
태어날 때부터 이미 폭삭 늙어서
온통 노욕과 고집불통만 칡넝쿨처럼 칭칭
무성하게 뻗어난 도시
실연한 백발의 노처녀가 드디어 목을 맨다
그러나 결코 죽을 수는 없는
차가운 디엔에이의 위력
스스로 개발한 첨단의 생명공학이
죽음에의 길마저 차단해버린 문명의 막바지에서
시민들의 소망은 하나 밖에 없다
아 죽고 싶다


* 스트랄드브라그는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영생 불사하는 종족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