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후근 한국한복진흥원장이 열악한 정부 한복정책의 현실 전반을 분석·연구한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연구에는 충남대 배관표 교수와 백석원 충남대 아시아여론연구소 부소장이 함께 참여했다.

한국 문화가 'K-컬처'란 브랜드로 해외시장에 진출해 현지인의 큰 관심과 함께 화제를 몰고 있으나, 정작 맵시의 우리 한복 정책은 체계적이지 못해 성과를 거두지 못 하고 있다는 따끔한 충고의 논문이다. 논문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 학술지에 게재됐다.

KCI는 한국어권 학술지에 실린 학술 연구실적을 평가하기 위해 한국연구재단에서 구축한 비영리 인용 색인이다.

정부의 한복 정책 연구논문을 공동 발표한 박후근 한국한복진흥원장(맨 왼쪽)과 백석원 아시아여론연구소 부소장, 배관표 충남대 교수(맨 오른쪽). 박 원장 제공

박 원장 등은 최근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지(제25권 제5호)에 '한복 정책의 현황 분석 및 정책 과제'란 주제의 논문을 실었다.

이 논문은 정부의 현재 한복 정책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논문 내용을 3개 분야로 나눠서 요약한다.

▶추진 체계 및 법률·규제 정책

논문은 '추진 체계 및 법률·규제 정책 분야'에서, 한복 정책 기능 보강은 물론 국가한복연구센터 설치 등으로 한복 산업 체계적인 지원·육성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충언했다.

먼저 문화체육관광부의 한복 등 전통문화 부서의 담당 인력 부족을 지적했다.

현재 문화부 전통문화과 인력은 10명도 채 안 돼 한복을 비롯한 전통문화의 제도 정비, 육성·지원 등을 총괄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

논문은 특히 연구 통해 문화부의 정책 기능을 뒷받침 하는 연구전문 기관이 부재하다는 점을 문제로 제시했다.

2022년부터 추진됐던 '지역한복문화창작소'가 한복 진흥 거점 및 추진 체계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지역한복문화창작소를 한복 교육 및 문화 확산을 위한 한복 정책의 모세혈관과 같은 체계로 육성해야 하는 데도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했다.

지역한복문화창작소는 현재 전북 전주와 경북 상주에 있으며 3년 한시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박 원장은 "2024년 6월 임오경 의원이 발의해 현재 국회 소관 상임위에서 심사 중인 '한복문화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조속히 제정돼야 한복 정책이 제자리에 서게 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문화부의 '전통문화산업 진흥 기본계획'(2024년) 등에 따른 정부의 한복 진흥 정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총괄한다.

이에 국가유산청이 국가유산 사무와 관련해 참여하고, 전통문화산업 육성 전담 공공기관인 (재)한국광예디자인문화진흥원한복진흥센터가 지역한복문화창작소(2022~2026년 3년 한시사업), 한국한복진흥원, 한국전통문화전당, 강릉문화원, 부산섬유패션산업연합회, (사)한국천연염색 등을 관할하고 있다.

이 외에도 중소벤처기업부 등 일부 중앙 부처가 한복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국가 한복진흥정책 추진 체계

한편 현재 경북엔 상주 한국한복진흥원이 225억 원(국비 50%, 지방비(경북도·상주시) 50%)을 들여 개원해 10명이 근무하고 있다.

▶지원 정책 분야

지원 정책 분야에서는 '정책 목표와 정책 대상 간의 미스매칭' 여부를 분석하고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속히 한복 관련 국고보조금 전달 체계를 재검토 해 이 같은 미스매칭 사례를 분석한 뒤 후속 대책을 강구할 것을 요구했다.

한복 정책 예산과 관련, 2021~2023년 3년간 관련 분야에 보조한 국고 총액은 486억 5190만 원이었다. 하지만 '2022 한복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한복 문화 진흥 종사자(업체)의 5.3%만이 정부 지원을 받았다.

특히 한국한복진흥원의 경우 225억 원(국비 112억 원)을 들여 2021년 4월 상주에 개원했지만 국고보조금이 2022년 6억 2천만 원, 2023년 5억 7천 만원, 2024년 3억 5천만 원으로 매년 줄어들었고 올해 본예산에는 국고보조금을 책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한복진흥원이 설립 취지에 맞는 역할을 하려면 예산 지원과 함께 제대로 된 기능이 부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문은 한복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정책의 문제점도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선 문화부와 교육부가 함께 2021~2023년 19억 6천여만 원의 예산을 들여 진행한 '한복교복사업'의 사례를 언급했다. 한복의 형태를 너무 많이 벗어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2020한복도록'의 일부 디자인은 비교적 관대하게 한복을 정의하는 국가유산청의 '궁릉 무료관람 가이드라인'에도 미치지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한복교복사업' 부실 사례. 한복의 깃을 표현한 한복교복(왼쪽)과 소매 안쪽에 색동문양을 넣은 한복교복(오른쪽). 왼쪽 사진은 지난해 12월 해외문화홍보원의 간행물(HANBOK HERE 여기 지금, AND NOW 한복), 오른쪽 사진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공동으로 제작한 '2020 한복도록'에서 발췌했다.

이와 유사한 부실 사례로 문화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추진한 '2024 한복디자인 프로젝트 공모전'의 수상작도 소개했다. 논문은 일부 수상작의 경우 한복의 형태를 크게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2024년 한복 디자인 프로젝트 공모전'의 일부 수상 작품. 연구자가 2024년 8월 9일 찍었다.

'2024년 한복 디자인 프로젝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

'2024년 한복 디자인 프로젝트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작품

논문은 이런 유사 사례를 줄이려면 한복교복사업 및 한복 관련 포상 시 한복의 고유성과 전통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복 관련 13종 국가무형유산 보유자가 생산한 한복 관련 상품들을 국내외 시장과 연계해 확산시키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정보 정책 분야

정보정책 분야에서는 유물·문헌 조사, 학술 연구 및 원형 발굴·재현 등에 관한 사업이 활발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한복의 산업화·세계화를 위해선 이에 대한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전통 복식의 보존·활용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디지털 3D' 구축이 필요하며 명주·무명·삼베·모시 등 전통 섬유 원료에 관한 연구 및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논문은 한복에 관한 각종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 출간 및 세미나, 체험프로그램, 학술 활동에 예산 지원도 뒤따라야 한복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추진하는 '전통한복 입고 궁궐 체험'은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인데도, 주로 서울에 있는 궁궐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와 관련해선 한복 입기 체험 행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서원·향교 등으로 확산시키자고 제안했다.

외국인 여성 관광객들이 지난해 봄 서울 종로구 경복궁 바로 옆 서촌 골목(적선골)에서 한복 맵시를 뽐내며 걷고 있다. 더경남뉴스 DB

한편 교신 저자로 참여한 충남대 국가정책대학원 배관표 교수는 이번 연구와 관련, "과거와 현대가 함께하는 지금은 한복 정책을 포함한 전통문화 정책 전반을 재점검해 구조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배 교수는 지난 2022년 8월 박 원장과 함께 국회입법조사처 학술지인 '입법과 정책'에 '전통한지정책의 현황과 문제 분석 : 입법 방안 도출을 위해'를 발표했다.

공동으로 연구에 참가한 충남대 아시아여론연구소 백석원 부소장도 "이 논문을 계기로 실효성 있는 한복 진흥 정책이 펼쳐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후근 원장은 "한국한복진흥원의 향후 역할을 어떻게 정립할 지를 검토 중이며, 이 과정에서 먼저 국가의 한복정책 전반에 관해 연구했다"며 "이번 논문을 토대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차근차근 추진하고, 중앙 정부 등에 건의할 사항은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후근 한국한복진흥원 원장, 백석원 충남대 아시아여론연구소 부소장, 배관표 충남대 교수

한국한복진흥원은 중앙과 지방 정부를 포함해 정부 부문 유일의 한복 업무 전담기관으로 지난 2021년 4월 경북 상주시에 함창읍에 개원했다. 정부 출연금으로 운영하며 국비와 도비, 시비로 각종 한복 진흥 사업을 추진한다.

박 원장은 2024년 2월 부임한 뒤 한국한복진흥원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