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4절기 중 9번째를 맞는 망종(芒種)입니다. 여름철에 접어든 세번째 절기로 30도 이상의 초여름 날씨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보리가 익어가는, 예전엔 배를 곯아 숨 넘어가던 '보릿고개' 시기이기도 하지요.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드는데, 작년과 올해는 현충일(6일)과 겹쳐졌습니다. 현충일은 망종일과 망종 때 지내던 제사에 의미를 두고 지정했다고 합니다.
망종의 망(芒·가시랭이)은 벼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곡물을 의미하고, 종(種)은 씨앗을 뜻합니다. 벼와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시기란 의미입니다.
망종 절기는 모내기와 보리베기에 알맞는 때로 두 일이 겹쳐 농가에서는 무척 바쁩니다.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빈 논에 벼(2모작)도 심고, 작물을 심는 밭갈이도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보리를 많이 심지 않아 이 공식은 별로 유효하진 않습니다. 또한 1모작을 한 논의 모는 안착해 파릇해지는 시기입니다.
이때는 날씨가 변덕스러워 장맛비같은 억수도 더러 내립니다. 하지만 드물게 심한 가뭄이 드는데 천수답이 지천일 때는 논에 물을 대지 못해 모내기를 할 수가 없었지요. 요새는 저수지, 4대강 등 용수 시설이 잘 돼 있어 물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최근엔 지구 온난화와 비닐모판 활용 등으로 모 성장 시기도 빨라져 모를 심는 시기가 일주일~10일 정도 앞당겨졌습니다. 망종보다 한 절기 더 앞선 소만 무렵부터 모내기를 시작해 지금 이때는 막판 모내기를 합니다.
옛날 모내기 이야기를 잠깐 하고 가겠습니다. 요즘같이 이앙기용 모판이 아니고 손으로 일일이 찝니다.
먼저 못자리에서 자란 모를 쪄서 짚으로 하나씩 작게 묶어놓습니다. 이를 '모침'이라고 하는데 주로 동네 아주머니들이 찝니다. 모를 논 가운데 던지기 좋고, 모를 심을 때 편리하도록 작게 묶는 것이지요. 장정들은 이것을 바지게에 얹은 뒤 지고서 논두렁을 오가며 논의 중간 중간에 던져놓지요.
이어 모를 심는데 논두렁에서 모를 심는 것을 조율하는 못줄잡이와 논 안에서 모를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못줄잡이의 우렁찬 목소리에 따라 조금씩 이동을 하면서 질퍽한 흙탕논 가운데에서 손모내기를 하지요.
보통 초록이나 흰색의 못줄에는 20cm 안팎 간격으로 빨간 코를 만들어 놓습니다. 이 간격으로 모를 심는다는 말입니다. 십수 명이 길게 늘어서 모를 심기에 일사불란해야 능률이 오릅니다. "못줄 넘어가요"라고 외치면 아픈 허리를 잠시 펴고 이어 다시 심고 하지요. 못줄은 탱탱하도록 지속 잡아당겨줘야 합니다. 줄이 처지면 흙탕물에 못줄이 잘 보이지 않아 지청구가 들어옵니다. 못줄 잘 잡아라는 질책이지요.
보통 한 집의 모내기는 찔끔찔끔 하지 않고 몰아서 합니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한날을 잡아 동네에서 품앗이로 모내기를 하기에 하루 종일 모를 심습니다. 따라서 못줄잡이가 잘못하면 하루 모내기 성과가 큰 폭으로 줄어듭니다.
옛날 손모내기가 그리운 요즘입니다.
중노동인 모내기는 힘든 만큼이나 아름드리 그늘 밑에 둘러앉아 먹는 새참과 점심의 맛은 꿀맛이었지요. 감나무잎에 두어 토막 올려 놓은 양념 갈치구이의 맛은 먹기 힘든 천상(天上)의 맛입니다. 요즘에는 먹고 싶어도 못 하는 귀한 경험이고 추억거리였지요.
옛 사람들은 망종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누었습니다.
초후(初候)에는 사마귀가 생기고, 중후(中候)에는 왜가리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지빠귀가 울음을 멈춘다고 했습니다.
이때는 또 사마귀나 반딧불이가 나타나고, 매화 열매가 커져 수확을 하기 시작합니다. 매화 열매는 건강에 좋다며 집집마다 챙겨두고 먹고 마시는 매실입니다.
들녘을 오갈 때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따먹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5~6월 이맘 때 산과 들가에 잘 익어 있습니다. 오디는 혈당을 낮추는 당뇨나 정력 강화, 피부에 좋답니다. 또 혈압을 낮춰 주고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루틴 성분이 많다고 합니다.
이것 뿐이겠습니까. 시골에서 자란 분들에게는 눈에 선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겁니다.
한방에서는 이 시기가 기온이 오르고 에너지를 밖으로 많이 내놓아 뱃속이 냉해지기 쉬운 때라고 합니다. 심장과 소장이 약해지기 쉬우니 잘 보하라고도 합니다.
■망종 속담
농번기 절기여서 망종 관련 속담이 많습니다.
-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망종을 넘기면 보리가 심해지는 바람에 쓰러지는 수가 많아 이를 경계하는 뜻도 담고 있다고 합니다.
-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베서 먹고 가을 추수를 위해 모를 심는다는 뜻입니다.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속담도 같은 맥락입니다. 보리베기·모내기로 몹시 바쁜 시절입니다.
- 발등에 오줌 싼다/ 보리벼기, 모내기, 모종 심기 등으로 1년 중 제일 바쁜 시기란 뜻입니다.
- 망종이 4월에 들면 보리의 서를 먹게 되고 5월에 들면 서를 못 먹는다/ '보리의 서를 먹는다'는 말은 그해 풋보리를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양식이 부족해 보리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풋보리를 베어다 먹었다고 하네요. 풍족한 요즘 시절에 의미가 없으니 이 글로써 옛일을 기억해 보는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망종 절기풍습
망종보기, 보리그스름 먹기, 보릿가루로 죽 해먹기 등이 있군요.
망종보기란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듦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겁니다. 망종의 시기에 따라 그해의 보리 수확이 늦고 빠름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음력 4월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 돼 빨리 거둬들이지만 5월이면 보리농사가 늦어져 망종 내에 보리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망종이 4월에 들면 보리의 서를 먹게 되고 5월에 들면 서를 못 먹는다'는 속담과도 풀이가 같습니다.
그래서 망종 시기가 지나면 밭보리가 그 이상 익지를 않으므로 더 기다릴 필요 없이 눈 감고 베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 '보리는 망종 삼일 전까지 베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역 풍속
경남의 섬 지역에서는 망종이 음력 4월 중순에 들어야 좋다고 전해집니다. 일찍 들면 보리농사에 좋다는 뜻입니다. 부산 남구와 강서구 구랑동 압곡에서는 망종에 날씨가 궂거나 비가 오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또 전남, 충남, 제주에서는 망종날에 천둥이 치면 그해의 농사가 시원치 않고 모든 일이 불길하고 생각한답니다. 반대로 우박이 내리면 시절이 좋다고 여깁니다.
제주도에서는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모은 뒤 솥에 볶은 뒤 맷돌에 갈아 채로 쳐 보릿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남에서는 이날 '보리그스름(보리그을음)'이라 해 풋보리를 베다가 그을음을 해서 먹으면 이듬해 보리 풍년이 든다고 여깁니다. 풍년이 들어 보리가 잘 여물면 그해는 보리밥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잘 여문 보리가 더 달다는 뜻이겠지요.
또 망종날 보리를 밤이슬에 맞혔다가 다음날 먹는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슬을 맞은 보리를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약이 되고 그해에 질병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