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芒種)은 배 곯고 없이 살던 시절 보릿고개의 마지막 절기로 24절기 중 9번째입니다. 여름이 시작된 3번째 절기이기도 합니다.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들며 음력으론 4, 5월에 해당합니다. 양력에 맞추면 6월 5~7일로, 보통 현충일(6일)과 겹칩니다. 참고로 현충일은 망종일과 망종 때 지내던 제사에서 유래했다고 하네요. 오늘은 또 양력으로 환경의 날이기도 합니다. 지구의 온난화로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이 이슈로 부상돼 환경의 의미가 남다릅니다.
망종의 망(芒)은 벼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곡물을 의미하고, 종(種)은 씨앗을 뜻합니다. 벼와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시기란 의미이겠지요.
모내기와 보리베기에 알맞는 시기여서 두 일이 겹쳐 농가에서는 무척 바쁩니다.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빈 논에 벼도 심고 작물을 심는 밭갈이도 할 수 있습니다.
요때는 그간 많지 않던 비가 자주 내립니다. 모를 어려움 없이 심으라고 하늘이 비를 뿌려주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날씨도 변덕을 많이 부립니다. 느닷없이 장맛비 같은 굵은 비가 내리고 여름이 가까워지니 한낮엔 따가운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쬡니다.
간혹 논바닥이 쩍쩍 갈라질 정도의 심한 가뭄이 드는데, 천수답이 지천일 때는 농민들은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만 쉬었답니다. 이 모습이 사라진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요즘엔 저수지, 4대강 등 용수 시설이 잘 돼 있습니다.
오뉴월 농번기는 중부 지방보다 보리농사를 많이 짓는 남쪽일수록 더욱 바쁩니다. 삼팔선 이북은 겨울 극한 추위로 보리농사가 거의 없어 남부 지방보다 덜 바쁘지요.
그런데 요즘은 지구의 기온도 오르고, 비닐모판 활용 등으로 모 성장 시기도 빨라져 모를 심는 시기가 일주일~10일 정도 빨라졌습니다. 망종보다 한 절기 더 앞선 소만 무렵에 모내기를 시작합니다.
중부 지방보다 늦은 남부에는 겨우내 맨논으로 두었던 논에 심는 1모작은 끝났고, 익은 보리를 벤 논에 모를 심는 2모작이 시작됩니다. 1모작 모는 아직 뿌리가 안착이 안 돼 여립니다.
강원 북부 지방에선 모가 안착되는 것을 '모살이'라고 합니다. 북한말에 모살이비료란 게 있는데 뿌리가 빨리 내려 '사름'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 뿌리는 비료랍니다. 사름이란 모를 옮겨심은 지 4~5일 지나 뿌리를 내려 파랗게 생기를 띠는 상태란 표준어입니다.
시골에서 자랐거나 지낸 분들은, 질퍽한 흙탕논 가운데에서 논두렁에서 잡는 못줄에 따라 손모내기를 하고픈 생각이 절로 날 것입니다. 아름드리 그늘 밑에 둘러앉아 먹던 새참과 점심의 맛은 대단한 별맛이었지요. 감나무잎에 두어토막 올려 놓은 양념 갈치의 맛은 또 어떻습니까? 요즘에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귀한 경험이고 추억입니다.
옛 사람들은 망종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누었는데 초후(初候)에는 사마귀가 생기고, 중후(中候)에는 왜가리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지빠귀가 울음을 멈춘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때는 또 사마귀나 반딧불이가 나타나고 매화 열매 커져 수확을 앞두지요. 건강에 좋다며 집집마다 챙겨두고 먹고 마시는 매실을 말합니다.
들녘에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익어갑니다. 혈당을 낮추는 당뇨나 정력 강화, 피부에 좋다고 합니다. 또 혈압을 낮춰 주고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루틴 성분이 많습니다.
이것 뿐이겠습니까. 시골에서 자란 분들에게는 이말고도 눈에 선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겁니다.
한방에서는 이 때가 기온이 오르고 에너지를 밖으로 많이 내놓는 시기여서 뱃속이 냉해지기 쉽다고 합니다. 심장과 소장이 약해지기 쉬우니 잘 보하라는 말입니다.
<속담>
-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망종을 넘기면 바람이 심해져 보리가 쓰러질 수 있어 이를 경계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베서 먹고, 모를 심는다는 뜻입니다.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속담도 같은 맥락입니다.
- 발등에 오줌 싼다/ 보리벼기, 모내기, 모종 심기 등으로 1년 중 제일 바쁜 시기란 뜻입니다.
- 망종이 4월에 들면 보리의 서를 먹게 되고 5월에 들면 서를 못 먹는다/ '보리의 서를 먹는다'는 말은 그해 풋보리를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양식이 부족해 보리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풋보리를 베어다 먹었다고 하네요. 올해는 양력으로 6월 5일이 망종이니 음력으론 4월 말입니다. 풍족한 요즘에는 의미가 없으니 옛일을 기억해 보는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풍습>
망종보기, 보리그스름 먹기, 보릿가루로 죽해 먹기 등이 있군요.
망종보기란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듦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겁니다.
음력 4월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 돼 빨리 거둬들이지만 5월이면 보리농사가 늦어져 망종 내에 보리농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망종이 지나면 밭보리가 그 이상 익지 않아 기다릴 필요 없이 눈 감고 베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관련 '보리는 망종 삼일 전까지 베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역 사례>
경남의 도서 지역에서는 망종이 음력 4월 중순에 들어야 좋다고 합니다. 일찍 들면 보리농사에 좋다는 뜻입니다. 부산 남구와 강서구 구랑동 압곡에서는 망종에 날씨가 궂거나 비가 오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네요.
또 전남, 충남, 제주에서는 망종날에 천둥이 치면 그해의 농사가 시원치 않고 모든 일이 불길하고 여깁니다. 반대로 우박이 내리면 시절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에서는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모은 뒤 솥에 볶아 맷돌에 갈아 채로 친 뒤 보릿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남에서는 이날 '보리그스름(보리그을음)'이라고 해 풋보리를 베다가 그을음을 해서 먹으면 이듬해 보리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풍년이 들어 보리가 잘 여물면 그해는 보리밥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잘 여문 보리가 더 달다는 뜻이겠지요.
또 망종날 보리를 밤이슬에 맞혔다가 다음날 먹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허리 아픈 데 약이 되고 그해에 질병 없이 지낼 수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