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대 춘추전국시대에 '한비자(韓非子)'라는 법철학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법가(法家)를 집대성 했고 '통치술의 제왕'으로 불립니다. 법가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법률을 뜻하지요.
한비자의 본래 이름은 한비(韓非) 또는 한자(韓子)였습니다. 달리 그의 이름을 한비자라고 칭하고, 그가 쓴 책도 한비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후대의 당나라 문학가 겸 사상가인 한유(韓愈)가 '한자'로 불리면서 혼동을 막기 위해 한비자로 통용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한비자가 더 많이 알려져 있지요.
서론 즉, 새실(사설)은 그만하고, '구맹주산(拘猛酒酸)'에 관해 알아봅니다.
한비자의 '외저설우(外儲說右)' 편에 나오는 말인데 '개가 사나울수록 술이 시큼해진다'는 뜻입니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청와대 한 비서관의 '날 선' 말에 인용을 해도 좋을 듯해 빌려왔습니다.
한자의 음(音)에 따른 훈(訓)은 개 구(拘)-사나울 맹(猛)-술 주(酒)-신 산(酸)입니다.
춘추시대의 송(宋)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장 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막을 차려 직접 술을 팔기도 했지요.
술 빚는 솜씨가 좋아 술맛이 으뜸이었고 되를 속이거나 손님에게 불친절하지도 않았고, 양조장 깃발도 높이 달아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만들어 놓은 술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술은 시었고 독채로 버리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장은 그 영문을 몰라 마을의 어른이자 현자(賢者·성인 다음으로 어진 사람)인 양천 선생을 찾아가 자초지종의 사연을 말하고 해결책을 여쭸습니다.
양천이 물었습니다. "혹시 자네 술집을 지키는 개가 사납지 않은가?"
양조장 주인은 돌발 질문에 의아해 하며 다시 물었습니다. "예. 개가 좀 사납기는 합니다만 그것이 술이 팔리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장 씨의 개는 사납기는 해도 도둑으로부터 주막을 지켜주고 주인인 자신을 잘 따르는 충견이었기 때문이지요.
양천의 말입니다.
"손님이 떨어진 것은 마을 사람들이 그 사나운 개를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 같네. 대개 어른들은 집안 아이들을 시켜 호리병에 술을 받아오게 하는데 술도가 앞에서 사나운 개가 노려보고 있으니 애들이 겁이 나 들어가겠나? 다른 집에 가지" "애들이야 자기가 마실 술도 아니고, 술 맛이 좋은 지도 모르지. 사나운 개가 있는 집을 찾을 이유가 없지 않나?"
한비자는 한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망해가는 한나라를 위한 유능한 신하가 기용 되지 못하는 현실을 이처럼 '구맹주산'에 비유했습니다.
즉, 군주(양조장 주인)가 아무리 훌륭한 신하를 중용하려 해도 조정에 간신배(사나운 개)가 있으면 정사(政事)를 제대로 펼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럴수록 국가는 점점 부패해지고 악취를 풍기게 된다는 말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국가 운영의 자리에 사리(私利)와 사욕(私慾)이 들어서면 망조가 들게 되지요. 너무 평범한 말이라 평상시 무시되지만 삶에서 진리와도 같은 말입니다.
어떤 사안이든 상식이란 틀에서 '옳은가 그런가'를 앞에 두고 판단해야 하는데 개인 생각만으로 '맞다 안 맞다'로 판단해 버리지요. 요새는 더해 "너 말은 다 틀렸어"라며 무대뽀 목청만 높입니다. 견해가 다르면 말을 붙이지 못하는 지금입니다.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진영 논리'와 비견됩니다.
최근 연일 자신만의 논리로 목청을 높이는 청와대 탁현민 의전비서관의 톤 높은 말을 듣자면 그렇습니다. 자리만 높지 지식과 지혜, 협치 등은 고사하고 외골수만 득실득실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웁니다.
갖가지 주의주장을 분칠해 그것도 국민들이 알면 들킬새라 영역이 불분명한 흐릿한 파스텔색으로 '이곳 저곳'에 '이래 저래' 칠해 놓는 행구지(행위)와 다름이 아닙니다. 본인이 먼저 한 말과 뒷 말에 앞뒤가 안 맞는 경우도 보입니다.
하루를 평범하게 사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야 그렇지만 위정자 주위의 사람들은 사욕, 즉 이해타산을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 통치자에게 달콤한 말만 하는 '진영이 사람'이 아니라 잣대를 잘 갖춘 '국민 일꾼'을 옆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진영 논리'로 국민을 미혹(迷惑)하게 만드는 이들에게 길이를 재는 '자'를 선물하는 캠페인이라도 대대적으로 벌여야 하겠습니다.
정확하게 잴 수 있는 '긴 자'가 좋겠지만 휴대 하기 좋은 '접히는 자'로 선물하는 게 더 나을 지 모르겠네요. 이런 부류는 갖은 변명으로 숨기는 기질이 몸에 배어 있어, 접히는 자는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또 지청구(이유 없이 남을 탓하고 원망)를 할 지 누가 압니까?
'진영 논리'는 한 때는 먹힐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나라와 조직은 허물어져 갑니다. 구성원 중에 ‘사나운 개’가 있으면 통치자에겐 충실하겠지만 국가나 조직을 블랙홀처럼 집어삼킬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