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경남뉴스가 우리 사회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사고와 사건을 이야기식으로 재구성해 소개합니다. 단순한 사고와 사건이어도, 지역이 다를지라도 여러 사람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사안은 '사회 현상'을 가미해 재구성해 내겠습니다. 이 코너에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른바 '전남 보성 어부 살인사건'의 장본인으로 최고령 사형수였던 오종근 씨가 복역 도중 지난해 87세로 숨진 사실이 최근 알려졌습니다.

그는 지난 2007년 자신의 배(어선)로 바다 구경에 나선 여성들을 추행과 성폭행을 하려다가 남녀 4명을 바다에 빠뜨려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오 씨는 사형이 확정돼 광주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숨을 거뒀습니다.

오 씨는 69세이던 2007년 8월과 9월 각각 10대와 20대 남녀 4명을 자신의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간 뒤 여성을 탐하기 위해 동승한 남녀들을 바다에 밀어넣어 살해했습니다.

자신의 배 위에서 어로 작업을 하고 있는 오종근 씨의 뒷모습. 이 사진은 지난 2007년 8월 31일 오종근 씨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디지털카메라에서 나왔다. SBS

당시의 두 사건을 재구성해 봅니다.

# 10대 남녀 대학생 살해 사건

2007년 8월 31일 보성군 회천면 동율리 앞 우암선착장. 열아홉 살 동갑내기 대학생 김 모 씨와 추 모(여) 씨는 출항을 준비하던 오 씨에게 다가가 "할아버지, 저희가 배를 안 타봤는데 한 번만 태워주시면 안 돼요"라고 청했습니다.

이들의 청에 오 씨는 흔쾌히 승락합니다. 남녀는 배를 타고 바다를 구경하고 싶은 기대감에 이후에 일어날 일을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더구나 오 씨의 외모가 순했고 키(165㎝ )도 작고 말라 큰 의심없이 배를 탔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9세로, 인심 좋은 노어부처럼 보였던 것이지요.

오 씨는 자신의 주꾸미 어장이 있는 득량만 해상으로 배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주꾸미 어장에 도착할 때쯤 친절하기만 했던 노어부의 행동은 돌변했습니다.

오 씨는 경찰에서 "갑판에 걸터앉아 있는 여학생을 보고 갑자기 '가슴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성욕을 느꼈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이어 자신의 욕정을 채우는데 방해가 될 남학생을 먼저 살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어 추 씨 옆에 앉아 바다를 감상하던 김 씨의 뒤로 다가가 등을 밀었습니다.

바다에 빠진 김 씨가 허우적대며 다시 배에 오르려고 했지만 오 씨는 갈고리가 달린 2m가량의 도구로 찌르고, 내려치고, 밀어냈습니다. 도구는 그물이나 큰 물고기를 끌어올릴 때 쓰는 '삿갓대'였습니다.

체구가 작고 곧 칠십대를 앞둔 노인이었지만 뱃일을 오래해 힘이 셌다고 합니다.

오 씨의 법원 판결문엔 '젊은 사람들이 기계장비로 하는 일을 맨손으로 할 수 있을 정도'라거나 '힘은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센 편'이라고 적시됐습니다.

기력에 빠진 김 씨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파도에 떠내려갔습니다. 오 씨는 혼자 남아 떨고 있는 추 씨에게 다가가서 손을 뻗으며 성욕을 채우려 했고, 추 씨는 저항했습니다. 추 씨와 승강이를 벌이던 오 씨는 "같이 죽어브러라(죽어버려라)"라며 밀어 바다에 빠뜨렸습니다.

추락한 추 씨가 뱃전을 붙잡으며 버텼지만 오 씨는 앞서 김 씨를 때렸던 그 도구로 그녀를 바다로 밀어냈습니다.

추 씨는 바다에 빠지기 전인 이날 오후 6시 26분부터 5분 동안 4차례 119 통화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4번째 119 신고 녹음 파일에는 뱃소리, 파도소리와 함께 오 씨의 육성이 1.2초 나옵니다.

"어서(어디서) 무전질이여?"

오 씨는 인면수심의 범행 후 날이 어두워지자 출항했던 우암선착장으로 돌아왔지만 그날 밤 배 안에서 자고 다음 날 어구를 정리한 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범행 3일 후, 보성 옆 고흥 앞바다에서 추 씨 시신이 발견됩니다. 이어 2일 뒤엔 보성군 득량면의 한 선착장에서 남학생 김 씨의 시신이 떠오릅니다.

김 씨의 시신은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고 합니다. 범행 당시 오 씨가 삿갓대로 김 씨가 배에 못 올라오게 가격해 생긴 타박상, 골절상 등의 흔적이었습니다.

경찰은 당시 이런 내막을 전혀 모른 채 실족사나 동반자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남학생의 몸에 심한 상처가 있는데도 기본적인 의심을 하지 않은 경찰의 판단 미스가 아쉬운 대목입니다. 이유는 다음 사건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 20대 여대생들 살인사건

오 씨는 이후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평소처럼 생업을 이어갔습니다.

일은 20여 일 후 또 터졌습니다.

오 씨는 9월 25일 추석을 맞아 보성으로 놀러온 20대 여대생 2명을 다시 자신의 배에 태웁니다.

여대생 조 모(사망 당시 24세) 씨와 안 모(당시 23세) 씨. 배를 타고 바다를 구경하고 싶어 찾았지만 명절이라 배가 드물었습니다. 마침 출항하는 어선이 눈에 띄었는데 하필 오 씨의 배였습니다.

오 씨는이들의 요청을 몇 번 거절하다가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습니다.

인적이 드문 외진 선착장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미 범행을 마음먹은 것이지요.

두 사람은 들뜬 마음에 별다른 의심 없이 배에 올랐습니다. 한 참을 가다 배가 멈춘 곳은 20여 일 전 남녀 대학생을 살해한 득량만 해상이었습니다.

범행은 앞선 범행과 똑같은 방식으로 재연됐습니다.

오 씨는 어선에서 3시간 정도 어로작업을 하다가 안 씨 가슴 쪽으로 음탕한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의도를 육감적으로 알아챈 안 씨가 외부로 도움 요청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다음은 안 씨가 보낸 문자 내용입니다.

'배 타다가 갇힌 거 같아요. 경찰보트 좀 불러주세요'

오 씨는 곧이어 마각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안 씨에게 다가가 "아가씨, 작년부터 관계를 못하는디···"라며 가슴을 만지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안 씨는 오 씨의 마각 손길을 쳐내면서 반항했고 조 씨는 오 씨의 온몸을 붙잡았습니다. 오 씨는 안 씨를 배 바닥에 패대기친 뒤 바다로 빠뜨렸습니다. 조 씨도 목을 졸라 넘어뜨린 뒤 바다로 밀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 씨도 물에 빠졌지만 뱃일이 익숙해 곧바로 배에 올라왔습니다.

조 씨는 조류에 휩쓸려 이내 사라졌고, 안 씨는 배에 다시 오르려고 했지만 오 씨가 '삿갓대'로 밀쳐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오 씨는 이번에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주꾸미를 채취하고 어구를 정리해 선착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선착장 인근 평상에서 쉬고 있던 이웃 주민들에게 일부러 다가가 주꾸미를 내보이며 "추석날이니까 비싸게 팔릴 것 같아 나갔다"는 말도 했습니다. 태연함을 넘어 능청스런 행동이지요.

두 여학생의 시신은 며칠 뒤 보성 앞바다에서 발견됩니다.

다음 날, 오 씨는 경찰에 긴급체포됐습니다. 안 씨가 어선에서 보낸 구조 요청 문자메시지가 단서가 됐던 것입니다.

경찰의 오 씨 배 현장조사에서는 피해자들의 신용카드와 볼펜, 여성 머리카락 수십 가닥이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 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그는 "안 씨는 소변을 보기 위해 선미에서 선수 쪽으로 이동하던 중 실족해 바다에 빠졌고, 조 씨는 이를 잡으려다 같이 바다에 빠졌다"며 안전사고라고 항변했습니다.

경찰은 20여 일 전 비슷한 해역에서 발생해 시신이 떠오른 1차 살인사건과 달리, 선박에서 나온 증거물과 피해자들의 시신 부검 소견 등을 들이대며 진술의 모순점을 추궁했습니다.

오 씨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범행을 시인했습니다. 이전 8월 31일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실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수사나 법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로 죽이고 죽으라는 팔자로 태어났는가 보다", "피해자들이 운이 없었다"라고 뇌까렸습니다.

심지어 "피해자들이 옷을 제대로 입고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단추를 안 잠그고 떡 벌려 놓은 상태에서 ○○이 불룩 나와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앞서 범행을 부인할 땐 "배 태워 달라고 해서 배 태우고, 빠진 사람 신고 안 한 죄밖에 없다", "공짜로 배를 얻어 타려고 한 저놈들이 잘못"이라고 뻔뻔스레 말했습니다.

처음엔 살인의 동기를 운과 팔자소관으로 돌리다가, 나중엔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한 것이지요.

# 사형 언도

1심은 이런 오 씨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남녀 4명을 자신의 배에 태워 무참히 살해하고 체포된 후 범죄를 부인하는 등 재범의 우려가 있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오 씨는 사형이 선고될 것을 예견한 듯 선고 전날 반성문을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사형이 언도되자 곧바로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마지못해 제출한 반성문은 휴지조각이 됐지요.

그는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사형을 면하려고 재판 전략을 바꿉니다. 살인 사건의 사실 관계를 호도하고 감정에 읍소합니다. 본래의 행동을 숨기고 속이는 일종의 양동작전(陽動作戰)이지요.

앞서 살해했다던 진술을 뒤집고 안전사고라고 주장합니다. 죽인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피해자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이어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며 심신 장애도 주장했습니다.

불우했던 가정사도 들먹이며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친모가 일찍 죽고, 이복 자식으로 집안에서 차별을 받으며 서럽게 자랐다"고 읍소했습니다. "고령이라 신체적으로 쇠약해져 있다"고도 했습니다.

항소심(2심)은 오 씨가 주장한 '사실 오인'이나 '심신 장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 씨는 2심 재판에서 변호인을 통해 "사형과 무기징역형 사이의 대체 형벌을 마련해야 한다"며 사형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따져 물은 것입니다. 한갓 어촌의 촌로로 보기엔 당찬 결정으로 보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여 한 때 언론을 통해 떠들썩했습니다. 하지만 헌재는 2010년 2월 재판관 9명 중 5명의 의견으로 사형제 존치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그해 6월 오 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그는 국내 최고령 사형수이자 마지막 사형 확정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솔한 참회나 최소한의 피해 회복도 외면한 채 허무맹랑한 변명만 무책임하게 늘어놓아 피해자들 및 유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주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개전(改悛·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바르게 고쳐먹음)의 정이나 장차 건전한 사회생활에 복귀할 수 있는 개선·교화의 가능성을 찾기는 어렵다"

한편 오 씨가 사망함으로써 국내 사형수는 57명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1997년 이후 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사형제 폐지 국가입니다.

# 오 씨의 삶

오 씨는 평생을 바다를 생업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열 살 무렵부터 주꾸미를 잡는 어부생활을 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21세 때인 1959년 결혼해 2남 5녀를 뒀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의 범행이 알려진 뒤 가족과 주민들의 충격은 컸습니다.

맏아들은 남부끄러워 살 수 없다며 자살했고, 오 씨의 부인은 수십 년을 살던 마을을 떴습니다.

이웃들은 "영감이 엄청 순하게 생겨서 시장 사람들이 다 좋아했다. 그 사람이 그랬다는 게 상상이 안 간다"고 했습니다. 다만 말수가 적고 고집이 셌다고 했습니다.

이웃은 한 언론에 "'각시질(혼외 여성과의 성관계 전남 사투리) 잘하는 것만 빼면 괜찮았어"라고 말해 평소 여성과 관련한 품행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범행 1년 전인) 2006년 이후 아내와 성관계를 갖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합니다.

'성욕' 때문에 이듬해 한 달 사이에 4명을 죽인 연쇄 살인마로 변했습니다.

그는 갔지만 1~3심 판결문과 경찰과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 오 씨의 범행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이뤄진 범행의 진실은 오로지 그 밖에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최근 오 씨의 사망 기사들이 나간 뒤 달린 댓글 하나입니다. 아마 오 씨가 나중에 살인을 부정하면서 "빠진 여성들을 구했다"는 주장에 기반한 글로 보입니다.

'어부의 욕정이 살인으로 번졌다. 바다에 빠진 남녀를 구하려 했던 늙은 어부는 바다 물에 젖은 여자의 자태가 그대로 드러나자 그 어부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범죄자가 되었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살인 범죄자로 전락한 욕정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지라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행동을 한 것이다. 사람이기에 그 욕정을 이겨내는 참는 것이 사람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