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음력 7월 7일, '칠석(七夕)'입니다. 칠월칠석, 칠석날이라고도 합니다.
세시풍속엔 '전설 속의 남녀인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로 의미를 부여해 남녀 만남의 행사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녕 젊은층은 달력에 적시된 '칠석'이란 단어를 보고서도 고개를 갸웃합니다. 이성 간의 만남 날이라 이벤트 업체나 유통업체들이 온갖 행사를 기획 하고, 그리고 잘 알려졌으리라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동북아시아 3국인 한국·중국·일본에서는 이날을 양(陽)의 수인 '홀수 7'이 겹치는 길한 일로 여겨 전통 행사를 해왔습니다. 일본의 칠석은 양력 7월 7일이라고 하네요.
'칠석(七夕)'의 뜻 유래가 궁금합니다.
단순히 풀이하면 석(夕)자가 '해 질 무렵부터 밤까지 시기'이니 칠석은 '7일의 밤'입니다. 전날 밤에 두 남녀 별이 만났으니 이를 기려 다음날을 칠석으로 붙이지 않았을까 하고 풀이를 해봅니다.
칠석의 풍속은 중국의 고대 설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돼 생긴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칠석날 저녁에 은하수의 양쪽 둑에 있는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1년에 한번을 만난다는 전설에 따라 별을 보며 제사를 지내는 세시풍속입니다.
전설에는 견우와 직녀란 두 별이 사랑을 하다가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노여움을 사서 떨어졌고 1년에 한번씩 칠석 전날 밤에 은하수를 건너서 만났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때 지상에서 사는 까치와 까마귀가 이 같은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날아올라 날개를 펴고 머리를 맞대며 다리를 놓아 둘을 만나게 하는데 이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고 합니다.
이날 아침에 비가 오면 견우와 직녀가 전날 밤에 만나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고, 칠석 다음날 비가 오면 헤어지기 싫어 흘리는 슬픔의 눈물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또 칠석날 주위에 까마귀와 까치를 볼 수 없을 땐 은하수에 다리를 놓으러 갔기 때문이라고 여겼다네요.
칠석 때는 더위도 약간 덜하고 장마도 끝나는 시기인데 이때 내리는 비를 '칠석물'이라고 합니다. 진주를 비롯한 남부지방에 비가 옵니다.
한국민속문화대백과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음력 7월이 되면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이 맑고 푸르며 높다. 북두칠성은 한 쪽으로 몰아 떠 있고 비단결 같은 은하수는 금방 쏟아질 것 같다. 그 동쪽에 직녀성이 수줍은 듯 희미하게 비치고 서쪽에서는 견우성이 휘황하게 빛을 발하는데 이는 마치 서로 마주보며 정겨워하는 듯하다. 그러다가 칠석 때면 천장 부근에서 두 별을 보게 되는데 마치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별자리를 보고 ‘견우와 직녀’ 설화를 만들어냈음직하다'
오매불망(寤寐不忘)이란 말처럼 깨어 있을 때나 잘 때나 님을 그리워한다는 말입니다.
소설 춘향전에서 춘향과 이도령의 백년가약을 맺어주던 광한루(廣寒樓) 다리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다리와 같은 오작교입니다.
이처럼 칠석은 남녀 간의 정담(情談)이 담긴 날로 옛날부터 남녀의 상사(相思)시나 애정시, 설화 등에서 칠석과 관련된 내용이 상당히 많이 전해집니다.
중국에서는 이날 양귀비(楊貴妃)의 혼이 재생해 장생전(長生殿)에서 그리워하던 당명황(唐明皇)을 만나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암수의 눈과 날개가 하나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의 새)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한 나무의 가지가 다른 나무의 가지와 맞닿아 결이 서로 통한 것)가 되기를 원한다"고 한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칠석의 풍속이 많이 잊혀졌습니다. 제례 등 세시풍속을 알아봅니다.
칠석은 특히 별자리를 생각하는 날입니다. 따라서 수명신(壽命神)인 북두칠성에 장수를 기원합니다. 일부 가정에서는 '칠성맞이 굿'을 했습니다.
이 무렵은 햇 오곡백과가 나오는 철이어서 일반 여염집 가정에서는 밀전병과 햇과일 등의 제물을 차리거나 정화수(井華水)를 떠놓고 가족의 무병장수와 가정의 평안을 빌었습니다.
수박이 잘 익고 오이와 참외도 많이 나와 호박부침개를 만들어 칠성님께 빌었다고도 합니다. 칠성제를 지내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또한 우물을 깨끗이 청소한 뒤 우물고사를 지내기도 했고, 밭에 가서 심어놓은 밭작물의 풍작을 비는 '밭제'도 지냈답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에서 어렵지 않게 본 모습들입니다.
이날 처녀들은 별을 보며 바느질 솜씨가 좋아지기를 빌고, 서당의 학동들은 별을 보며 시를 짓거나 글공부를 잘할 것을 빌었다고 합니다. 요즘엔 별 의미가 없지만 옛날엔 직물이나 바느질이 실생활에서 참 중요해 바느질을 잘하는 것을 여성의 미덕으로 생각했었지요. 직녀라는 별 이름에도 직물(織物)이나 바느질이 연관돼 있습니다.
처녀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 놓은 뒤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올려놓고 바느질 솜씨를 좋게 해달라고 축원했다는데 그 다음날 재 위에 무엇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나타났다고 믿었답니다. 우리가 명절 때 덕담하는 것과 얼추 비슷하게 보면 되겠습니다.
바느질 이야기를 조금 더 하면, 처녀들이 바느질을 잘 하기를 비는 것을 걸교(乞巧)라고 합니다. 중국 한(漢)나라 땐 칠석날 밤이면 궁중이나 민가에서 부인들이 바느질감과 과일을 마당에 차려놓고 바느질 솜씨가 있게 해 달라는 걸교제(乞巧祭)를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이 풍속은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해졌고, 우리나라에서는 근래까지 칠석날에 바느질 솜씨를 점치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민간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도 꽤 의미가 있는 날로 봤습니다. 고려시대 공민왕은 이날 왕후와 함께 궁중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에 제사를 올리고 백관들에게 녹(祿·녹봉)을 주었고, 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고 선비들에게 명절 과거를 보게 하는 등 중요한 명절로 여겼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칠석과 관련한 그림(민속화)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동국세시기에는 인가(人家)에서 옷을 햇볕에 말리는 쇄의상(曬衣裳)이 옛 풍속이라고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랍니다.
관련해 포쇄(曝曬)라고 해서, 칠석에 긴 장마를 거치면서 습기를 머금은 장롱과 서적을 햇볕에 쪼이고 바람에 쐬어 말렸다네요. 잘 말려 두면 옷과 책이 좀을 먹지 않고 습한 겨울을 잘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