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부 지방에 고로쇠 물 채취가 한창이다. 대체로 지난해보다 1주일 정도 빨라졌다고 한다. 고로쇠 물은 단풍나무의 일종인 고로쇠나무에서 이른 봄철에 나오는 수액이다.
그동안에는 24절기상 우수와 경칩이 되어야 채취를 했었는데 기후가 온난화 하면서 점차 채취 시기가 빨라졌다. 여기에다가 고로쇠 물이 몸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비싸게 팔려는 상술이 채취 시기를 앞당긴 면도 있다. 보통 남부지방은 1월 중순에 채취를 시작하고 중부지방에서는 3월 말까지 물을 뽑는다.
▶ 채취 과정
나무의 수액이 나오는 과정을 보자.
밤 중에 기온이 내려가면 나무의 뿌리가 땅 속에 있는 수분을 흡수해 나무줄기 안으로 넣으려고 한다. 나무는 물을 빨아들여 줄기의 속을 채운다.
이어 낮에 기온이 올라가면 줄기 안의 많은 수분이 팽창해 밖으로 튕켜나가려는 압력을 만든다. 이 때 수피에 상처(구멍 등)를 내면 수액이 흘러 나온다. 수축과 팽창의 압력차를 이용해 물을 채취하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얼었다 녹을 때 나무가 정신줄을 놔 버려서 물을 내놓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 채취 시기 등 조건들
고로쇠물은 봄철에만 채취가 가능하다. 보통 양력 1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다.
밤에는 영하 3~5도, 낮에는 영상 5~10도로 기온 차이가 뚜렷한 날에 나온다. 밤 기온이 영상이면 많이 나오지 않고, 기온이 5~10도로 높아지면 아예 안 나온다.
오래 전에는 물이 절기상 '경칩'을 절정으로 이후 20일 정도 나와 '경칩 물'이라고 불렀다. 요즘은 기온이 올라 경칩 후 며칠 지나면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 경칩 전후인 2월말~3월 초순에 채취한 상품을 최고로 쳤지만 채취 시기가 빨라져 그 기준도 달라졌다. 하지만 너무 빨리 받으면 나무에 좋지 않다.
▶ 채취 방법 및 규정
나무에 채취용 드릴로 1~3cm 크기의 구멍을 뚫고 관을 박아 통에 받는다.
성년 가슴 높이(1m) 나무의 경우 10~19cm 높이에 구멍 1개, 20~29cm에는 2개, 30cm 이상에는 3개를 낸다.
고로쇠 물이 몸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수요가 많아지자 일부 지방에서는 깊은 산속에 호스를 연결시켜 커다란 물탱크에 받는 데도 있다고 한다. 작은 물통에 받는 것이 훨씬 위생적이다.
채취 규정은 까다로운 편이다. 관할 지자체에서 수액 채취 허가를 받은 후 채취 기술과 사후관리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휴식년(최대 3년)을 두어 채취를 제한한다.
▶ 물맛
바로 채취한 고로쇠 물은 일반 물과 비교해 맛의 차이가 거의 없다. 1주일 정도 두면 뿌옇게 변하면서 단맛이 난다. 당을 첨가하는 요리에 넣어도 된다.
경남 진주시 진성면 채취농민 정재동(66) 씨는 5일 "물이 많이 나오는 나무와 적게 나오지만 단맛이 진한 나무가 있다"면서 "올해와 같이 겨울가뭄이 심할 땐 단맛이 더해진다"고 노하우를 전했다.
▶ 건강
고로쇠의 옛 이름인 '골리수(骨利樹)'에서도 알 수 있듯이 뼈에 좋다. 위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하루에 한잔씩 마시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뼈에 좋은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 무기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칼슘은 일반 생수의 40배나 많이 들어있다. 마그네슘은 30배 정도다.
따라서 갱년기 여성들이 겪는 골다공증을 예방하고, 골격을 형성하는 아이에게도 좋다. 당연히 뼈가 약해지는 노년기에 섭취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치아 건강이 좋지 않은 노년들이 마셔도 도움이 된다.
관절염 같은 염증 질환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고로쇠 물에 염증을 완화하는 불소, 철, 망간, 미네랄 등이 들어 있다.
또한 칼슘은 혈압을 높이는 나트륨을 몸밖으로 배출하는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상용하면 혈압을 낮춘다.
필수영양소인 미네랄도 많다. 미네랄은 체내에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면역세포 성장을 두배 이상 높이고 면역 조절 물질 분비를 5배까지 촉진시킨다.
포도당, 과당, 자당 등 몸에 필요한 당분이 다량 들어 있다. 당분은 피로의 원인인 젓산을 파괴해 피로회복 효과가 있다. 하루하루가 피곤한 직장인이 먹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한방에서는 고로쇠 물을 '풍당(風糖)'이라고 해 약제로 사용한다. 특히 위장병(숙취 포함), 폣병, 신경통과 관절염, 골절 환자에게 약수(藥水)로 마시게 해 치료 또는 증세 완화에 쓴다. 1회에 100~200ml씩 4~5회를 마시게 한다.
몸속 노폐물 배출을 촉진해 몸이 붓는 부종도 완화시킨다.
고로쇠 물은 장의 운동도 촉진시키고 변비와 숙변을 없애는 등 배변 활동도 도운다.
우스개 같지만 오래 묵은 체증을 뚫는데도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보리밥을 먹을 때 고로쇠 수액과 먹으면 체하지 않는다고 한다. 뱃사람들이 자주 겪는 생선 체증도 1~2잔으로 씻어내린다고 한다. 속이 니글거릴 때 한 잔 마시면 풀린다.
이뇨작용도 강하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마시면 해소된다.
많이 마셔도 탈은 없지만 이뇨작용이 강해 너무 많이 마시면 좋지 않다. 하지만 맛이 달고 순해 많이 마시는 경향이 있다.
고로쇠 잎은 지혈제로, 뿌리와 뿌리 껍질은 관절통과 골절 치료에 쓴다.
캐나다에서는 메이플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졸여 메이플 시럽을 만들어 먹는다.
고로쇠 물의 효과는 조상들의 체험과 함께 지금의 과학적인 연구 자료에서 입증이 됐다.
▶ 보관 기간
보관 기간은 채취 후 30일 정도로 짧다. 보통 1주일 이내에 다 먹는 것이 좋다. 다만 오래 먹으려면 냉동 보관하거나 냉장 보관해두고 먹으면 된다. 냉장 물을 먼저 먹고 언 냉동 물을 순차적으로 먹는다.
1주일 이상 보관하면 뿌옇게 침전되거나 부유물이 생길 수 있는데 물이 상한 것이 아니라 물이 지닌 섬유질이 천연 자당과 엉켜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다.
상해서 못 먹을 정도가 되면 냄새가 심하거나(식초 냄새), 부유물들이 누렇게 변해 용기의 벽에 붙는다. 이 정도 현상은 한 달 정도 뒀을 때 나타난다.
▶ 주의할 점
인터넷이나 전화로 주문할 때는 채취 농가를 파악해야 한다. 가짜 고로쇠 물인 경우도 있고, 진짜라 해도 원산지를 속여 팔거나 전년에 채취한 물을 파는 경우도 있다.
당뇨병이 있는 사람도 적당량을 오래 마셔도 되지만 많이 먹으면 좋지 않고, 칼륨 함량이 높아 신장이 좋지 않으면 많이 먹지 않아야 한다.
▶ 주요 생산지
고로쇠 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생한다.
이 가운데 지리산 피아골·뱀사골과 광양 백운산, 하동 화개의 수액이 유명하다. 경남 산청군은 3월초, 경기 양평군은 3월 초중순에 고로쇠축제를 연다. 코로나로 최근엔 취소됐다.
▶ 이름 유래
고로쇠 이름은 고로실나무, 오각풍, 수색수, 색목이라고도 한다. 지역마다 이름이 달라 거리수나무로 부르는 곳도 있다.
잎이 깊게 갈라지고 잎자루가 매우 긴 긴고로쇠나무, 열매가 좁은 각으로 벌어지는 집게고로쇠나무, 잎자루가 붉은 붉은고로쇠나무가 있다.
고로쇠 물뿐 아니라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곡우 때 자작나무 또는 거자수, 박달나무 등에서 나오는 물도 마신다.
거자수의 수액은 남자물이라 해 여자들이 애용하고, 이른 봄에 채취하는 고로쇠 수액은 여자물이라 해 남자들이 더 애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