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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 멈춰 서 읽는 시] 경남 진주 출신 천재 시인 이형기의 '낙화'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6.04 22:24 | 최종 수정 2024.06.22 14:51 의견 0

이형기 시인의 대표 작품인 '낙화'를 소개합니다.

이 시는 이 시인이 스무네 살이던 1957년에 쓴 작품으로 이별을 아름답게 노래한 시입니다. '낙화' 시비는 경남 진주시 평거동 녹지공원에 있습니다.

이 시인은 경남 최고의 명문이던 진주농림학교(진주농고)를 졸업한 천재적인 서정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주농림학교 5학년(요즘 고교 2학년) 때 제1회 영남예술제(1949년·10년 후 개천예술제로 개칭)에서 장원을 해 화제를 불렀지요. 고작 나이 16세 때이고 아직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2등인 차상(次上)에 오른 이가 동갑내기인 박재삼이었는데 경남 사천 출신의 유명한 시인이지요.

이듬해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순수 예술 문예지인 '문예(文藝)'를 통해 등단했습니다. 문학계에서는 장원을 한 해를 등단한 해로 여깁니다.

이 시인의 시풍은 '인생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아마도 '한국 문학의 산실'인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전공해 그런가 봅니다.

이형기 시인. 진주시 제공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분분한 낙화'에서의 분분(紛紛)하다는 '여럿이 한데 뒤섞여 어수선하다'는 뜻으로 '뒤섞여 떨어지는 꽃잎'으로 해석됩니다.

하롱하롱의 뜻은 '작고 가벼운 물체가 떨어지면서 잇따라 흔들리는 모양'입니다.

경남 진주시 평거동 녹지공원에 있는 '낙화' 시비

'낙화' 시비는 '들말'로 불리는 평거동과 신안동에 걸쳐 조성돼 있는 공원에 호젓하게 서 있습니다.

진주에서는 해마다 '이형기문학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형기문학제는 월간 시 전문지인 '현대시'와 자매지인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이 시인의 시적 정신과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6년 만들었습니다.

이형기문학상도 만들어 작품을 선정해 시상합니다. 상금은 2000만 원입니다. 제1회 수상자는 김명인 시인이었으며 운영 문제로 2014~2018년 중단됐다가 2019년부터 다시 시상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은 언론에도 오래 몸담았습니다. 동양통신, 서울신문, 대한일보 등을 거쳤고 부산에 있는 국제신문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부산산업대 교수를 거쳐 모교인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로 후진을 양성했습니다.

한국문학가협회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대한민국문학상, 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서울시문화상 등 굵직한 상들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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