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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한국인 첫 노벨문학상] "전쟁으로 이렇게 사람이 많이 죽는데"···한강, 수상 기자회견 안 한다

부친 한승원, 한강 의중 전해

정창현 기자 승인 2024.10.11 12:43 | 최종 수정 2024.10.13 05:17 의견 0

"세상에 이렇게 많이 전쟁으로 죽는데 무슨 잔치냐. 상은 즐기라고 준 게 아니기 때문에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53)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85) 씨는 11일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토굴 정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딸이 '기자 회견을 안 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한승원 작가는 지난 1997년 가을 고향인 안양면 사촌리 율산마을에 창작공간인 ‘해산토굴’(海山土窟)을 지어 거주하면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해산은 그의 호다.

그는 딸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공식적으로 기쁨을 표하거나 기자회견을 갖지 않는 이유를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죽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한강(53)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85) 작가가 11일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토굴 정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YTN

한승원 작가는 "노벨문학상 발표 후 딸과의 통화에서 끝없이 들어오는 전화 통화에 고심을 하더라"며 "저는 딸에게 국내 문학사 중 이물없는(허물없는) 창비, 문학동네, 문지(문학과지성사) 중 하나를 선택해서 기자회견장을 마련해 회견을 하라고 했다. 딸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창작과비평은 한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등을 냈고, 문학동네는 '희랍어 시간'과 '흰' 등을, 문학과지성사는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여수의 사랑', '바람이 분다, 가라' 등을 펴냈다.

그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이야기를 해보니 생각이 바뀌었더라"며 "그새 한국 안에 사는 작가로의 생각이 아니라 글로벌적 감각으로 바뀌어 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승원 작가는 "(딸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모든 죽음이 실려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할 것이냐며 기자회견을 안 할 것이라고 했다"며 "양해해 달라"고 전했다.

그는 딸의 수상 소식을 듣고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한승원 작가는 "한림원의 결정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코로나19로 인해 노벨문학상 수상이 한 해 쉬고 그 다음 해에 한 번에 2명이 발표되는 일이 있었다. 그때 수상자의 나이를 고려하면 딸은 4년 뒤에나 상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딸은 더 젊었으니까 놀랐다. 저는 (노벨문학상 발표를) 깜빡 잊고 잠을 자기 위해 자리에 들었는데 기자의 전화로 소식을 알게 됐다"며 "처음에는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승원 작가는 "노벨문학상은 최근 발표된 작품에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닌 그 작가의 인생에 발표한 작품을 총체적으로 관조해서 결론을 내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우리 딸은 아직 차례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리얼리즘 소설의 대가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황석영 작가 등 유명 3세대 작가 대신 4세대인 후배 작가(한강)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섬세한 감수성'을 이유로 들었다. 이어 "한강의 소설에는 (우리 세대) 작가에게 없는 신화적인 거, 문화인류학적인 그윽한 정서가 있다. 문체가 아주 아름답고 섬세하다"고 했다. "한강의 문장은 아름답고, 섬세하고, 슬프다"고 했다.

한승원 작가는 "내 세대, 제3세대 작가로 황석영 씨가 대표적인데 그의 사실주의 소설 특징은 민주화 근대운동이 한참 일어날 때라 저항적인 요소가 강했다"며 "심사 위원들은 한강의 리얼리즘에 담긴 아름다운 세계를 포착했기 때문에 후세대에 상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그는 "우리 딸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른 거 같다. 나는 골목대장(국내만 산다는 의미)인데, 한강은 세계를 보는 사람 같다"며 이렇게 밝혔다.

한강은 또 아버지에게 "노벨문학상 수상 전화를 받고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한승원 작가는 "한강처럼 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한강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어릴 때 낙동강, 대동강 등으로 놀림을 받은 탓인지 등단할 때는 뒤에 '어질현(賢)'자를 붙여 '한강현'으로 응모를 한 기억이 난다. 이름처럼 크게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의 어머니 임감오 씨는 이날 새벽 자택 앞에 태극기를 걸어놓았다. 임 씨는 "딸에게 노벨문학상 받으면 태극기를 걸겠다고 평소 말해왔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한강 작가는 지난 10일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강 작가는 수상자 발표 후 노벨위원회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너무 놀랐고 영광이다. 지지해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며 "나는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자랐다. 나는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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