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종종 "문재인 정권은 5년간 무엇을 했을까"를 생각하곤 한다.
생각 끝의 결론은 '늘 쇼'였다. 좋게 말하면 '이미지 정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늘 쇼'가 변질이 되기 시작했다.
정권이 쇼를 하니 국민의 눈과 귀는 의도했던대로 모였고 '사실(팩트)' 여하(如何)를 떠나 잘 먹혀들었다. '팬덤 지지자'란 닉네임을 가진 단체 등은 길목마다 지켜 서서 분위기를 쥐락펴락 했다. 우호단체의 조력 속에 정권은 그 쇼 무대에 푹 빠지더니 어느새 중독이 된 듯했다. 백성이 우둔해서? 아니면 순수해서 순치에 길들여져서?
정권 내내 이를 기획한 청와대 의전기획관은 문재인 대통령 퇴임 직전까지도 이쪽 저쪽 방송에 다니며 목청을 높였다. 자기들 정권이 잘 했다는 거야 들어줄 수 있었는데, 갓 당선된 대통령 당선인의 행태 등을 두고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다녔다. 그의 행동에는 어린 티도 묻어났지만, 뭣에 쓰인 것도 같았다. 정권을 내려 놓아야 하는 며칠 전까지 그러니 정상 행동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난 대선에서 패할 수 없었다는 듯,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듯 '선민(選民·선택 받은 백성) 의식'이 꽉 차 있어, '따끔한 여론의 시선'은 그의 머리 공간에 들어설 수 없어 보였다. 또한 입신의 경지에 오른 '국민 갈라치기' 수법도 느껴졌다. 지난 5년 간 잘한 것보다 혹여 못한 것 때문에 국민이 힘들어 한 것을 떠올리며 옷깃을 여미어야 할 때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 비서관의 언행이 모자라 보였다.
기자는 가끔 "시작은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던 문 전 대통령의 취임사도 떠올린다.
참으로 의미가 좋은 문구다. 기자는 이 문구가 생각날 때마다 외우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맨날 까먹어 지금도 헷갈린다. '시작=평등'이 '시작=공정'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시작=평등'이 '시작=정의'로 인식되기도 한다. '과정=정의'로 묶어도 괜찮다.
예컨대 "시작은 공정하고, 과정은 평등하며···". 맨날 이런 식이다. 어디에다 갖다붙여도 의미 부여는 충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너무 좋은 문구를 어디에서 끌어와 짜깁기를 하다 보니, 만든 주체도 기자처럼 대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좌파 선생'은 저런 걸 시험에 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볼 정도다.
아무튼 문재인 정권은 5년간 '어떻게 국민을 골탕 먹이고', '어떻게 나라의 형편을 어렵게 몰아넣을 수 있는가' 등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왔다. 어설픔에다 쇼까지 해대니 국민은 더 힘들었다. 그들의 행위는 법보다 더 위에 있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도끼자루는 썩어 가고 있었다는 말이다.
'서해 공무원 월북 피살 사건'의 파장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여야의 정치 공방이야 의례적으로 치고 받는다고 치부 하지만 국민들은 이 사건의 내막을 무척 궁금해한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로 보면 '은폐' '조작' '공작' 등의 단어가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튀어오르고 있어 폭탄급이다. 이들 단어가 사실일까? 사실이면 무척 큰 일이다.
그제(17일)엔 이 사건의 일선 수사기관인 해양경찰청이 "월북한 단서를 못 찾았다"고 2년 전 자신의 발표를 번복하며 사과를 했다. 곧바로 감사원이 특별수사국을 동원해 감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기자는 감사원을 오래도록 담당해 기사를 쓴 적이 있어 감사의 메커니즘(흐름)을 잘 아는 편이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인 사안은 감사원 감사(특감)가 끝나면 바로 감사자료는 검찰로 이첩 된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기초로 해당 기관에 징계 등을 요청만 한다. 또한 검찰처럼 금융권 계좌를 들여다 볼 권한이 없다.
이날 유가족은 기자회견을 하고 사고 당시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민정수석을 고소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기자는 관련 기사들을 읽다가 서해 공무원 월북 피살건이 '1인 세월호 사고인가?'라고 쓴 댓글을 보았다. 두 건의 '의혹의 차이'를 역설적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2014년 4월 16일 전복)는 너무나 안타깝고 큰 사고이지만 사고 자체는 해상의 교통사고라는 관점이다. 기자도 이 주장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해상 사고'가 이내 '정치 사건'으로 변질 됐다. 사고 원인을 두고 격한 논란이 벌어졌고 뒤이어 원인 규명이 '정치란 굴레'에 빠져버린, 주객이 전도돼 버렸다.
사고 원인은 밝혀야 했기에 무려 8년을 조사 하고 수사도 했다. 다른 건도 있었지만 570여억원이란 엄청난 돈만 쓰고서 조사 관련 기관은 최근 문을 내렸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고 원인을 찾은 것도, 밝힌 것도 없다. 이를 계기로 도출된 사회 개혁이나 변화 메시지를 준 것도 찾기 어려워 '맹탕 조사'란 혹한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도 조사 과정에 '의뭉스런 사회·정치 세력'이 너무 많이 개입돼 조사(수사 포함)의 취지가 퇴색됐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해상 교통사고'로 보고 조사와 수사를 했더라면 이렇게 많은 돈, 이렇게 긴 시간을 낭비하고 허비하지 않았을 수 있다. "수조원을 들여 조사를 했어도 단순 해상교통사고 외엔 결론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조롱도 나온다.
파장이 커지고 있는 '서해 공무원 월북 피살사건'에서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세월호에서도 요구됐던 사고 당시의 정확한 기록물들이다. 그 기록만 보고 풀어나가면 세월호처럼 꼬이지 않고 보다 쉽게 풀릴 사안이다. 유족도 지속 이를 요구해왔다.
17일 해경의 '서해 공무원 월북 원인 번복' 발표 이후 자료를 종합하면, 청와대에서 '월북 지침'을 내렸다는 말이 해경 등을 통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사실 여부는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밝혀진다.
그런데 자료를 공개하라는 요구에 더불어민주당은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국민의힘이 "기록물을 보자"고 하니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협조 못하겠다"고 일언지하 거절했다. 그 이유로 "먹고 살기 어려운 지금 경제가 우선이다"고 에둘러 말했다. 이 건은 민주당에 악재임은 당연하다. 하필 당이 비상시국인 이때 이런 대형 악재가 터졌나 하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민주당이 난감한 이유는 해경이 '월북이라고 얽은 것'이 잘못됐다고 실토를 했기에, 그 기록물이 공개되면 누가 '월북 프레임'을 씌워 지침을 내렸는지 단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자료는 '대통령기록물'로 분류해 향후 15년 간 봉인된 상태다. 다만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가 찬성하면 봉인이 해제된다. 현재 168석으로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자료 공개에 응하면 국민이 갖고 있는 궁금증은 풀린다. 하지만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또한 고등법원이 봉인 해제 영장을 발부해도 가능하다. 하지만 제한 규정이 엄격하다.
‘관할 고등법원장은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외교관계 및 국민경제 안정을 심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영장을 발부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고법장의 영장 발부로 열람이 허용된 것은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기록물 유출 의혹 사건, 2013년 남북정상회의록 사건 등으로 매우 적다.
사고가 난 당시 보고를 받았던 문 전 대통령은 퇴임후 지금 경남 양산에서 산다. 자연과 벗삼아 모종도 심고 한다며 연일 대국민 홍보를 하고 있다. 퇴임전 조용히 살고 싶다던 언급이 무색할 정도로 자신의 일상을 하루도 빠짐없이 알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 사건을 전임 정부에 의한 '월북 공작'으로 규정하고 문 전 대통령도 압박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월북 공작’으로 규정하며 “사건의 전모는 모두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5·18이나 세월호 참사 등에 있어서 항상 진상규명을 피해자·유가족 중심주의에 따라 강하게 주장하던 모습대로 월북 공작 사건에 대해서도 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민주당이 내세우는 거짓 평화를 위해서라면 한 사람의 명예와 인권은, 그리고 유가족의 아픔은 무시해버릴 수 있는 오만함에 대해 육모방망이보다 더 강한 분노의 민심 표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성동 국힘 원내대표도 "문재인 전 대통령 답하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18일 자신의 SNS에서 "세월호의 진실은 인양하겠다면서, 왜 서해 피격 공무원의 진실은 무려 15년 동안 봉인하려고 했나"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사람이 먼저다'라고 외치고 또 외쳤으면서 왜 목숨의 무게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달라졌나"라고 따지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지금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SNS에 올라오는 전 대통령의 일상이 아니다. 국민적 의혹 앞에 문 전 대통령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20년 9월 피격 사건 당시 해양경찰청(군 당국 포함)은 "자진 월북"이라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으나, 1년 9개월 만인 지난 16일 "월북 의도를 찾지 못했다"며 당시 결론을 뒤집고 사과했다.
누가 번복을 만들었을까? 5년 문재인 정권일까, 1개월의 윤석열 정권일까?
문재인 정권이 공작을 하고 이를 은폐 했다면 전 정권의 정체성에 엄청난 타격을 줄 건 뻔하다. 정권을 갖고 있었다면 정권이 무너질 정도의 파괴력을 지녔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반발하며 시위를 하다가 실종된 김주열 학생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을 물러나게 만든 4·19의거의 도화선이 됐다.
1987년 연세대 이한열 학생이 교문에서 시위를 하다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다. 이 또한 '6·10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다. 아이로니컬 하게도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 학생을 안은 학생이 우상호 현 민주당 위원장이다. 이 사진은 많은 곳에서 공유돼 있어 잘 알려져 있다.
우 위원장으로선 '공무원 월북 피살 사건'이 빼도 박도 못할 만큼 난처하게 된 지금이다.
미국 정부는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자국민이 해외에서 피해를 당하면 경기(驚氣)를 낼 정도로 곧바로 반응한다. 자국민 제일주의다.
지난 2017년 스무한살 대학생이던 미국인 오토 웜비어는 북한 여행을 갔다가 정치 선전물을 훔쳤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 끝에 그해에 숨졌다. 미국 정부는 곧바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 하고 매년 추모 성명을 내고 있다.
의회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국제금융시스템에서 퇴출시키는 ‘오토 웜비어 법안’을 통과시키고, 북한정보 통제 가담자를 제재하는 법안도 웜비어 이름으로 처리했다. 5년이 지난 최근엔 뉴욕 맨해튼엔 웜비어 도로도 만든다는 소식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혼존하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로 자리하는 힘은 여기서 나오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 정권 관계자들은 이 사건을 엄중히 직시해야 한다. 지금은 양산 사저에서 모종 심는 홍보를 하는 게 대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