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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이 알아야 할 농삿말]이른 봄에 논밭 가는 '생갈이(生갈이)'(9)

정창현 기자 승인 2024.03.12 13:14 | 최종 수정 2024.04.03 13:37 의견 0

농사일을 쉽게 생각합니다. 누구나 짓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농천하지대본(農天下之大本)' 때의 말이지 어렵지요. 귀농한 '박사 학위' 초짜농부님은 쩔쩔 맵니다. 더경남뉴스가 해결해 드립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습니다.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농촌에선 하나씩 농번기 준비작업을 해야 할 때이기도 합니다.

'생갈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농촌에서 자란 분들은 더러 귀동냥을 했을 단어입니다만 첫 귀농자에겐 생소한 단어일 지 싶습니다. 한 농업인이 그제 "이제 생갈이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해서 이 말을 살펴봅니다.

지난해 가을걷이 후 생갈이를 한 논. 정창현 기자

생(生)갈이는 두 개의 뜻이 있는데 ▲처음 논밭을 가는 일 ▲쟁기질이 서투른 사람이 잘 갈리지 않는 밭고랑 사이를 억지로 가는 일입니다.

처음 것은 처음 논밭을 가는 애벌갈이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선 생갈이 대신 애벌갈이를 표준어로 삼습니다. 줄여 애갈이라고 하고, 한자로는 초경(初耕)으로도 씁니다. 가을걷이 직후나 겨우내 묵혀두었던 논을 이른 봄에 갈아엎는 뜻으로 통용됩니다.

예부터 초봄인 춘분 무렵에 하는 생갈이는 농사가 본격 시작됨을 알리는 것으로 한해 농사의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농업용어사전에는 '논과 밭 갈이를 여러 번 할 때 처음 대강갈이를 하는 것. 큰 덩어리로 잘게 부수는 작업인데 이는 보통 1차 경운'이라고 설명합니다.

이후 벼 이앙 전에 두 번째로 땅을 다시 갈아엎는 것은 두번갈이라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땅심을 돋우는 것은 농사의 첫째이지요. 가을추수 후에나 초봄에 논과 밭을 갈아엎어 놓으면 짚풀 등이 흙으로 덮혀 유기물이 많아지는 등 토질이 좋아져 생육에 큰 도움됩니다. 대체로 유기질비료를 먼저 하고 갑니다.

농업인이 "이제 생갈이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틀림없이 경상도 사투리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표준어입니다.

다른 뜻으로 '쟁기질이 서투른 사람이 잘 갈리지 않는 밭고랑 거웃 사이를 억지로 가는 일'이 있습니다. 생(生)갈이에서의 접두어 '생'은 ‘가공하지 않은’의 뜻입니다. 마구 간다는 의미를 내포하지요.

여기서의 생갈이는 '홍두깨생갈이'를 줄임말입니다. '홍두깨'의 뜻도 '서투른 일꾼이 논밭을 갈 때에 거웃(쟁기질로 젖힌 흙 한 줄) 사이에 갈리지 아니하는 부분의 흙'을 뜻합니다. 다듬이질 할 때 두들기는 방망이가 아닙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뜻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네요.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귀농을 하면 처음엔 의욕이 가득해집니다.

누구나 자연 그대로의 유기농을 하려고 퇴비만 몽땅 하고 경운기나 트랙트로 논과 밭을 갑니다. 농촌으로 내려온 첫 한 두해 정도는 공식처럼 이렇게 합니다.

그러다 몇 년 지나면 지치고 실증도 나고 비료 주고 농약 치는, 쉬운 농삿길로 빠져드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유기농과 일반농사 비율을 정해 놓고 농삿일을 하면 큰 무리가 덜 와닿을 겁니다.

우수 경칩도 지났고 춘분이 곧 다가섭니다. 위의 한 농가에서의 말처럼 벌써 논밭갈이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요즘의 농촌은 시설하우스 재배 등 사시사철 농산물을 생산해 내지만 전통적인 농삿일은 이제 시작될 철입니다.

들에 나가 겨우내 얼었던 논과 밭을 한번 둘러보시지요. 양지바른 곳엔 초록빛이 완연합니다. 가을 생갈이 이후 빼놓았던 쟁기나 로터리도 겨울내내 상태가 어떻게 돼 있는지 확인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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