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황' 나훈아(77) 씨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라스트 콘서트-고마웠습니다’ 서울 첫 공연을 가졌다. 서울 공연은 10~12일 사흘간 같은 장소에서 단독으로 진행된다.
이날 공연에선 약 2시간 30분간 23곡의 히트곡을 불렀다. 첫 곡 ‘고향역’부터 내리 6곡을 부른 뒤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 ‘마지막 공연’이다. 오늘 아침에도 연습을 하면서 가슴이 좀 먹먹하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대표곡 ‘사내’를 부를 땐 눈물을 보였다. 지난해 4월 첫 고별 무대인 인천에서의 환하게 웃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그의 대표곡이자 갖가지 사설을 하는 무대로 각인된 ‘공’을 부를 땐 어김없이 농담과 함께 정치적 일침을 놓았다. 이 시간은 공연 때마다 ‘띠리~’ 후렴구를 활용해 그의 속내를 꺼내보이는 순서다.
지난 2008년 불거졌던 ‘신체 절단설’도 능청스런 농담 소재로 올랐다.
“여러분은 ‘니가(너가)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노’ 생각하실지 모르것지만, 기억나십니까. 내보고 밑에 다 잘맀다(잘렸다) 카고. 지금은 웃지만 여러분, 제 속이 어땠겠습니까. 띠리~!”.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나왔다.
대통령 계엄 후 탄핵 정국이어선지 정치권을 향한 작심 발언 수위는 상당히 높았다.
“인제 그만 두는 마당에 아무 소리 안 할라켔는데··.”라며 부산 사투리로 운을 뗐다.
이어 자신의 두 팔을 들어보인 뒤 왼팔을 가리키며 “니는 잘했나”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계엄 선포 사태 이후 좌우로 나뉘어 책임론을 묻는 정치권 분쟁을 왼팔과 오른팔에 빗대 질책한 것이다. 계엄 선포도 과했지만 30번에 가까운 탄핵과 느닷없는 예산 삭감 등으로 '식물 정부'로 만든 야당의 책임도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을 싸잡아 한 지적이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형제들을 혼내던 어린 시절 예를 들며 “서로 잘못했다 난리를 직이면(치면) 우리 어무이(어머니)는 ‘둘 다 바지 걷어라!’며 다 때렸다. 형제가 어떤 이유가 있어도 싸우면 안 된다는 논리를 말하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우린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하고 (하며) 난리가 났는데, 느그(너희) 하는 꼬라지들이 정말 국가, 국민을 위한 짓거리인지 묻고 싶다”고 질타했다.
그가 “내 말에 동의를 안 해도 좋다”고 했지만 객석에선 “동의” “옳소”라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공'을 다 부른 직후에도 쓴소리를 이었다.
“여러분, 지금 우리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져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텔레비전에서 어떤 군인들은 계속 잡혀 가고, 어떤 군인은 찔찔 울고 앉았다. 이것들한테 우리 생명을 맡긴다? 웃기지 않나”라고 작금의 계엄 사태 상황을 꼬집었다.
“언론들이 이런 걸 생중계한다는 게 문제다. 북쪽 김정은이 얼마나 좋아하겠나”고도 했다. 객석에선 또 다시 “맞다”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정치하는 분들이 반은 국회에서 밤을 새고, 탄핵을 하니 생 지랄을 하든 뭘 하든 다 좋아. 다 좋은데, (나머지) 반은 국방을, 우리가 먹고 사는 경제에 신경 써야 한다. 경제고 국방이고 다 어디로 가버리고 지금 딴짓들만 하고 앉아 있는데”라고 혀를 찼다.
나훈아 씨는 지난 12월 7일 대구 단독공연에서 자신이 한 말이 왜곡됐다고도 했다.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계엄 해제 나흘 만의 공연 때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두 팔을 들어보이며 “왼쪽이 오른 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 난리를 치고 있다. 이 얘기가 지가(제가) 지방(대구)에서 한 얘기”라고 정정했다.
당시 공연에서 그는 “요 며칠 밤을 꼴딱 새웠다. 공연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국회의사당이 어디고? 용산은 어느 쪽이고? 여당, 야당 대표 집은 어디고?” 등의 발언을 했는데 일부 언론에서 ‘나훈아가 계엄 사태와 현 정부에 분노해 쓴소리를 했다’는 해석을 했었다.
“내 생각과는 관계없이 저거 색깔에 맞게, 맘대로 막 쓴 기다. 그럼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낮은 출산율과 관련해 “애들이 애를 안 낳는다고 하니, (나이 든) 우리라도 애를 낳아야 한다”는 농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앞으론 땅을 걷겠다고 했다.
“여러분, 저는 구름 위를 걷고 살았습니다. 왜냐면 별, 스타니깐. 좋을 것 같아 보여도 저도 사람이다보니, 별로 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땅에서 걸으며 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 마이크를 놓는다는 이 결심입니다”
관객들 사이에선 “안돼”라는 아쉬움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일부 관객은 “70대 후반이지만 체력도 대단해 더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이상 무대에 서지 않는다니 너무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는 “내 공연은 보시다시피 힘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다. 나도 후배들 몇 명 데려와서 쉬었다가 나오면 편한데, 여러분들은 나를 보러온 것 아니냐”며 은퇴를 기정사실화 했다.
한편 나훈아 씨는 지난해 2월 자필 편지로 은퇴 계획을 알렸다.
이후 4월 인천, 5월 청주·울산, 6월 창원·천안·원주, 7월 전주, 10월 강릉, 11월 안동·진주·광주, 12월 대구·부산에서 차례로 고별인사를 전하며 공연을 이어왔다.
그는 지난 1966년 '천리길'로 데뷔한 이후 '무시로', '사랑', '영영', '잡초', '홍시' 등 국민 애창곡을 직접 쓰고 불렀다. 모두 1200여 곡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