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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이야기] 오늘(20일)은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이날 비의 의미는?

정창현 기자 승인 2022.04.20 08:06 | 최종 수정 2023.03.06 15:07 의견 0

곡우(穀雨)는 24절기 중 6번째 절기입니다. 청명(淸明)과 입하(立夏) 사이에 있고 봄을 마지막으로 느끼는 절기이지요. 곧 여름철 날씨가 시작됩니다. 곡우 때는 바닷가 지방에서 곡우바람이 세게 분답니다. 기상청은 오늘 강원 동해안 북부지방엔 태풍과 같은 '양간지풍'(양양~간성 간 국지풍)을 예보했습니다.

곡우에 비가 와야 좋다고 합니다. 비가 와야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천수답에 하늘만 쳐다보던 시절이 아니고 농사기술이 첨단화 돼 크게 염려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 본격 농사철

조선 왕실에서는 왕이 농사의 본(本)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뒤 길한 날인 해일(亥日)에 한 해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선농제(先農祭)'와 함께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는 선농대제를 4월 쯤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사적 제436호)에서 봉행합니다. 선농제는 일제강점기에 중단됐다가 지난 1979년 제기동 주민들이 제를 올렸고, 1992년부터 동대문구가 주축이 돼 국가의례 형식으로 제를 올립니다.

곡우 무렵엔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를 하는 등 농사가 본격 시작됩니다. 이때 봄비가 자주 내리고, 따라서 백곡이 윤택해집니다.

반대로 '곡우에 가물면 땅 석자가 마른다'는 속담에서 보듯 가물면 농사를 망친다고 합니다. 논밭에 씨를 뿌렸으니 비가 흠뻑 와야 하겠지요.

옛날 농가에서는 곡우 무렵에 못자리용 볍씨를 담갔습니다.

이때 볍씨를 담갔던 가마니에는 부정을 타지 말라고 솔가지로 덮었다고 합니다.
어떤 지방에선 볍씨를 담근 뒤 항아리에 금줄을 쳐놓고 고사를 지냈다네요. 논에 모판을 냈을 때 개구리나 새가 와서 모판을 망치지 못하게 해달라며 볍씨를 담근 날 밤에 밥을 해놓고 올리는 고사입니다. 또 이날 사시(巳時, 오전 9~11시)에 볍씨를 담그면 볍씨가 흘러간다고 해서 이 시간은 피했다고도 합니다.

밖에서 '부정한 일'을 당했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집 앞에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내고선 들어오게 하고, 들어와서도 볍씨는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면 싹이 잘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친다는 속신(俗信) 때문이었겠지요.

경북 지방에서는 곡우일에 부부가 잠자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토신(土神)이 질투를 해 쭉정이 농사를 짓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라네요. 또 곡우에 무명을 갈거나 물을 맞기도 하는데 이날 물을 맞으면 여름철에 더위를 떨치고 신경통과 위장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무명은 옛날 사람들의 여름철 옷감입니다.

그만큼 옛날엔 쌀농사가 한해의 가정 경제를 좌지우지했다는 의미입니다.

경북 구미에서는 곡우에 목화씨를 파종하고서 씨의 명(命)이 질기라고 찰밥을 해서 먹었다고도 합니다.

◇ 고로쇠물 다음으로 곡우물 먹어

곡우 무렵은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시기입니다. 나무 잎은 파릇파릇합니다.

전남, 경남북, 강원에서는 깊은 산이나 명산으로 곡우물을 먹으러 다녔습니다.

곡우물이란 산다래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를 낸 곳에서 나오는 물을 말하는데, 이를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하여 약수로 먹었다고 하네요. 물맛도 산뜻합니다. 곡우 전에 미리 상처를 낸 나무에 통을 달아두고 여러날 수액(樹液)을 받습니다. 2월 한달간 고로쇠 물 받는 거랑 같습니다.

자작나무 수액인 거자수(혹은 거제수)가 많아 나오는 지리산 아래 전남 구례 등지에서는 곡우 때 약수제까지 지냈다고 하군요.

곡우물을 마시지 않으면 뼈가 약해져 힘을 쓸 수 없을 것을 우려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시고 '기초체력'을 다졌다고 합니다. 고된 농사 철을 앞두고 체력을 비축한다는 의미이겠지요.

이는 지금의 연구와 논문에서도 대부분 사실로 확인됩니다.

껌에는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자일리톨(Xylitol)이 들어 있는데, 단기간에 많이 먹어도 해롭지 않다고 합니다. 당도는 거의 없고, 단맛을 내는 감미료로 충치예방 효능도 있어 껌, 음료수에 사용되고요.

또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당뇨병 환자에게 포도당 대용 에너지 공급용으로 사용하는 천연 재료가 됩니다. 뼈를 튼튼하게 하고 노폐물을 제거하고 항암·항염 효능도 있다고 알려져 있네요.

최근엔 자일리톨 워터라는 음료수까지도 개발되어 편의점에서 판매합니다.

다만 거자수액은 보관이 어렵고 숙성이 빨리 된다고 합니다. 고로쇠수액, 다래수액, 가래수액 등은 숙성 기간이 다소 늦어 한달 정도로 냉장 보관이 가능하지만 거자수액은 1주일 이상 보관이 힘듭니다.

고로쇠물은 경칩 무렵에 나오는 것을 '여자물'이라 해 남자에게 더 좋고, 거자수는 '남자물'이라 해 여자가 더 애용됐답니다.

또한 많은 나물이 지천에서 돋아나 나물 캐는 모습을 들과 산에서 보는 시절이기도 합니다.

농사꾼 장영란의 자연달력 제철 밥상에서는 '산나물을 시작으로 취, 고사리, 고비, 다래순, 나무 두릅, 엄나무 순, 파드득나물, 찔레 순으로 돋아난다. 왕고들빼기도 올라온다. 청명에 상추, 쑥갓, 엇갈이배추씨를 넉넉히 뿌렸다가 솎아서 먹고 어느새 자란 부추를 베어 먹고, 양지에는 뽕나무 순 돋아나고 가죽나무순도 올라온다'고 적고 있네요.

곡우 때의 나물은 음식을 해먹기에 딱 좋은데 이는 곡우가 지나면 나물이 너무 자라 뻣뻣해지기 때문입니다.

차(茶) 중에서는 곡우 전에 잎을 따서 만든 차를 우전차라고 하는데 곡우 이후에 딴 차(우후차)에 비해 더 품질이 좋다고 합니다.

◇ 바다엔 조기 파시

또 곡우 때가 되면 전남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가 북상해 충남 격렬비열도 부근에서 많이 잡혀 파시(波市·바다 생선시장)가 섰습니다. 이때 잡는 조기를 '곡우살이'라고 한다네요.

곡우살이는 살은 적지만 연하고 맛이 있어 서해는 물론 남해 어선도 몰려왔다고 합니다. 요즘은 조기가 덜 잡혀 옛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조금 아랫쪽인 전남 영광의 곡우사리 때에 잡히는 조기에 한식사리, 입하사리 때보다 알이 더 많이 들어 있고 맛이 좋아 으뜸으로 쳤다고 합니다.

이 무렵 함경남도의 함주군 용흥강에는 숭어떼가 산란을 하기 위해 올라오는데 강변에는 어부가 잡은 생선으로 회(膾)나 찌개를 만들어 술을 마시며 즐겼다고 전해집니다. 이때 강변 사람들은 물고기가 오르는 조만(早晩)을 보고 그해 절기의 이르고 늦음을 예측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조상들은 곡우때 나물과 조기 등의 음식을 즐겨 먹으면서 입맛 떨어진 봄철 건강을 챙겼습니다.

◇ 곡우 속담

곡우 무렵이면 농촌에서는 못자리를 만드는 등 농삿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곡우에 비가 오면 농사에 좋지 않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와 같은 농업와 어업과 관련한 다양한 속담이 전해집니다.

'곡우에 비가 오면 농사에 좋지 않다'는 속담은 이날 비가 와야 풍년이 든다는 속담과 다릅니다. 지방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는데 예컨대 인천 옹진에서는 비가 오면 샘구멍이 막혀 가뭄이 든다고 해석했다네요. 날씨점을 통해 농사 흉풍을 점쳤는데, 이도 지방마다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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