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중장년 기성세대가 종종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젊은층이 어투를 차용해 코믹하게 한 표현입니다. 직장 등에서 '꼰대'를 비꼬는 말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꼰대들이 겪었던 일은 온고지신은 물론이고 반면교사로도 와닿습니다. 더경남뉴스의 정기홍 편집인이 '라떼는 그랬지'란 추억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애독을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요 며칠간 경남의 기초지자체에서 설맞이 대청소에 나섰다는 보도자료가 나옵니다.
명절을 앞두고 각 지자체의 관변 단체 회원들이 마을 어귀나 앞마당, 도로변의 쓰레기 등을 치우는 작업입니다.
'명절맞이 대청소'는 몇 십년 전만 해도 루이의 가정에서는 엄청나게 큰 행사였습니다.
대부분 슬레이트나 초가 등 단독 주택이어서 한동안 집안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거미줄도 걷어내는 등 대청소를 하는 것이지요.
또한 농삿일을 하면서 집 주변에 쌓아두었거나 널브러지게 팽개쳐두었던 것들을 정리정돈도 합니다.
이는 불과 20~30년 전에 보던 광경들입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전, 추억의 명절 풍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이면 마을 방앗간은 붐볐지요. 요즘 떡국떡으로 부르는 하얀 가래떡을 뽑고 가까운 읍내에 가서 차례상에 올릴 제수품과 아이들의 설빔도 삽니다.
꼬까옷(때때옷)과 고무신, 운동화 등은 최고의 명절 선물이었지요.
달리 목욕을 제대로 안해 몸에 낀 때를 빼고, 광을 내는 때입니다.
때 빼는 이야기는 더 있습니다.
읍내에 있는 목욕탕에 가지 않으면 가마솥에다 물을 끓여 방에다 큼지막한 다라이(대야) 놓고 물을 붓고서 목욕을 합니다. 웃긴 건 평소에 목욕을 하지 않아 대중 목욕탕에 가면 낀 때가 보일까봐 못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방앗간에서 기계에서 뽑는 가래떡도 추억거리이지요.
기계에서 김을 솔솔 내면서 나오는 가래떡 말이지요. 큰 대야에 찬 물을 받아놓고서 뽑혀 나오는 가래떡을 가위로 일정 길이로 자르면, 가래떡이 찬 물에 떨어져서 붙지 않습니다. 이것 하나 얻어 먹으려고 오래 앉았거나 종일 주위를 서성이곤 했지요.
가래떡은 방 안에서 며칠을 말려서 잘 드는 부엌칼로 씁니다. 밤새 썬 기억이 새록새록 할 겁니다. 떡꾹을 끓일 때 맛을 더 내려면 한쪽으로 비스듬히 어섯썰어야 하는데 초보들은 잘 안 되빈다. 뭉툭하게 썰어지고, 크기도 일정하지 않지요.
오래 썰면 검지손가락이 칼질로 인해 통증이 오거나 물집이 생깁니다.
방의 한 구석에선 집에서 고운 엿으로 만든 산자(유과)도 말려집니다. 쌀이나 보리 뻥튀기나 콩과 깨 등이 재료가 되지요. 이를 통틀어 '도시말'로 한과라고 합니다. 받칠 종이나 비닐 등이 없어 신문지나 책장을 위에다 놓고 빨래방망이 등으로 밀어서 만듭니다. 먹을 땐 붙어 있는 신문지를 뜯어내고서 먹는데, 당시 신문지의 잉크 성분이 몸에 얼마나 해로웠는지는 모를 일이지요.
부엌에서 차례상에 올릴 부침개 등을 부치는 광경도 이제 그리운 모습이 다 됐지요.
명절의 포근함과 따스함, 번잡함 등이 어우러진, 지난 광경들입니다. 요즘은 거의 전문점에서 배달해 차례상을 차립니다.
요즘은 이런 모습들이 거의 사라졌고, 명절 청소만이 지역의 기관과 단체에서 대신하고 있습니다.
명절 대청소의 의미마저도 지금은 거의 사라질 정도로 영역이 좁아져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일단 요즘 시골 마을엔 주민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70~80대 어르신들입니다. 젊은층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최근 충청의 어느 마을에서는 마을회관에 나오는 어르신 가운데 80세 분이 가장 나이가 적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사는 사람이 적고 고령화 됐으니 명절 미풍양속을 이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도 관변단체 회원들이 기본적인 마을 청소를 하는 것을 보니 고향을 찾는 출향인들을 반기는 듯해서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