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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이라 믿고 뿌렸는데"…친환경농사 첨병이라던 왕우렁이 어린 벼 갉아 먹어 피해 확산[동영상]

제초제 대신 잡초 제거에 활용
따뜻한 겨울 날씨탓 월동 개체 급증
어린모 갉아먹는 부작용 확산
당장 왕우렁이 대체제도 찾기 어려워

정창현 기자 승인 2024.08.09 12:18 | 최종 수정 2024.08.10 11:26 의견 0

친환경농업 첨병 역할을 한다는 왕우렁이가 되레 벼논의 모와 어린 벼를 갉아먹는 피해가 확산되고 있어 농민들이 대책 마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농업인들은 우렁이농법 중단을 검토하는 등 친환경농법 관리 지침의 전면 재검토와 강력한 방제 약제를 개발해 농가에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논 바닥이 고르지 못해 왕우렁이가 한 곳에 몰려 일어나는 현상이란 주장도 있어 왕우렁이 퇴출 유무를 둘러싼 격론은 지속될 전망이다.

경남 진성면 구천마을 친환경농업 벼논 모습. 논바닥에 큰 왕우렁이와 함께 아주 작은 왕우렁이가 흩어져 있다.

어린 모에 달라붙어 갉아먹고 있는 우렁이 모습. 모내기 후 1주일 정도 지난 뒤인 지난 6월 초 찍었다.

▶왕우렁이농법 도입 시기

국내 농가에 왕우렁이농법이 공식 도입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다.

왕우렁이는 지난 1983년 동남아시아에서 식용으로 도입된 이후 잡초 제거 효과가 매우 탁월하다는 사실이 관찰되면서 1990년 초부터 벼농사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이어 1996년 정부의 친환경농업 정책에 맞춰 공식 농법의 하나로 적용됐다.

왕우렁이의 원산지는 열대 지역인 동남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12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우렁이는 수온이 20∼33도 때 잘 자라며 생존 가능한 최저온도는 2도이다.

왕우렁이는 부하 3개월 정도 자라면 산란이 가능한데 물속에서 산란하지 않고 반드시 수면 위 잡초나 벼, 다른 식물체에 산딸기(붉은색) 모양의 알을 붙여 산란한다. 보통 한번에 500∼700개의 알을 낳으며, 한달 사이에 1000∼1200 개를 산란한다.

먹이는 수초를 비롯한 잡초, 곤충류, 수서동물의 사체, 과일, 곡물류 등으로 잡식성이다.

알에서 부화한 왕우렁이는 50일 정도 지나면 3g 정도가 되고 100일에는 약 8g 정도가 되어 성패(成貝·다 자란 조개)가 된다.

왕우렁이는 크기가 3∼8g(부하 후 50~100일) 정도일 때 가장 활동력이 좋아 잡초 등을 잘 먹어치운다. 모내기를 한 뒤 모 뿌리가 자리를 잡고 이삭이 팰 때까지 한창 자라는 시기다.

주로 밤에 먹이를 먹으며 이동거리는 짧은 편이다.

정부는 1996년부터 친환경농법으로 왕우렁이농법을 공식 도입했지만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 해양수산부는 23년 후인 2019년 11월에서야 뒤늦게 '왕우렁이 관리지침'을 만들었다.

크고 작은 왕우렁이가 물이 자작한 논바닥에 흩어져 있다. 왕우렁이는 주로 아가미와 폐로 호흡하지만 물에 산소가 부족하면 수면 위로 올라와 대기 호흡을 한다.

농업기술포털 서이트인 '농사로'

▶피해 사례 및 피해 이유

올해 들어 왕우렁이 피해 사례가 유난히 많아졌다. 농사 당국과 농업인들은 대체로 이상기후 탓으로 보고 있다.

지난겨울 이상기온으로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왕우렁이나 알이 죽지 않고 벼논에 대량 서식해 본연의 임무인 잡초 제거와 함께 모와 어린 벼까지 먹어 치우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왕우렁이농법이 친환경농법으로 도입된 지 30여년 만에 큰 위기에 봉착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힘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규모 피해로는 올해 처음 겪어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의 농가들도 엉거주춤 하며 딜레마에 빠졌다.

다만 지금은 모가 상당히 커 있어 왕우렁이 피해가 크게 확산되고 있지 않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벼논에서 왕우렁이를 잡아내는 작업을 마쳤거나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는 나고 있고 벼 뿌리 근처 곳곳에 성체들이 낳은 선홍색 알들이 달라붙어 있어 내년 피해를 예고한다.

왕우렁이는 부하 후 3개월 정도 자라면 산란이 가능한데 물속에서 산란하지 않고 반드시 수면 위의 잡초나 벼, 다른 식물체에 붙여 산딸기 모양의 알을 산란한다. 보통 한번에 500∼700개의 알을 낳는데 한 달 사이에 1000∼1200개를 산란한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왕우렁이 피해가 특히 많이 발생한 이유는 뭘까.

왕우렁이농법은 1996년 본격 도입된 이후 해마다 왕우렁이가 어린모를 먹어치우는 사례는 있었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겨울 날씨가 겨울 다웠기 때문에 알이 얼어죽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십 수 년 전부터 시작된 지구온난화로 겨우내 기온이 따뜻해져 성채와 알이 죽지 않고 월동해 다음 해에 피해를 주고 있다. 기존의 알에서 부하한 왕우렁이와 당해에 뿌린 왕우렁이가 섞여 개체수가 크게 늘어났다.

농업 당국과 농업인들은 대체로 1∼2월에 논을 깊게 갈아 땅속에서 동면하는 왕우렁이들을 으깨 죽이거나 땅 위로 올려 자연적으로 얼어 죽게 하는데, 지난 겨울엔 비가 자주 내려 논갈이를 하지 못한 농가가 많았고 날씨마저 포근해 왕우렁이가 기하급수로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 박종호 유기농업과 연구사는 한 매체에 "지난겨울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많아 월동 성패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가 큰 전남 지역의 2023년 12월∼2024년 2월 평균기온은 4.6도로 전년보다 2.6도 높았다"고 했다.

▶대책은?

곡창인 전남 지역에서는 친환경농업 중 왕우렁이농법을 90% 이상을 도입하고 있다. 친환경 잡초관리 기술 중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보기 때문이다.

친환경농법은 오리·참게·쌀겨 등 다양한 농법이 있지만 왕우렁이만큼 투입 대비 효과가 좋은 농법이 없다.

보통 벼논 10a(200평)에 왕우렁이 1.2㎏을 투입하면 제초제 살포와 비교해 98%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왕우렁이를 뿌리지 않고 승용제초기를 사용할 수 있지만 치솟는 인건비 등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오리는 배설물로 인한 온실가스 발생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다.

이런 여건에 왕우렁이농법을 곧바로 폐기하기란 이르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하지만 농업인들은 겨울철 온난화로 왕우렁이 피해는 계속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벼를 보호하는 보호제와 땅속의 왕우렁이를 방제하는 약제가 나오는 것이다.

지자체들은 이미 왕우렁이 방제 연구에 나섰다.

이진희 전남도농업기술원 연구사는 "지난 7월 첫째주 해남에서 채집한 왕우렁이로 이프로벤포스 입제 성분의 농약과 유기농업자재 등 등록 약제 실험을 마친 상태"라며 "방제에 100%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돼 농가를 대상으로 해당 약제들의 적정 살포량과 살포 당시 수위(5㎝) 조절 요령 등을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모를 내기 전 논바닥을 고르는 작업을 제대로 하면 왕우렁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왕우렁이가 물이 고이는 곳에 집단 서식하고 먹이를 찾기 때문에 잡초로는 모자라 어린 벼를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또 가울에 벼 수확 후 논을 바짝 말리면 왕우렁이의 서식 환경이 나빠져 피해 줄일 수 있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깊이갈이를 하면 왕우렁이 성패를 죽이는 효과가 훨씬 증가한다.

왕우렁이 피해 규모는 벼 종자에 따라 다르다.

수분을 많이 빨아 먹는 벼는 왕우렁이의 서식 환경인 물이 잦아들어 번식과 성장이 줄어든다.

또 모 이앙 시기와 왕우렁이 번식 시기가 겹칠 수 있어 모를 더 키워 이앙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모두가 일리 있는 방법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왕우렁이 피해가 난 벼논에서 왕우렁이를 적당히 수거하는 것이다.

다만 왕우렁이를 수거할 때 일일이 손으로 줍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수작업은 일손이 많이 든다는 한계가 있다.

모내기 후 시점별로 중간 물떼기를 할 때 물길을 만들면 물길을 따라 이동한 왕우렁이를 쉽게 수거할 수 있다. 또 가을에 벼 수확 전 배수로 부근에 물길을 만들면 수위가 낮아질 때 물길을 따라 이동한 왕우렁이가 한곳으로 모여 쉽게 수거할 수 있다.

하지만 친환경농업의 위축보다는 대체 수단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친환경 벼농가의 88.5%(면적 기준 3만 3104㏊)가 왕우렁이농업을 활용하고 있고, 관행농법 벼농가들도 적지 않은 규모(3만3361㏊)로 해당 농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왕우렁이농법 자체를 중단하는 것보다 주기적인 관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농업인도 수거 요령 등을 의무적으로 교육 받아야 한다.

이런 현장 목소리에 농림축산식품부는 내년부터 광역도에 왕우렁이 우심지구를 지정해 특별 관리할 계획이다. 또 농업인 대상 교육을 강화하고 왕우렁이 월동 실태조사 후 유입을 차단하는 기술 개발에도 나선다.

농식품부는 현재 지자체와 친환경농업 관련 생산자단체, 우렁이 공급업체, 마을 부녀회 등을 통해 일제 수거기간을 운용하고 있다. 시·군이 주관하고 해당 지역 유관단체와 협력해 수거행사를 개최하는 것을 돕는 방식이다.

일제 수거기간은 농경지 주변으로 왕우렁이가 유실되는 것을 막으면서 농수로 등엔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3단계로 나눈다.

먼저 왕우렁이 투입 전인 3월 22∼31일 농수로에서 집중적으로 월동에 성공한 왕우렁이 수거활동을 벌인다. 이어 왕우렁이 투입 후 논 물떼기 시점과 장마철 등을 고려해 7월 4∼31일 농경지·농수로에서 수거활동을 한다. 마지막으로 월동 방지를 위해 벼 수확 직후 수거에 나선다.

농민들은 이 같은 수거 체계가 올해 같은 상황에선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현장 목소리에 농림축산식품부는 내년부터 광역도에 왕우렁이 우심지구를 지정해 특별 관리할 계획이다.또 농업인 대상 교육을 강화하고 왕우렁이 월동 실태조사 후 유입을 차단하는 기술 개발에도 나선다.

친환경벼농사를 짓는 한 농업인은 “수거 기간이 아닌 때도 우렁이가 끝도 없이 나와 수거기간을 설정한 것 자체가 무용한 상황”이라면서 “인근 농가는 왕우렁이로 인한 피해가 심해 올해 벼농사를 포기했을 정도”라고 호소했다.

https://youtu.be/ijTuXr-QJKM

▶토종우렁이와 달라

왕우렁이 피해가 늘어나자 토종 우렁이를 왕우렁이로 오인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왕우렁이는 중남미가 원산지로 토종 우렁이와 전혀 다른 종이다.

왕우렁이는 사과우렁이과에 속하고 잡초를 갉아 먹고 산다. 이러한 특성에 착안해 잡초 제거용으로 친환경농사에 왕우렁이가 도입됐다.

물 밖에 선홍색 알을 낳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토종 우렁이는 논우렁이과로 부드러운 이끼류나 흙 속의 유기물 등을 먹는다. 모를 전혀 갉아먹지 않아 모가 상하는 피해를 주지 않는다.

■추가 사진

이상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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