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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산책] 밀고자-프락치-스파이-끄나풀

정기홍 기자 승인 2022.08.20 16:51 | 최종 수정 2022.08.26 01:05 의견 0

지난 2일 행정안전부에 신설된 경찰국의 초대 경찰국장에 임명됐던 김순호 치안감이 '밀정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교체 요구에 나섰고,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입니다.

의심의 내용은 김 국장이 지난 1989년 노동운동단체인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의 동료들을 밀고 하고 그 대가로 경찰에 대공요원으로 특채됐다는 것입니다.

그는 특채에 앞서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녹화 사업(사상 전향 공작) 대상자로 프락치(끄나풀) 노릇을 하면서 대학 서클 동향을 보고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특채가 밀고를 대가가 아니냐는 거지요.

당시 경찰공무원 임용령에 '대공 공작 업무와 관련 있는 자'를 경장으로 특채를 할 있게 돼 있었다고 하네요. 지금도 유효한지는 확인을 못해봤습니다.

김 국장은 이 의혹을 부인하면서 특채의 정당성을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노회는 (북한) 주체사상에 심취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주도해 만든 단체였다. 주체사상에 심취돼 노동당과 수령에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게 정의였을까. 그걸 버리는 게 정의였을까"라고 반문합니다. 인노회 활동을 하다 전향한 것은 "주체사상에 대한 염증과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WORDROW' 홈페이지 캡처

각설하고.

오늘은 '밀고'와 '프락치'에 관해 알아봅니다.

밀고(密告)는 '남몰래 넌지시 일러바치는 것'입니다. 가장 얄밉고 화 나는 짓이지요. 밀고자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고요.

프락치(fraktsiya)는 '특수한 사명을 띠고 어떤 조직체나 분야에 들어가서 본래의 신분을 속이고 몰래 활동 하는 사람'입니다.

프락치가 '조직'에 들어가 내통하는 것이니 일상에서 하는 밀고자와 조금은 다르네요.

프락치라고 하면 '국회프락치사건'이 떠오릅니다. 1949년 5월부터 1950년 3월까지 북한의 남조선노동당 프락치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현역 국회의원 10여 명이 검거되고 기소된 사건이지요.

성격은 다르지만,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서울대 프락치 감금사건'도 아직 오르내립니다.

1984년 9월 서울대 학생들이 서울대 내에 있는 한국방송통신대 학생 등 타 학교의 학생을 포함한 민간인 4명을 경찰의 프락치로 몰아서 감금하고 물고문과 각목으로 폭행을 한 사건입니다. 한참 후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이 프락치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유 전 이사장은 지금까지 불명예를 안고 지냅니다.

민주화 물결이 강하게 일던 1970~1980년대 중반 대학가에서는 경찰이 대학 내에 프락치를 심어 놨다는 말들이 학생 간에 많이 오갔습니다. 실제 잡힌 사례도 많았습니다. 상당수가 '알바식'으로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요즘의 보이스피싱 행동원 정도로 보아도 무방하겠네요.

프락치란 단어는 북한과 관련되면 '간첩(間諜)'이란 단어로 정리됐습니다. 한 때 우리 정치권에서 간자(間者)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지요. 첩자(諜者)와 같은 맥락입니다.

'스파이(spy)'도 비슷한 의미입니다.

스파이란 '한 국가나 단체의 비밀이나 상황을 몰래 알아내어 경쟁 또는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나 단체에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끄나풀이란 단어도 짚어보지요. '남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앞의 단어들과 틀린 듯 맞는 듯합니다.

끄나풀은 달리 '길지 아니한 끈의 나부랭이'란 뜻도 있는데, '종이나 헝겊 따위의 자질구레한 오라기'나 '어떤 부류의 사람이나 물건을 낮잡아 이르는 말' 등 두개 뜻이 있습니다. 예컨대 끄나풀로 동여매다 등으로 씁니다. 기자를 낮잡아 '기자 나부랭이들이'란 말도 자주 쓰입니다.

위에 언급한 '밀고자'나 '프락치', '스파이', '나부랭이' 등은 넓게 보아 중국 손자병법의 36계(計) 가운데 33번째 계책인 '반간계(反間計)'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학생을 이용해 학생을 잡아내는 거니까요.

반간계는 돌이킬 반(反), 사이 간(間), 꾀할 계(計)입니다. '적의 첩자를 역이용해 적을 제압하는 계책'이지요. 반간계는 계책 중에 으뜸으로 칩니다.

반간은 운동권 학생들에겐 아군으로 인식될 수 있었겠지만 결국 적의 첩자를 이용해 적을 속이는 기만전술입니다.

조금 더 세세히 들어갑니다.

손자의 병법의 '용간(用間)' 편에서도 첩자를 이용하는 5개 계책이 있습니다.

프락치란 범주엔 ▲향간(鄕間·적의 고을사람 활용) ▲내간(內簡·적의 관리나 군사 이용) ▲반간(反間·적의 간첩 잡아 역이용) ▲사간(詐間·첩자에게 거짓정보 줘 혼란스럽게 함) ▲생간(生間·적지에 들어가 정보를 갖고 살아오게 함) 등 5개가 있다는 말입니다.

■ 참고 자료

반간계의 예로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삼국지를 읽으면 '적벽대전(赤壁大戰)이 나옵니다. 학창시절 '위-오-촉'으로 암송 하던 중국 삼국시대에 조조(위나라 군주)가 삼국통일을 목표로 세력을 불리자 손권(오나라 군주)과 유비(촉나라 준주)가 연합해 양쯔강(揚子江)의 일대에서 벌린 큰 전투이지요.

위나라와 오나라, 촉나라의 지형도

적벽대전에는 손권의 사람인 주유가 펼친 반간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북방 출신인 조조의 군대는 기마전에는 능했지만 수전(水戰)에는 약했지요. 채모와 장윤은 조조에게 투항한 오나라 장수들로, 수전에 능해 양쯔강 전투를 앞두고 조조의 군대를 조련 했습니다.

주유는 이를 걱정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차에 조조의 참모이면서도 주유와 동문수학 한 장간이 항복을 권하러 주유를 찾아왔습니다.

주유는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자는 척하면서 탁자 위에 채모와 장윤이 보낸 것처럼 꾸며쓴 편지를 놓아두었습니다.

당연히 장간은 이 편지를 보았고, 또 주유가 다른 장수와 나누는 밀담에서 채모와 장윤을 믿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들었던 터러 이 편지를 훔쳐 나와 조조에게 고했지요.

조조는 채모와 장윤을 오나라의 첩자로 오인해 목을 벴습니다.

이로써 조조는 전력이 크게 우세했음에도 불구, 주유의 반간계에 넘어가 수전(水戰)의 약점을 보완 하지 못하고 대패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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