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넘나든 '시대의 조정자'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별세···서울신문 편집국장 등 주요 신문사 기자 경력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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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4:47 | 최종 수정 2024.09.18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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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평생을 살며 스스로를 '보수와 혁신의 경계를 가로지른 지식인'이라고 했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16일 9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청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의대를 수석입학했지만 2년간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법대에 다시 시험을 봤다.
언론계는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입문했다. 이어 1962∼1972년 조선일보 기자와 정치부장, 편집부국장을 거쳤고 1972년 서울신문으로 옮겨 편집국장, 1977년 서울신문 주필을 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승만 대통령 양아들로 불리던 이기붕의 아들(이강석)이 서울대 법대에 부정 편입학을 한 사실이 드러나자 당시 학생총회 의장으로 시위를 주도해 관공서는 포기하고 신문 기자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정치도 했다.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에서 제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13대까지 4선을 했다. 관직으론 1993∼1994년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올해 초 ’시대의 조정자’라는 저서를 펴낼 정도로 최근까지 글 쓰는 활동해왔다.
고인은 책에서 “당시의 시대 상식에 맞추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행동했다”고 적었다.
노태우 정부 인수위(민주화합추진위원회)에서 ‘폭동’으로 불렸던 ‘1980년 광주 사태’에 대해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을 내놓았고, 노동부 장관으로서는 1994년 현대중공업 파업을 공권력 투입 아닌 협상으로 풀어냈다.
또 그는 ‘스튜던트 파워’, ‘모래 위에 쓰는 글’, ‘정치인을 위한 변명’, ‘문제는 리더다’, ‘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 ‘진보 열전 남재희의 진보인사 교유록 오십년’ 등의 저서를 남겼다.
새마을훈장 근면장과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한겨레신문에 오랫동안 칼럼을 써 왔고 2016년 1만여 권의 책을 기증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변문규씨와 사이에 4녀(남화숙·영숙·관숙·상숙)와 사위 예종영·김동석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19일 오전 5시20분, 장지 청주시 미원 선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