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남강유등축제가 화려한 일정을 진행 중인 가운데 기자는 십수년 만에 남강의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의암을 찾았습니다.
하도 오랜만에 찾아 고려말 충신 길재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 땅 경북 선산(현 구미)을 찾아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라며 세월의 무상함을 읊은 시구가 생각나더군요.
아다시피 의암(義巖)은 관기(官妓·관청에 딸린 기생)였던 논개가 임진왜란 2차 진주성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된 후 왜군이 연 연회 도중에 왜장을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서 안고 뛰어든 바위입니다. 의암은 '의로운 바위'란 뜻입니다.
왜장은 당시 승전 잔치에서 만취했었다지요. 이처럼 진주성과 촉석루, 남강과는 뗄 수 없는 깊은 사연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의암으로 가는 통로는 촉석루에서 내려가는 길만 있습니다. 촉석루와 남강 간의 성벽 밑으로 자그마하게 뚫어놓은 굴을 통과해야 합니다. 자 그럼 내려가 보시지요.
의암은 촉석루 누각 뒤쪽(남강쪽) 아래로 내려갑니다.
촉석루 아래에서 남강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고, 이어 굴과 같은 통로를 통과 하면 곧바로 아주 가파른 계단을 마주합니다.
기자가 경사진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의암을 구경한 관람객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경사도가 아주 가파릅니다.
자칫 남강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유등들을 구경하느라 발을 헛디딜 수 있어 매우 조심심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밤에는 접근을 금지시킵니다.
참고로 의암으로 통하는 촉석루 개방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이고, 진주성 전체 개방도 동절기(3~10월)엔 오전 5시~밤 10시(하절기 11시)입니다.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먼저 기자를 맞습니다. 가파른 계단 바로 앞에 세워놓은 기둥 표지판입니다. 경고판 글대로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다리에 힘이 덜한 어르신을 모시고 가면 신경을 꽤 써야 합니다.
처음 접한 위험 표지판과 다른 경고판입니다. 처음 표지판 바로 왼쪽에 있는데 의암으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위험'이란 단 두 글자가 경고의 강도를 더 느끼게 했습니다. 실제 경고판 바로 밑은 10m가 훨씬 넘는 낭떠러지 절벽입니다. 내려다 보면 아찔하지요. 난간이 없습니다.
바짝 긴장감을 주는 지점을 지나면 다소 경사도가 덜한 곳이 나옵니다. 논개의 공적을 적은 비(진주 의암 사적비)를 모신 비각(비석을 보호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요.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란 현판을 읽은 뒤 논개를 생각하면서 비각 앞을 지납니다. 여기서부터 긴장감이 다소 누그러집니다. 그러나 잠시입니다.
논개를 기리는 비각 주위는 경사가 완만해 관람객들이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서 남강의 정취를 감상하고 의암도 내려다보면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멀리 보이는 다리가 오랫동안 진주를 상징해오는 진주교입니다.
진주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진주남강다리'라고 말합니다. "남강다리 건너 중앙시장"은 진주 시내에 장 보러오던 인근 촌마을 사람들의 입에 붙어다닌 말이었습니다. 지금은 진양교, 천수교 등 다리가 10개나 돼 진주교로 구분해 사용하는 편입니다.
진주교를 현대식으로 다시 건설하면서 논개의 가락지 모형들을 입혔는데 외지인은 물론 진주 시민들도 거의 모릅니다.
참고로 진주 남강에 건설된 다리를 알아볼까요?
진양호 바로 밑 상류에서부터 오목교(1)를 시작으로 진주대교(2), 희망교(3), 천수교(4), 진주교(5), 진양교(6), 상평교(7), 김시민대교(8), 남강교(9), 최하류에 있는 금산교(10) 등 10개입니다.
다음은 의암 설명 표지판입니다.
이쯤에서 의암 설명 표지판은 의암을 알고 가라며 잠시 발길을 잡습니다. 논개의 순국정신을 생각하며 한발씩 조심스럽게 의암 쪽으로 발길을 옮겨봅니다.
위의 경고 문구는 미끄러질 우려가 있다며 의암으로 건너면 안 된다고 합니다. 사진 오른쪽 위쪽에 있는 것이 의암입니다. 관람객들은 거의 이 경고판 아래로는 내려오지 않더군요. 기자는 독자분들께 사진을 보여드리기 위해 조금 더 접근을 했습니다.
위 사진 추락주의 표지판은 의암을 중심으로 오른쪽, 즉 촉석루 쪽에 있는 것입니다. 저 표지판 뒤도 낭떠러지입니다.
촉석루와 이어진 넓은 바위와 의암 간에는 강물이 흐릅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 진주에 애정이 없거나, 논개의 충절을 기리지 않는 이는 범접을 하지 말라며 만든 간극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눈대중으로 보면 건너다가 풍덩 빠지기 십상입니다. 어르신들의 말로는 언제까지인지 모르지만 건너서 의암 위에서 있다가 나오곤 했답니다.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의 일이지요.
아래 사진은 촉석루 왼편 성곽에서 찍었는데 의암의 위치를 주위 풍경과 비교해 조금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촉석루에서 순서대로 내려오는 글을 읽으면서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다면 전체적으로 위의 사진을 참고하면 됩니다. 다시 말해 의암을 보려면 느티나무 오른쪽에 바로 위에 있는 촉석루에서 아래로 난 굴을 지나 남강에 있는 의암으로 내려갑니다.
바로 위의 사진을 보니 남강의 정취가 제법 좋네요.
단풍색 짙어가는 느티나무에다 논개의 비석이 있는 작은 비각, 그 아래에 의연히 자리한 의암, 잔잔히 흘러가는 남강물, 남강 위에 자리한 갖가지 유등들 그리고 막 뱃머리를 돌려 타원형 물결을 만들고서 지나는 남강 유람선 '김시민호'···. 잘 어울리는 한폭의 그림입니다.
논개로 상징되는 의암 찾아가는 길을 잘 이해하셨는지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맞을지는 모르되 진주에 오래 산 분들도 진주성과 촉석루를 잘 안 가게 된다고 합니다. 의암은 더욱 더하겠지요.
지금까지 '경고'와 '긴장감'으로 다시 찾았던 의암의 이야기였습니다.
□ 고등학교 국어책에 나와 많이 알려진 변영로 시인의 '논개' 시를 다시 읊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