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 산책] 밀양 산불은 '검불' 탓? '덤불' 탓?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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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4 10:40 | 최종 수정 2022.07.2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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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여름 시골에선, 득실거리는 모기를 쫓기 위해 마당 한가운데에 왕겨와 볏짚, 마른 풀 등을 넣고 불을 피웠습니다. 모깃불이지요. 냄새가 강한 푸른 쑥을 넣어 연기 냄새가 독하게 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꼭 나오는 말이 있었습다. '검불'입니다. "검불 좀 더 갖다 넣어라".
검불은 가느다란 마른 나뭇가지나 마른 풀, 낙엽, 지푸라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무엇이든 마른 것이고요.
검불을 조금 더 살펴보면, 생소하지만 관련된 단어도 있습니다.
검불의 부스러기인 '검부러기'와 먼지·실밥의 작은 물질이 뒤섞인 검부러기를 뜻하는 '검부저기'입니다. 잘 쓰는 단어가 아니라서 조금 어렵네요.
비슷하게 보이는 '덤불'이란 단어도 있습니다.
덤불은 어수선하게 엉클어진 수풀을 뜻합니다. "저기 언덕에 풀 덤불이 엄청 많이 있네" 등으로 쓰입니다. 다만 검불처럼 꼭 말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검불'과 '덤불'은 엄연히 다릅니다.
지난 5월 31일 경남 밀양에서 큰 산불이 나 3일만에 주불을 잡았습니다. 5월 중순 '아카시꽃 피면 산불은 끝'이란 말이 무색하네요.
3월 초봄부터 움(싹)을 틔우던 싹들이 산을 온통 푸르게 바꿔놓았는데도 불은 3일 동안이나 산을 태웠습니다.
6월 초인 지금도 산 밑바닥엔 겨우내 깡마른 낙엽 등이 많이 쌓여 있다는 뜻입니다. 눈대중으론 푸른 잎으로 덮인 산이지만 심한 가뭄 등으로 산속은 아직도 깡마른 낙엽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두단어의 차이를 이번 산불에 빚대 정의하면 어떨까요?
'밀양 야산 바닥에 쌓여 있던 많은 '검불'이 '덤불'이 돼 있어 산불이 크게 번졌다'
참고로 산불이 난 밀양 마을 이름은 '화산'이지만 '불 화(火)'가 아닙니다. 화산(化山)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화산(華山)으로 불린다고 하네요 빛날 화(華)입니다.
두 단어를 합친 '검불덤불'이란 낱말도 있습니다. 서로 한데 뒤섞이고 엉클어져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어수선한 모양을 뜻합니다. "실타래 엉키듯이 일이 검불덤불 꼬였다"처럼 쓰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