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도시빈민의 처참한 현실을 고발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저자 조세희 작가가 숙환으로 25일 오후 7시쯤 80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1942년 경기 가평군에서 태어나 보성고와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를 다녔고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EBS 북채널e 캡처

1965년 ‘돛대 없는 장선’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한 이후 10년 가까이 작품을 쓰지 않다가 1975년 ‘문학사상’에 난장이 연작의 첫 작품인 ‘칼날’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78년 ‘뫼비우스의 띠’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 단편 12편을 묶은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출간했다.

난장이 연작 12편은 산업화의 물결에 터전을 잃고 밀려나 몰락하는 도시 빈민의 고통을 다룬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1978년 6월 초판 1쇄를 찍은 이후 2017년 4월까지 300쇄를 찍었다. 당시 누적 발행 부수는 137만 부에 달했다. 이어 올해 7월까지 320쇄를 돌파했고 누적 발행 부수는 148만 부에 이른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발표된 직후부터 문제작으로 주목받았다.

1970년대 들어 본격화 한 빈부 격차와 도농 격차, 노사 갈등 등의 사회적 모순을 깊이 있게 다뤄 당시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도시빈민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난장이로 상징화 하면서 환상적 기법을 동원한 소설 작법은 현실의 냉혹함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연작 단편의 하나인 '뫼비우스의 띠'는 굴뚝 청소를 함께한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깨끗하다면 모순이란 화두를 끌어내 당대의 사회를 꼬집었다.

고인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으로 이듬해 제13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2000년대에는 대학수능에 출제되는 등 작품은 현재까지도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이 작품은 접속사와 수식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간결한 문체와 사회적 약자에 공감하는 문제 의식으로 후배 문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작가 신경숙 씨는 자전적 소설 '외딴 방'에서 "'난쏘공'을 노트에 베껴쓰면서 문학공부를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 199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계엄령과 긴급조치의 시대였던 1970년대에 이 작품을 쓴 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 삶에 경고 팻말이라도 세워야겠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한 작품이 100쇄를 돌파했다는 것은 작가에겐 큰 기쁨이지만 더 이상 '난쏘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고 밝혔다.

고인의 작품은 이 외에도 '오늘 쓰러진 네모'(1979년), '긴 팽이모자'(1979년), '503호 남자의 희망공장'(1979년), '시간여행'(1983년), '하얀 저고리'(1990년) 등이 있다. 사진산문집으로 '침묵의 뿌리'(1986년), 희곡 '문은 하나'(1966년)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두 아들이 있다. 발인은 28일이며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