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이 모셔진 경남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경천묘(敬天廟)에서는 춘향대제가 봉행됐습니다.
경천묘는 경순왕을 모신 사당(祠堂·조상의 신주를 모셔 놓은 집)이며, 춘향대제(春享大祭)란 이른 봄에 종묘와 사직에 지내는 큰 제사를 뜻합니다.
봄을 맞은 요즘 지자체마다 지역에 있는 향교 등에서 제사를 올리는데 독자분들, 특히 젊은층 독자분들이 내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마침 경남 하동군에서 관련 사진을 보내와 소개해보겠습니다. 5장의 사진이 별 다름이 없이 미세하지만 진행 순서대로 대별해 설명을 곁들입니다.
경천묘 당무회(당장 한충영)가 주관한 이날 춘향대제는 경순왕 후손과 경주 김 씨 문중, 유림 등 7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음식을 차려 올리는 폐백(幣帛)에 이어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이상 삼헌례)와 음복례(飮福禮), 망요례(望燎禮)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삼헌례란 제사를 대표해 올리는 제관인 삼헌관(초헌관·아헌관·종헌관)이 합니다.
음복례는 제사를 모시고 나서 하는 예인데 복(福)을 마신다는 뜻입니다. 집안에서 제사나 차례를 지낸 후 상에 올렸던 술 한잔을 제주가 마시는 것이죠. 우리가 자주 보는 것입니다.
조상과 신령(神靈·신)이 흠향(歆饗·조상 등이 제사상을 받음)했던 것을 다시 받아먹음으로써 복과 덕을 물려받는다는 주술적 의미입니다.
본래는 제사를 올린 후 술을 마시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제사상 제물들을 나누어 먹는 것으로 넓어졌습니다.
망요례는 제례가 끝난 뒤 음식물을 제외한 축문 등을 태워 없애는 의식입니다. 이 또한 자주 보는 것이지요.
폐백이란 단어가 특이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결혼식 직후 신부가 시부모를 처음 뵐 때 큰절을 하고 올리는 물건입니다. 주로 대추, 포 등을 올립니다. 또 혼인 전에 신랑이 신부 집에 보내는 예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임금에게 바치거나 제사 때 신에게 바치는 물건이란 뜻도 있네요.
지금까지 예스런 단어의 뜻풀이를 해봤습니다. 이래야 이 기사를 더 이해하기 때문에 푸짐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다시 하동 경천묘 춘향대제로 글을 옮깁니다.
경천묘는 경순왕의 어진이 모셔져 있어 경남문화재자료 제133호로 지정·관리 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경순왕을 알 이유가 있습니다. 중고교 역사책에서도 나와 있습니다.
경순왕은 신라의 국운이 다하자 국권(國權·나라의 권한)을 양도하고 강원도 용화산 학수사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훗날 임금의 경천애민(敬天愛人·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함)의 뜻을 기리고자 학수사에 사당을 지어 모셨으나 후세들이 경북 경주 숭혜전으로 옮겼고, 1903년에 청암면 중이리 검남산 밑에 경천묘를 건립해 모셔왔다고 합니다.
이후 청암면 중이리 일대가 하동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지난 1988년 11월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고요.
경천묘에는 경순왕 어진이 봉안돼 있는데 면류관(冕旒冠·왕이 쓰는 모자)을 쓰고 양손을 모아 홀(작은 판자)을 쥔 상태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1677년에 모사(模寫·원본을 그대로 그림)된 어진으로 2008년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474호로 지정됐다고 하네요.
이광재 면장은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어진이 모셔져 있는 사당에서 춘향대제 행사에 초대돼 뜻깊고 의미있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면민이 경순왕에 관해 알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지금까지 하동군에서 보낸 비슷비슷한 사진 5장을 순서대로 해서 이야기식 기사로 얽어봤습니다. 특히 젊은 독자분들은 이 기사를 꼼꼼히 읽어놓으면 동네 근처에 있는 향교나 서원 등에서 치러지는 행사를 보다 더 관심있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