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인의 절반 정도가 평소 울분 상태로 생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울분은 부당하고 모욕적이며 개인의 신념에 어긋나는 스트레스 경험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의미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27일 발표한 ‘2024 국내 일반인 울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자의 49.2%가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외상후 울분장애 자가측정 도구를 사용해 측정했다. 특히 국민 10명 중 1명은 답답하고 분한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었고, 30대의 울분 수준이 전 연령층 중 가장 높았다.
이번 조사는 올해 6월12일부터 14일까지 전국의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2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연구팀은 울분 정도를 1.6점 미만(이상 없음), 1.6점 이상~2.5점 미만(중간 수준), 2.5점 이상(심각 수준)으로 구분해 조사했다.
외상후 울분장애 자가측정 도구를 사용해 측정한 결과 5점 만점에 1.6점 이상인 경우로, 부당함이나 모욕감을 느끼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분노와 좌절감이 만성화된 상태다.
예컨대 '출발선이 다르고 불공정함을 많이 느끼는 울분이다.
지난 2019년 독일의 유사한 조사 결과(15.5%)보다 3배 이상 많다.
특히 30대의 경우 13.9%가 ‘높은 수준의 울분’을 보여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높은 수준의 울분'은 5점 만점에 2.5점 이상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한 상태를 의미한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대는 11.4%, 40대는 11.8%, 50대는 11.9%가 높은 수준의 울분을 나타냈다. 반면 60세 이상은 3.1%로 가장 낮았다.
이번 조사에서 울분의 주요 요인으로는 낮은 공정세계신념, 낮은 계층인식, 주변의 몰인정·몰이해 경험 등이 지목됐다.
이 중에서도 ‘세상은 기본적으로 공정하다’고 믿는 정도를 의미하는 공정세계신념에서 20∼30대의 점수(3.13점)가 60대 이상(3.42점)보다 낮게 나타났다.
열심히 노력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현실에 사회의 공정성에 의문을 던지는 식이다. 노력해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꽉 막힌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유 교수는 “30대의 높은 울분 수준은 세상의 공정함에 대한 믿음이 낮은 것과 관련성이 있다”며 “특히 공정세계신념 점수의 차이가 유의미한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계층 인식도 울분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자신을 ‘하층’이라고 인식하는 응답자의 60.0%가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있는 반면 ‘상층’이라고 인식하는 응답자의 61.5%는 ‘이상 없음’ 상태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울분은 감정 상태를 넘어 정신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조사 결과 울분 수준이 높을수록 우울 점수도 높았다. '높은·심각한 울분' 상태의 응답자 중 75.8%가 중간 정도 이상의 우울 증상을 보였다.
우려되는 점은 자살 생각과의 연관성이다.
'높은·심각한 울분' 상태의 응답자 중 60.0%가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최근 1년간 부정적 사건을 하나라도 경험한 경우는 전체의 77.5%였다.
'전반적인 세상의 공정함에 대한 믿음' 점수는 20대와 30대에서 모두 3.13점으로 가장 낮았고, 만 60세 이상(3.42점)에서 가장 높았다.
사회·정치 사안에 대한 울분을 물었더니 4점(매우 울분)에 조금 못 미치는 평균 3.53점으로 사회·정치적인 요인이 울분에 큰 영향을 키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분을 일으키는 사회·정치 사안 상위 5위 안(같은 문항을 적용한 이전 조사 포함)에는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 ▲정부의 비리나 잘못 은폐 ▲언론의 침묵·왜곡·편파 보도 등이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었다.
올해 조사에서 상위 5위 안에는 ▲안전관리 부실로 초래된 참사 ▲납세의무 위반이 새로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