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을 쉽게 생각합니다. 누구나 짓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농천하지대본(農天下之大本)' 때의 말이지, 요새 사람들에겐 꽤 어렵지요. 귀농한 '농학 석박사학위' 초짜농부님은 평생 논밭일을 해온 어르신 앞에서 쩔쩔 맵니다. 더경남뉴스가 해결해드립니다.
다음은 오늘(13일) 경남 진주시에서 낸 보도자료입니다.
'과수의 경우 적절한 비배관리를 통해 월동 전 충분한 저장 양분이 축적되도록 해 수체를 튼튼하게 유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 문장이 뭘 하라는 것인지 대충 이해는 했지만 그냥 넘기기에 찜찜한 낱말이 있습니다. '비배관리'와 '수체'입니다.
비배라는 말은 요즘 거의 쓰지 않는 농삿말입니다. 수체도 비슷한 영역에 있는 말이지요.
중장년층도 고개를 갸웃하는 농삿말인데, 한자 앞에선 일자무식이 되는 MZ 세대가 어찌 저 단어를 해석할까요?
난망이지요.
농촌에 청년 농부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저런 농삿말을 버젓이 쓰는 게 지금 농촌의 일그러진 현실입니다. 말 그대로 "아니올시다"입니다.
한자 농삿말들은 대부분 일본어투의 한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고 보면 되겠지요. 40~50년 전인 1970~1980년대만 해도 한자가 많이 통용되던 때여서 큰 어려움 없이 주고받기는 했었습니다.
하지만 한글 세대(40~50대)가 사회의 주력이 돼 있는 지금도 농삿말엔 일제 잔재의 낱말이 수두룩합니다.
그동안 농삿말의 한글화 작업이 지지부진했다는 것이지요. 그중 일제 때 만들어졌던 농삿말은 변호사들을 먹여살린다는 법률 용어만큼이나 어렵습니다. 농업 당국과 소속 공무원들은 아직도 어렵고 어려운 이들 농사 행정용어를 '자랑스럽게' 구사 중입니다.
이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가다간, 아니할 말로 농촌의 청년화는 '백년하청'입니다.
각설하고요.
위의 보도자료 문장에서 나오는 비배관리(肥培管理)는 '거름을 잘 뿌려 토지를 걸게 해 식물을 가꾼다'는 뜻입니다. 어감상 살갑게 와닿는 단어도 아닙니다.
비배를 한자로 풀면 살찔 비(肥), 북돋울 배(培)입니다. 거름이나 비료를 줘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말이겠네요. 농한기인 겨울에 과수원에다 거름과 비료를 준다는 것입니다.
'과수의 경우 적절한 비배 관리를 통해 월동 전 충분한 저장 양분이 축적되도록 해 수체를 튼튼하게 유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과수의 경우 적절한 거름이나 비료를 줘 월동 전 충분한 저장 양분이 축적되도록 해 수체를 튼튼하게 유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로 고치면 어렵지 않게 이해됩니다.
다음 수체란 낱말인데 어떤 뜻일까요?
느낌상 과수 나무를 뜻하는 것 같은데, 물을 많이 머금은 나무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위 문장에서 쓴 수체의 한자는 樹體입니다. 겨울철 물을 머금은 수체(水體)가 아닌 나무 수(樹), 몸 체(體), 즉 나무의 몸체입니다.
진주시에서 겨울 한파에 준비를 잘 하라고 보낸 자료가 되레 '우리말 겨루기' 하듯 이해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아이러니(역설)가 농촌에 터전을 잡고 농삿일을 정겹게 하고픈 농업인의 의욕을 가로막는 것이겠지요.
농삿일이 좋아 농촌을 찾아든 젊은 한글 세대로선 농사 사전 한 권 구해다가 이앙기나 콤바인 안에 두고 한자 낱말이 나오면 수시로 찾아 이해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아주 간단한 두 낱말을 사례로 고질화 돼 바뀌지 않고 있는 우리의 농삿말 실태를 살펴보았습니다.
왜 이 글을 쓰냐고요?
농정 당국이나 읍면사무소에서는 지금도 이런 투의 온라인 알림 레터와 우편물을 농가에 보냅니다.
이 어려운 고지 내용을 제대로 이해 못하면 농촌에 쉽게 정착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농정 당국 양반들, 제발 한글 좀 쓰시지요! 농사일에 바빠 대학 다닐 때 배운 한자들 다 까먹었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