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점검] 맨홀 뚜껑과 추락 사고(동영상)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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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4 14:22 | 최종 수정 2022.08.1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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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등 수도권에 115년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에 서울시가 지난 12일 침수된 차도·인도의 맨홀 뚜껑이 열리면서 사람과 차가 빠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내부에 그물이나 철 구조물 등 '추락방지 시설'을 시범 설치한다고 밝혔습니다.
폭우가 내린 8일 밤에 서울 서초구의 도로 맨홀 뚜껑이 하수구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 올라 중년 남매가 빠져 실종됐다가 사망한채 발견됐습니다. 흙탕물 도로에서 구멍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맨홀은 빠지면 깊어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맨홀 뚜껑들은 대체로 잠금 기능이 있는 특수 기종입니다.
이날 시간당 100mm 이상의 비가 내리면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지난 2014년 실시한 실험에선 시간당 50mm에도 40kg의 철제 맨홀 뚜껑이 순식간에 튀어 올랐습니다.
맨홀 사고는 하수구 시설 공사나 청소를 하면서 인부가 유독가스에 질식돼 숨지거나 뚜껑을 열어 놓은채 작업을 하다 안전 조치 미비로 행인이 빠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처럼 시민들은 평소에도 맨홀 근처로 지날 땐 '요주의 시설'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전면 설치가 아닌 시범 설치를 하다는 것은 침수로 맨홀 뚜껑이 열렸을 때 이물질 등이 걸릴 수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되려 안 하니만 못하는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둔 것이지요.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부터 저지대 등 침수 취약 지역, 하수도 역류 구간에 우선 도입한 뒤 설치를 확대해나갈 방침이라고 합니다. 설치는 자치구에서 담당하고 서울시는 재난관리기금 등 필요한 사업비를 지원합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고 '큰일을 당해야' 대처안이 나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무슨 공식 같습니다. 조금 더 일찍 공식 논의하고 시도를 해봤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시도를 해보고 아니다고 판단됐을 땐 안 하면 되는 것이지요.
서울시의 발표 문안에 '효과 검증 후' '도입 검토 계획' 등을 넣은 것을 보면 꽤 조심스러운 모양입니다. 추락 방지 시설이 물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철망 등이 맨홀 상부에 있을 땐 물 흐름에 지장이 없다. 다만 시설 노후화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어 주기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네요. 도입을 한다면 정기 점검 주기를 짧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한다고 도입 했는데 맨홀에 설치한 철망으로 또 다른 큰 피해가 나면 여론의 질타 등 사달이 나지요. 요즘 여론은 사방팔방에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기에 조심스럽지요. 편한 세상은 아닌 듯합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내·외 지자체에서 도입한다는 예는 있었지만 실제 운용 사례를 찾기는 힘들었다. 검증은 덜 됐지만 시급하다는 판단에 우선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을 비교 분석해 도입하고 개선 방안을 찾으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자는 이번 맨홀 뚜껑 사고를 접하면서 도로가의 배수 시설인 '격자형 철제 뚜껑'이 생각났습니다.
감사원을 담당(출입)할 때 들었던 감사원 중간 간부의 말입니다.
"격자형 철제 뚜껑 설치 규정에는 예컨대 '세로 굵게 5개, 가로는 가늘게 20개'를 설치해야 하는 등이 있는데, 업체와 공무원이 짜고 가로를 두개 줄여 납품해 설치한 것을 잡아냈다"
이 감사원 간부는 "보통 시민들은 바닥에 있는 작은 시설물을 눈여겨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악용한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다른 곳이나 다른 용도로 만든 것을 납품하도록 눈 감아 준 경우가 아닐까 싶네요.
모든 게 주춧돌처럼 야무지게 다져 놓아야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닥과 지하를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 눈여겨 보지 않습니다. 항시 위로만 지향하며 사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맨홀의 재탄생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