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양궁이 올림픽 단체전 10연패란 신화적인 대기록을 달성했다. 비결 중 하나로 압박감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선수들의 ‘강심장’이 꼽힌다. 이날 결승에 나선 한국 선수는 전훈영(인천시청), 남수현(전남 순천시청), 임시현(한국체대)이다.
한국 대표팀은 29일(한국 시각) 프랑스 파리의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결승전에서 안치쉬안, 리자만, 양샤오레이의 중국을 5-4(56-53 55-54 51-54 53-55 <29-27>)로 극적으로 물리쳤다.
이로써 한국 양궁은 여자 양궁 단체전이 처음 도입된 1988년 서울올림픽 때부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우승을 차지했다. 특정 나라의 특정 종목 연속 우승 최다 타이기록이다.
중국과 결승전을 치른 3명의 선수는 모두 올림픽 첫 출전으로 말 못할 부담감도 컸다.
경기에서 '맏언니' 전훈영(30)의 활약이 컸다.
중국과 결승전에서 전훈영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10점을 쐈다. 1세트에서는 모두 10점을, 2세트에서도 10점·9점, 4세트에서는 연속 10점을 기록했다. 4대 4로 맞서 치른 슛오프(연장전)에서도 10점을 명중시켰다. 결승에서 9발 중 슛오프까지 6발을 10점을 쏴 금메달을 따는데 수훈을 세웠다.
전훈영은 초반 8강전까지만 해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개막 하루 전에 발표된 랭킹라운드에서 13위에 머물렀고, 단체전에서 7점을 쏘기도 했다.
하지만 4강 네덜란전부터 달라졌다. 몸이 풀렸는지 4차례 10점을 쐈으며, 슛오프 첫 사수로 나서 9점을 쏴 안정적인 스타트를 했다.
전훈영의 활약에 그녀의 '분당 심장 박동수'가 화제로 등장했다.
심박수 중계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처음 도입돼 이번 파리올림픽에서도 하고 있다.
성인이 움직이지 않고 휴식을 취할 때 나타나는 평균 심박수는 60~100bpm 수준이다. 그런데 전훈영의 결승전 심박수는 이와 비슷했다. '10연패 압박감'이 무색할 정도로 전혀 긴장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전훈영의 심박수는 대체로 76~85bpm 사이를 오갔다. 세자릿수 심박수까지 올라간 적은 없었다. 4세트의 심박수는 76bpm까지 내려갔다가 활을 쏘기 직전 81bpm까지 올랐다. 결과는 10점이었다.
중국 선수들도 대체로 평온한 심박수를 보였지만, 안취쉬안의 심박수는 세자릿수까지 올라갔다. 2세트에서는 97pm까지 내려갔다가 활을 쏘기 직전 108bpm까지 치솟았다. 이때 안취쉬안의 점수는 8점대 라인에 걸린 9점이었다. 안취쉬안이 88bpm을 기록한 3세트에서는 10점을 쐈다.
의학적으로 극도의 긴장이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에피네프린, 흔히 말하는 아드레날린 분비가 증가해 심장을 빨리 뛰게 해 심장박동수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양궁협회는 2019년 6월 네덜란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심박수 중계 기술을 테스트하자 향후 이 기술이 큰 대회에서도 쓰일 수 있다고 판단해 일찌감치 국내 훈련에서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협회 회장사인 현대자동차 이노베이션 부서와 함께 센서 착용 없이 영상 카메라로 심박수 측정을 하는 시스템 개발에 나섰고, 2021년 초 완성된 시스템을 대표팀 훈련에 도입했다.
양궁 대표팀은 심박수 산출 시스템에서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축구 경기장 소음 적응 훈련 등 개인별 맞춤 훈련을 해왔다.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영어와 불어로 녹음한 장내 아나운서 멘트와 관중 환호성까지 파리경기장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훈련을 거듭했다. 한국 여궁사들의 멘탈, 즉 강심장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하지만 경기 중 강심장과 달리 전훈영은 경기를 마친 직후 눈물을 흘렸다.
그는 "그동안 힘들었던 게 생각이 났다. 너무 행복하다. 올림픽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10연패라는 게 부담이 많이 됐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전훈영은 개인전에도 출격한다. 그는 "단체전 10연패를 목표로 하고 왔고 이뤘기에 개인전은 마음 편하게 경기에 임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