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농사 짓던 노부부가 참기름병으로 쓰다가 1원에 판 백자가 국보 된 사연
문화재청이?펴낸 '유물과 마주하다?내가 만난 국보·보물'서 밝혀져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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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6 11:14 | 최종 수정 2023.02.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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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 노부부가 야산에서 주운 뒤 참기름병으로 사용하다가 1원에 팔았던 병이 국보로 지정된 뒷이야기가 문화재청이 발간한 책자에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최근 '유물과 마주하다-내가 만난 국보·보물' 책자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 책자에는 '1원에 판 참기름병'을 포함해 모두 13점의 문화유산을 조사한 소회와 뒷 이야기가 담겼다.
이 가운데 하찮은 참기름병으로 쓰였던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의 사연이 가장 흥미를 끈다.
지난 1920년대 경기도 팔당 근처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봄나물과 참기름을 팔아 생계를 잇던 할머니가 나물을 캐다가 목이 긴 흰색 병을 발견한 뒤 집에 가져와서 직접 짠 참기름을 담는데 사용했다. 참기름을 담기에 더없이 좋은 병이었다.
할머니는 필요할 때마다 그곳에서 병들을 주워 참기름병으로 사용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왕실용 자기를 생산했던 사옹원 분원 가마터였다.
이후 할머니 부부는 참기름을 이 병에 담아 한 상인에게 1원을 받고 팔았다. 병값이라기보다 참기름 값이었다. 이 상인은 이 참기름을 광주리를 팔던 개성댁에게 다시 팔았고, 이어 개성댁은 참기름을 경성(지금의 서울)의 황금정에 사는 단골인 일본인 부부에게 가져갔다.
이 참기름병을 예사롭지 않게 본 일본인 부인은 개성댁에게 병값으로 1원을 더 얹어 5원에 참기름을 구입했다. 이 부인의 남편인 골동품상 무라노는 이 참기름병이 조선백자임을 알아보고 다른 골동품상에게 60원에 팔았다. 이때가 1920년 초였다.
이후 여러 수집가를 거쳤고 이 병은 1936년 경매에서 1만 4580원에 낙찰됐는데 이 가격은 당시 기와집 15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조선백자 중 역대 최고 금액이었다.
낙찰을 받은 사람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1906~1962)이었다.
문화재청은 1997년 1월 붉은 안료 진사, 검은 안료인 철사, 푸른 안료 청화를 함께 장식한 매우 이례적인 작품으로 평가하고 이 ‘1원짜리 참기름병’을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으로 이름을 붙었고 우리나라 국보로 지정됐다.
책은 이 이야기 말고도 미술문화재연구실 연구자들이 국보와 보물 조사 과정에서 선별한 ‘보물 서경우·서문중 초상’ 등 문화유산 12개의 뒷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자는 문화유산 조사, 보존, 관리에 기여한 개인 소장가와 문중, 사찰, 전국의 국·공·사립 도서관과 박물관에 배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