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의 단촐한 차례상…떡국 등 딱 5개만 올려
17대 종손 “정성 들이되 간소하게”
전문가 “조상이 아침밥으로 먹을 정도로”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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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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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북어포, 전, 과일, 술 5개만 올린다'
익히 알려진 퇴계 이황 선생 종가의 설 차례상 목록이다. 추석을 맞아 퇴계 후손들이 차리는 차례상 얘기를 들어보자.
17대 종손 이치억 씨(45)는 “차례상은 정성은 들이되 간소하게 차린다”고 말했다. 퇴계 선생은 생전에 제사상에 유밀과(油蜜菓)를 올리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다. 후손들이 지금가지 이를 철저히 지켜오고 있다.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섞어 기름에 지진 과자다.
전통 제례문화 지침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르면 명절 때에는 '간단한 음식'을 차려 조상에게 새해 인사를 올린다. 그래서 차례(茶禮)라고 한다. 고작 차만을 단촐하게 차려 예를 구한다는 뜻이다. 제사와 다르다.
주자가례에는 명절 차례상에 술 한 잔과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을 차리고, 술은 한 번만 올리며 축문도 읽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전문가들도 명절 차례상을 차릴 때 형식에 연연하지 말고 형편과 상황에 맞출 것을 권유한다.
김동목 성균관 전례위원회 위원장은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조율이시, 홍동백서 등의) 형식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고기 산적 같은 제사 음식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며 “조상이 좋아했던 삼겹살 한 근 떼다가 구워 올리면 그게 바로 ‘적(고기)’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설 차례상은 떡국 한 그릇과 고기반찬 하나, 후식으로 먹을 과일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차례주도 막걸리 같은 전통주를 사용하거나 물을 따라 올려도 좋다고 한다. 과일도 차례상에 올리는 ‘조율이시’(대추 밤 배 감)를 모두 갖출 필요 없이 기호에 따라 먹기 좋은 과일을 올리면 된다.
한국국학진흥원도 "차례상에 음식을 많이 올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전통을 따르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진흥원 관계자는 “간소하게 시작된 차례상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며 점차 복잡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차례상이 원래 모습을 찾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실제 옛날에 돈을 모은 천민이 양반 직책을 사고, 60~70년대 이후 일반 가정에서도 여유가 생기면서 부잣집 차례상을 따라해 번잡해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한다.
일각에선 “이번 코로나 설이 허례허식과 불필요한 노동을 없앨 기회”라며 반기고 있다. 직계 가족끼리만 따로 모이고 반드시 올려야 하는 음식만 준비하려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