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경남뉴스는 일상에서 소소해 지나치는 궁금한 것들을 찾아 이를 흥미롭게 설명하는 코너를 마련합니다. 유레카(eureka)는 '알았다!'라는 뜻입니다.
양력으로 1월 29일은 설날이었다. 설이란 음력 1월 1일을 말한다.
정부는 올해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해 설 연휴를 6일간 쉬었다. 31일 휴가를 낸 직장인은 2월 1~2일(토~일요일)까지 말 그대로 실컷 쉬었다.
오래 됐지만 한때 이중과세(二重過歲·설을 두번 쇰)라고 해 음력설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고 양력설을 쇤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랜 전통의 풍습은 쉽게 없어질 수 없는 것. 대다수 가정에서는 개별적으로 음력설을 쇠었다. 이중과세를 하지 말자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설을 양력으로 정했지만, 되레 이중과세가 더해진 이상한 상황인 것이다.
'정초(正初)'란 정월 정(正), 처음 초(初)로 '정월 초하루'를 줄인 말이다. 정월의 시작 일이다. 정(正)은 '바를 정'도 되지만 '정월 정'도 의미한다. 또 정월(正月)이란 음력으로 한 해의 첫째 달이다. 음력 1월이다.
그런데 정초란 말을 양력설에 써도 될까? 안 된다.
100여년 전 서울의 정월 초하루 풍경. 뒤엔 북한산에 눈이 내려 온통 하얗게 변한 가운데 엄마가 설빔을 차려입힌 남매를 데리고 광화문으로 나왔다. 남매는 고무풍선을 하나씩 갖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 엘리자베스 키스는 1919년 3개월 정도 한국에 살았고, 1921년에 그림 그림이다. 국가유산청
많은 사람은 이를 모르고 양력 1월 1일을 즈음해 정초란 말을 자주 쓴다.
왜 잘못 쓰는 것인지 정초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자.
정초(正初)의 사전 뜻은 '정월의 초승'이나 '그 해의 맨 처음'이다
여기에서의 초승(初生)이란 '음력으로 그 달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 동안'을 뜻한다.
정초와 비슷한 말은 설, 세수(歲首), 세초(歲初), 수세(首歲), 연두(年頭), 연수(年首), 연시(年始), 조세(肇歲) 등이 있다.
또한 정월(正月)은 새해의 첫 달이다.
그러면 정초는 음력 1월 1일 이후 언제까지를 말할까?
다시 말하지만 정초의 단어 뜻에 충실하면 '정월 초하루'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정초를 '정월 초하루에서 정월대보름까지란 뜻으로 통용하고 있다.
참고로 요즘은 덜하지만 우리는 설날에 집안 어른을 찾아 세배를 드리는 풍습을 갖고 있다. 먼저 가까운 집안 어르신과 형제를 찾아 세배를 하고, 이어 먼 친척이나 동네 어르신 등을 찾아 세배를 한다.
또 해마다 정초, 정확히 정월대보름을 즈음해 꽹과리와 징 등을 치며 가가호호를 돌며 한 해 액풀이를 하는 지신밟기를 한다.
이들 사례에서의 정초는 1일에서 15일까지를 말한다. 세배를 설날 하루만 하는 것이 아니고, 지신밟기도 정원대보름 전후에 한다.
기자도 집안 어르신으로부터 정월대보름까지는 찾아 새해 새배를 드려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혹시 바쁘거나 잊거나 빠뜨려서 세배를 못 드렸으면 그 때까지 찾아 세배를 드려도 된다는 뜻이었다.
오래 전 음력설을 쇨 때엔 "정초엔 한번 찾아뵙겠다", "정초엔 얼굴 한번 봐야지", "정초부터 싸다니냐" 등의 말들은 한해를 보내고 시작할 때 일상에서 자주 오갔다.
'새해가 시작돼 얼마 되지 않아서'를 의미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층은 물론 중년 이상도 정초란 말을 거의 안 쓴다. 쓸 일이 줄어드니 생갱한 단어가 돼 간다. 설 명절의 의미를 크게 보지 않는 것이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설빔을 차려입고, 윷놀이와 재기차기, 연 날리기 등 민속놀이는 고궁에서나 보고 체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 정부에서 양력설을 쇠기로 결정한 이후에도 양력설을 중시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양력 1월 1일은 설이라기보다 해를 바꾸는 달력 한 장 넘어가는 정도로 인식했었다.
참고로 양력설이 도입된 배경과 연유 등을 알아보자.
양력설은 1950년 도입돼 공휴일로 지정됐었다. 신정(新正·새로운 정월)이라고 했다. 선진국들이 한해의 시작을 양력으로 삼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특히 이웃 일본이 오래 전부터 양력설을 쇤 것이 더 영향을 줬다.
이런 이유들로 양력설이 명절의 대세가 됐지만 오래 자리잡은 우리의 세시풍속을 바꾸지 못했고 여론에 밀려 정부는 1985년 이른바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이름지어 하루를 쉬도록 했다.
이어 양력설과 민속의 날이 공존하다가 1990년에 음력설이 정식 공휴일이 됐다. 대대로 이어진 음력설 전통을 없애긴 역부족이었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빼도박도 못하는 '이중과세'가 돼 버린 셈이다.
음력설이 진정한 설로서 공휴일이 된 지금, 양력설은 설이란 의미보단 한해의 시작되는 날로 생각하고 있다. 직장에선 신년사를 하고 기업이나 관공서에서는 시무식을 한다. 1월 1일이 공휴일이면 2일에 주로 한다.
양력으로 한해를 보내는 연말과 연초 밤엔 서울 종로의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타종 행사(1953년 시작)를 하는 등 전국의 주요 지역에선 비슷한 타종식을 한다. 방송에서는 제야의 타종 행사를 어김없이 중계한다.
이런 행사 말고는 양력설에는 음력설과 달리 마을공동체 단위의 행사가 거의 없다.
마을 단위로 벌어지는 동제(洞祭) 등 세시 행사는 모두 음력설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1872년 태양력이 채용된 이래 원단(元旦)이란 이름으로 양력에 설을 쇠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와 같이 여전히 춘절(春節)이라는 명칭으로 음력설을 지낸다.
북한에서는 한동안 양력에 설을 쇠다가 1989년 정무원의 결정으로 음력설도 공휴일로 지정해 쇠고 있다. 북한에서는 음력설에 하루만 쉬고 양력설에는 이틀간 쉰다.
정초란 말이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면 정초나 정월이란 말은 세시풍속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사어(死語)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안 쓰니까 그렇다.
요즘엔 카카오톡 등 메신저와 화상통화를 쉽게 할 수 있어 굳이 정초에 찾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세배는 아니라도 새해 덕담은 나누는 게 좋겠다.
또한 정초와 정월의 말뜻을 제대로 알고서 구별해 써야 하겠다.
"정초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이다. 양력 설에 쓰는 단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