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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사건 속으로] "낳은 적 없는데, 미칠 노릇이다"···대법원도 '구미 여아' 친모 사건 혐의점 못 찾았다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5.18 14:52 | 최종 수정 2024.10.05 13:00 의견 0

더경남뉴스가 우리 사회에서 수 없이 발생하는 사고와 사건을 이야기식으로 재구성해 소개합니다. 단순한 사고와 사건이어도, 지역이 다를 지라도 여러 사람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사안은 '사회 현상'을 가미해 재구성해 내겠습니다. 이 코너에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 유전자(DNA) 검사에서 피해 아동의 친모로 밝혀진 50대 여성이 18일 대법원에서 아이 바꿔치기 혐의에 대해 무죄 확정을 받았다.

이 여성은 법정에서 일관되게 아이 바꿔치기 사실을 부인했고 경찰과 검찰도 바꿔치기와 관련해 구체적 수법과 일시 등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이날 미성년자 약취와 사체 은닉 미수 혐의로 기소된 석 모(50) 씨에 대해 미성년자 약취 건은 무죄로 확정했다. 다만 사체 은닉 미수 혐의는 유죄로 보았다.

숨진 아이 바꿔치기 혐의 벗은 50대 석 모 씨가 구치소에서 남편에게 쓴 편지 내용. 석 씨의 남편이 공개했다.

대법원은 "유전자 검사에서 사망한 아이가 석 씨의 아이인 것으로 판명됐으나, 그 아이를 바꿔치기 한 혐의도, 동기도 찾을 수 없다"고 무죄 취지를 설명했다. 대법원도 이 사건을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앞서 대법원에서 되돌아온 파기환송심에서 대구지법 형사항소1부는 지난 2월 미성년자 약취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고, 사체 은닉 미수 혐의는 유죄로 판단해 석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로 석 씨는 약 2년 만에 석방됐다.

당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검찰에 아이 바꿔치기 혐의에 대한 추가 증명을 요구했으나 검찰은 충족할만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대구지검은 같은 달 7일 상고장을 제출해 이날 한번 더 대법원의 판단을 받았지만 기존의 결과를 뒤집지를 못했다.

이 사건은 의문의 연속이어서 세간의 관심이 컸다.

지난 2021년 2월 경북 구미의 한 빌라에서 홀로 방치됐다가 사망한 3세 여자 아이가 반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여아의 사인은 ‘아사(餓死)’로 추정됐다.

여아와 함께 이 빌라에 살았던 석 씨의 딸 김 모(24) 씨는 2020년 8월 아이만 남겨둔 채 재혼한 남성과의 사이에서 가진 다른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이사를 했었다.

아사한 아이는 2021년 2월 9일 아래층에 살고 있던 석 씨에 의해 발견됐다.

임대인으로부터 김 씨가 거주하던 집의 임대기간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짐 정리를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석 씨는 딸 김 씨의 처벌을 우려해 아이 시신을 몰래 매장하려다가 포기하고 하루 뒤 경찰에 “외손녀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숨진 아이의 친모가 김 씨가 아닌 외할머니인 석 씨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경찰은 수차례에 걸쳐 유전자 검사를 했고, 그 때마다 석 씨가 친모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석 씨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두 아이를 바꿔치기 했다고 봤다.

하지만 석 씨와 그의 남편은 줄곧 출산한 사실 자체가 없고 따라서 아이 바꿔치기를 하지도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남편은 잠자리를 하는 아내의 배가 불러온 적이 없다고 했다.

세간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라고 수근거렸다. 첨단과학에 의거한 유전자 검사를 믿어야 할 지, 이 세상에서 이해하고 판단하기 힘든 경우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했다.

재판은 이런 와중에 진행됐다.

경찰은 석 씨가 혹여 바꿔치기 했을 것으로 추정됐던 김 씨 친딸의 행방과 공범 등을 추적했지만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한 채 재판이 진행됐다는 말이다.

1심과 2심은 석 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석 씨가 그의 딸 김 씨가 낳은 아이와 바꿔치기했다는 점을 입증할 직접 증거가 없어 유죄로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파기환송심인 재판부는 “미성년자약취 혐의에 대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바꿔치기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약취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서 “(검찰의)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사체은닉 미수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두가지의 의미를 던졌다.

하나는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고한 사람으로 추정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첨단과학기술도 구분하기 힘든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는 지다.

전자는 재판에서 흔히 말하는 '10명의 범인을 놓칠지언정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후자는 이 세상에서 이해가 안 되는 '그 무엇'이 있는 지를 생각하게 한 희대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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