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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대출공화국 대한민국(가계부채 1800조 시대, 당신은 죄인이 아니다)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1.14 23:48 | 최종 수정 2023.01.15 00:54 의견 0

도서출판 행복에너지가 '대출공화국 대한민국(가계부채 1800조 시대, 당신은 죄인이 아니다)'을 펴냈다.

국회에서 경제와 금융담당 비서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실무 경험을 축적해온 서인석· 정내라 저자가 썼고, 기업인 출신이자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제윤경 씨가 감수했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의 신용과 대출 시스템이 얼마나 금융사의 편의와 이득만을 수호하는 불공평한 시스템인지를 적나라 하게 들춰낸다. 이어 금융사 등이 이 불공평한 시스템을 활용해 개인에게 약탈적인 ‘대출 장사’를 행하고 있는지도 파헤쳐 고발한다.

책은 '돈을 빌린 뒤 갚지 않는 것은 죄악'이라는 우리의 상식에 대해 금융기관들의 잘못된 행태를 꼬집으며 도전적으로 반문한다. 368쪽 2만 5000원

■참고 자료

▶출판사 서평

신용과 대출의 본질을 이해하고 ‘현명한 채무자’로 사는 법

학자금 대출, 주택대출, 신용카드 대금의 리볼빙 등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제생활 곳곳이 대출로 메워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한 조금만 눈을 돌리면 TV와 인터넷 등 각종 매체에서 ‘손쉽고 편리하며,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는 신용대출’을 홍보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신용’과 ‘대출’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신용’과 ‘대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책 '대출공화국 대한민국'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기 어려운 ‘신용’과 ‘대출’에 관한 충격적인 진실을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입법부 4급 공무원, 국회의원실 정무위원회 금융담당 비서관, 제20대 국회의원이라는 각자의 위치를 통해 대한민국 입법의 중심인 국회에서 경제 및 금융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온 바 있는 서인석 저자, 정내라 저자, 제윤경 감수인은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신용’과 ‘대출’이라는 시스템이 얼마나 금융사의 편의와 이득만을 수호하는 불공평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금융사들은 물론 심지어 국가에 소속된 공기업들이 이러한 불공평한 시스템을 활용해 개인에게 얼마나 약탈적인 ‘대출 장사’를 행하고 있는지를 오랜 실무 경험을 통해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특히 이 책은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것은 채무자의 사악한 의도나 도덕적인 해이에 의한 일이다’라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그렇다면 돈을 갚지 못할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겠다며 접근하는 금융기관에겐 도덕적 해이가 없는가?’라는 대담한 질문을 제시한다.

또한 채무자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편견을 기반으로 채무자를 철저하게 옥죄면서 빌려준 돈 이상의 이득을 취하는 금융기관들의 행태를 고발하며 ‘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비싼 이자를 내야만 하는 신용구조의 모순’, ‘고작 3개월 연체했을 뿐인데 내 집을 잃을 수도 있는 기한이익상실의 비밀’, ‘국민 세금을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을 평생 추심하는 학자금 대출의 현실’, ‘우리가 막연하게만 알고 있는 신용정보회사의 실체’ 등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사안들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최종장인 제4부, ‘당신은 죄인이 아니다’를 통해 이 책을 쓴 저자들을 포함하여 뜻을 가진 개인과 시민단체, 국회의원 및 입법 관계인들의 오랜 노력을 통하여 차츰 변화되어 가는 금융환경과 채무자 보호 입법활동 전개 등을 이야기한다.

정부가 발표한 공식 가계부채는 1800조에 이르며 심각한 사회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민’과 ‘중산층’은 결코 대출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며, 사회적 취약계층의 대출 역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 책 『대출공화국 대한민국』을 통해 ‘신용’과 ‘대출’의 구조와 함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현명한 채무인이 되는 한편, ‘건전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갖춘 금융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지 고민해 보는 것이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주어진 의무일 것이다.

▶저자 소개

- 서인석 저자

1963년 경남 함양 출생

대학 시간강사를 거쳐 25년간 입법부 4급 공무원으로 일하며 익힌 지식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정부의 규제 정책에 대한 대응 및 기업의 이해 관철을 위한 입법 등을 컨설팅 하는 ‘국내 1호 입법매니지먼트’(입법 및 정책분야 위기관리전문가)다.

국민 세금으로 익힌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고 또 문턱이 높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법률안 입안과 국회 통과, 규제입법 대응, 기업인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 사업에 필요한 국가재정 확보, 정부 정책자금 활용 등과 관련해 책 쓰고 강의하고 컨설팅하며 ‘입법정책행정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 때 Uber Korea 자문위원, 성균관대 및 수원전문대 강사, '건설경제신문' 時論 칼럼리스트, '국회보' 편집위원, 월간 '말' 중국 통신원으로 일했다.

지은 책으로 '입법을 알아야 기업이 산다', '국회 보좌관에 도전하라', '국정감사 실무 매뉴얼', '안전한 당선을 보장하는 선거법 해설'(공저), '국회 보좌진 업무 매뉴얼' 외 다수가 있다.

M. 010-7264-1157

E. dageda1@naver.com

- 정내라 저자

이화여자대 독어독문학과(경제학과 복수전공)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국회의원실에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및 금융관련 공기업과 민간 금융사들을 감시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 소속돼 금융담당 비서관으로 일했다. 8년간의 국회생활을 마치고 현재는 한 스타트업에서 대외정책팀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 nrjeong1107@gmail.com

- 제윤경 감수

1971년 경남 하동 출생

사회적기업인 에듀머니를 창업해 제20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 전까지 경영했다. 소외계층에 대한 경제교육을 하던 중 채무자의 가혹한 현실을 직면, 상담과 교육만으로 채무자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이 없음을 자각, 이후 법 제도 개선 운동을 병행했다. 좀비채권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이를 위해 ‘주빌리은행’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국회에서 활동하기 전까지 2000억 원에 가까운 채권을 소각하는 운동을 주도했다.

제20대 국회에서는 정무위원회에서 4년간 활동하면서 금융회사, 대부업체, 금융공기업 등이 보유한 45조 원 가량의 부실채권을 소각하도록 했다. 또한 추심회사의 가혹한 추심활동을 지적하고 사적, 법적, 공적 채무조정의 절차를 채무자 친화적인 제도로 바꾸기 위해 다양한 정책제안 활동을 펼쳤다.

▶목차

추천사 

빚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대한민국(제윤경, 전 국회의원) 004

들어가는 말 

‘신용’이 곧 ‘계급’인 사회 024

Ⅰ. 가계부채 1800조 시대, 우리는 왜 빌릴 수밖에 없었나

Ⅱ. 대출, 그 덫에 빠지다

1장 제1금융권이라고 만만히 보지 마라

고작 3개월 연체했을 뿐인데 집이 사라졌다 069

집을 뺏겼는데도 빚이 남았다 085

금리는 엿장수 마음대로, 아니 은행 마음대로 104

2장 자신을 ‘서민금융’이라 주장하는 대부업체

대부업체가 자생하기 좋은 최적의 환경, 대한민국 120

사회취약계층이 주 타깃인 대부업체 고객층 123

대부업체 대출 뜯어보기 136

규제받지 않는 대부업체 광고 157

대부업체의 또 다른 역할, 매입채권추심업 163

“서민을 돕는다”는 대부업체 166

3장 ‘빛’보다 ‘빚’을 먼저 마주하는 청년들

생활비까지 대출로 연명하는 청춘 170

채권자 편향적인 학자금 상환 180

다른 나라는 복지, 우리나라는 대출 185

Ⅲ.  채권 유통시장, 그 플레이어와 작동원리

1장 대출도 사고 팔린다, 유통되는 ‘좀비채권’

유명무실한 채권 소멸시효제도 195

집계조차 되지 않았던 소멸시효 완성채권 206

‘재산권’보다 ‘인권’이다 216

2장 신용정보회사는 당신의 신용을 관리하는 회사가 아니다

신용정보회사는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일까 224

추심업무를 남에게 맡기는 신용정보회사 228

불법·탈법은 물론 편법과 꼼수까지 자행 241

알고도 모른 척, 금융당국의 외면 248

신용정보회사도 채권을 살 수 있게 됐다 253

3장 국가도 국민을 추심한다

정부도 국민의 채권자다 260

정부 정책과 따로 노는 금융공기업 271

Ⅳ. 당신은 ‘죄인’이 아니다

1장 좀비채권 탈출 대작전

45조 원의 좀비채권이 사라졌다 279

근본적 해결은 책임대출과 상시 채무조정 298

2장 인간다운 채무자를 위한 노력

채무자 보호를 위한 작은 진전들 311

진정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의 시작 317

금융감독원, 불시점검을 시작하다 321

연체이자율, 인하되다 324

당신은 ‘죄인’이 아니다, 남은 과제들 328

청년이 ‘죄인’이 되지 않도록 335

근본부터 해결하자 337

[부록] “‘빚’ 때문에 힘들면 찾아가 상담하세요” 342

나가는 말 “곧 닥쳐올 가계부채 2000조 시대, 우리는 잘 대비하고 있나” 351

▶본문 미리보기

들어가는 말

‘신용’이 곧 ‘계급’인 사회

| ‘계급사회’를 대신하는 ‘신용사회’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은 ‘계급’이 철폐된 평등사회다. 개화기를 지나면서 과거의 신분제 사회가 폐지돼 누구나 다 똑같은 ‘평등’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신용’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얘기는 달라진다. ‘계급’이나 ‘사회적 신분’을 기준으로 5000만 국민을 줄 세우는 건 불가능하지만, 신용을 기준으로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용제도에 따르면, 개인은 모두 1에서 10단계로 구분된다. 누구는 최고신용인 1등급이지만 누구는 불법사금융이 아니면 돈을 빌릴 수 없는 10등급이다. 신용은 중고등학교 내신성적보다 더 엄격하다. 내신은 대학입시 때 당락을 좌우하는 것으로 그치지만, 개인의 신용은 일생동안 경제적 꼬리표로 따라다닌다. 만약 젊은 시절 신용을 잘 관리하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면,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름으로 신용카드 하나 만들 수 없는 건 물론 대출도 어려울 뿐 아니라 남들보다 더 비싼 이자를 내야 한다. 자칫 멋모르고 카드빚을 지거나 불법사금융업체를 이용했다가는 평생 멍에를 지는 것과 같다.

명품을 파는 매장이라고 하더라도 고객에게 명품을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내가 당장 가난하거나 돈이 없다고 해도 명품을 파는 백화점이나 면세점이 내게 아예 물건을 팔지 않거나 혹은 물건을 살 수 없는 부적격 고객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유롭게 매장에 출입할 수 있고 결제를 통해 명품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금융기관은 다르다. 아예 기관별로 대놓고 개개인에게 이용할 수 있는 ‘자격’ 여부를 묻는다. 이게 다가 아니다. 신용을 기준으로 거리낌 없이 고객을 차별한다. 그래서 대출이라는 문 앞에 서면 절대 너와 내가 똑같을 수 없다. 마치 조선시대에 노비가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없고 사대부인 양반집 자녀와도 결혼할 수 없는 것처럼, 지금 금융기관 이용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

만약 내가 신용 7등급인 저신용자라면 은행에서 대출 받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은행은 저신용자를 대출 고객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4~6등급의 중신용자는 주로 여신전문금융기관을 이용해 대출할 수 있다. 저신용자가 갈 수 있는 곳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뿐이다. 그나마 저축은행은 중저신용자를 고객으로 한다. 9~10등급과 같은 진짜 저신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은 결국 대부업체 혹은 불법인 사채밖에 없다. 과거야 신분제사회였으니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또 누구나 평등한 현대사회에서, 신용에 따라 개인이 이용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 정해져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다.

여기서 ‘자격’ 혹은 ‘차별과 규제’는 ‘신용’의 또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 5000만 우리 국민 중 대출이자가 저렴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은 겨우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은 신용이 낮은 데 따라 금리가 비싼 제2금융권을 이용해야 한다. 심지어 여기서도 배제돼 불법사금융, 즉 연간 수백에서 수천 퍼센트에 이르는 살인적인 고금리를 감당해야 하는 사채만 이용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은행 이용이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이분화된 ‘경제적 계급사회’에 살고 있다. 물론 우스갯소리일 테지만,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안정적인 고소득 직장인을 “4대 보험 되고, 은행에서 신용대출 가능한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은행은 이처럼 국민의 신분(?)을 분류하고 판정을 내릴 수 있는 데 따라 대출시장에서 자연 갑(甲)의 지위에 올라섰다. 개인의 대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이 같은 현상은 더 가속화 되는 것과 함께 견고해지고 있다.

| ‘신용등급’이라는 ‘계급장’

신용 등급은 부익부 빈익빈의 축소판이다. 1등급은 보통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투자 수요가 많은 사람이다. 이들은 누구보다 저렴한 가격을 지불하고 돈을 융통할 수 있다. 반면 저신용자는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 자본, 즉 생활비가 부족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지만 고신용자보다 훨씬 더 비싼 이자를 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대출과 이자 구조는, 부자는 더 부자가 되게 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만드는, 요컨대 양극화를 더 강화시키는 기제(機制)로 작용한다.

비용이 적게 드는 상품(금리가 싼 대출)을 이용하고픈 건 누구나 다 똑같은 심정이다. 특히 대출은 그 성격상 돈이 부족한 데 따라 타인에게 빌려야 한다는 점에서, 금융소비자는 금리가 낮은 걸 선호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금융시장은 이 같은 심리와 정반대로 움직이는 ‘특징’을 갖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특정 금액을 빌리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 높을수록, 즉 이자가 더 비싼 상품일수록 주 고객층은 돈이 없는 저신용자이다. 저신용자는 고신용자보다 수입이 적다보니 자연 돈이 부족해 남에게 빌리지 않을 수 없는데, 문제는 똑같은 금융상품임에도 불구하고 고신용자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저신용자이건 고신용자이건 ‘같은 크기의 금액이 갖고 있는 경제적 가치’에는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고신용자가 빌리는 100만 원과 저신용자가 빌리는 100만 원이 갖고 있는 시장가치는 똑같다. 고신용자가 빌린 100만 원이라고 해서 시장에서 110만 원 또는 120만 원의 효용가치를 발휘하지 않는다. 반대로 저신용자가 빌린 100만 원이라고 해서 90만 원이나 80만 원어치의 물품밖에 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빌린 주체가 누구이든 100만 원이라는 돈이 갖고 있는 경제적 가치는 똑같다.

그런데 금융시장에서는 이처럼 똑같은 상품을 빌리는데도 고신용자와 저신용자는 서로 다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불공정’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결국 양자 간에 존재하는 ‘신용’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돈’이라는 괴물(?)이 신용이라는 이름 아래 5000만 국민을 줄 세우는 건 물론이고, 바로 이 때문에 사람마다 대출이자도 모두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인 오늘날 개인의 신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동시에 그것이 현대판 ‘경제적 신분’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신분사회가 계급의, 계급에 의한, 계급을 위한 사회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신용의, 신용에 의한, 신용을 위한 경제사회다. 그래서 우리는 신용등급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장’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이마에 붙인 채 살고 있다. 누구든 그 계급장에 상응해서만 돈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또 계급장에 따라 서로 다른 이자를 적용받는다. 저소득 계층에겐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 연체하는 순간 ‘빚의 악순환’에 빠져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 아래,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Ⅰ부는 이 책의 서론 격으로, 가계부채 1800조 시대를 조망하고 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 대출시장의 특성을 비롯해 채권추심의 문제점, 그리고 채무탕감과 그에 뒤따르는 ‘도덕적 해이’, ‘죄인 프레임’의 문제를 논하고 있다.

Ⅱ부는 총 3장으로 이루어졌다. 제1장은 금융권 중 가장 저금리인 은행에서 대출했어도 3개월 연체에 따른 ‘기한이익 상실’, 그리고 그로 인해 담보물인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일반인은 “설마 3개월 연체만으로 집이 경매에 넘어갈까?”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지금도 되풀이되는 현실이다. 이와 관련, 대출상환을 3개월 연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지 못한 채 일반인들이 대출부터 받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비록 저리의 은행 대출이라고 해도 한번 연체가 시작되면 소득이 갑자기 몇 배로 뛰지 않는 한 빚을 상환하고 이전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소득 증가율보다 빚 증가율이 훨씬 높은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제2장은 제도권 금융사 중 대출이자가 가장 비싼 대부업체의 현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대부업체의 주 고객층이 저소득계층인 이유부터 비싼 이자를 내고 대출하는 이유가 생활비 부족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대부업체 금리가 왜 비싼지에 대한 것까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졸업 후 취업해 사회인으로 성장하기도 전에 학자금 대출로 빚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살펴봤다. 이는 무엇보다 채권자에게 편향된 학자금 상환제도에 기인하고 있다. 요컨대 외국의 경우 학자금 대출을 사회복지 측면에서 ‘투자’로 인식하는데 반해 우리는 국민 세금에 기반한 만큼 원금과 이자 모두를 반드시 회수해야 하는 ‘부채’로 보는 데 따라, 결국 학자금 대출에 대한 접근방식부터 문제해결까지 다양한 차이를 낳고 있다.

Ⅲ부는 채권시장의 작동원리 및 그 행위자들을 설명하고 있다. 우선 제1장은 대출에 따른 채권이 사고 팔리는 유통시장의 구조와 관련한 것이다. 특히 일반인에게 생소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채권의 소멸시효제도’에 대해 분석했다. 나아가 소멸시효제도에도 불구하고 채권이 어떻게 죽지 않고 ‘좀비화’ 돼 계속 떠돌며 채무자를 괴롭히는지에 대해 구체적 메스를 가했다.

제2장은 채권시장의 중요한 행위자 중 하나인 ‘신용정보회사’를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다. 신용정보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이고 또 채권을 추심하기 위해 어떤 탈법과 꼼수를 자행하는지, 그런데도 이를 외면하는 금융당국의 행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제3장은 민간뿐 아니라 금융공기업 또한 채권추심을 하는 현실에 대한 얘기다. 흔히 채권추심을 말하면 민간 금융기관이나 이를 대행하는 신용정보회사를 떠올린다. 그러나 공공기관 중에도 이 같은 일을 하는 회사가 있다. 주택금융공사나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같은 9개 금융공기업이 그것이다. 이들 또한 민간 금융사와 마찬가지로 부실채권을 갖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민간 못지않은 추심과정의 약탈성을 보여준다. 금융공기업이 가장 크게 신경 쓰는 건 “국민 세금을 낭비했다”는 비판이다. 세금에 기반한 대출을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부실채권이 장기간 연체돼도 상각(償却)하지 않은 채 그냥 쌓아둔다. 자연 소멸시효 연장 비율은 민간보다 더 높고, 그래서 갖고 있는 부실채권 규모도 적지 않다.

Ⅳ부는 최근 몇 년간 이상과 같은 문제들을 풀기 위한 정책적이고 입법적인 움직임을 총 정리했다. 제1장에서는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소각한 일부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책임대출과 상시 채무조정제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제2장은 채무자 보호를 위해 8년 만에 통과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과 함께 채무자도 금융소비자로 인정된 과정, 그리고 채무조정제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정책 및 입법적 노력이 이루어졌지만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니다. 따라서 제2장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도 적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채무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채무조정방법 및 관련한 기관의 작동원리에 대한 소개를 부록으로 첨부했다. 불법추심에 시달리고 있거나 혹은 그로 인해 삶 전체가 무너진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당장 부록부터 살펴보기 바란다. 여기에는 불법사금융 신고 방법부터 현재 자신이 처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관 및 제도에 대한 설명이 포함돼 있다.

| 현명한 대출을 하자

우리가 평생 단 한 차례도 대출을 받지 않고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당장 주택 구입은 차치하고 전셋집이라도 마련하려면, 대출을 끼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물론 부모가 대신 집을 사주거나 일정액을 지원받는 사람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왕 받을 대출이라면 잘 알고 받자는 게 이 책이 갖고 있는 일차적인 문제의식이다. 여기서 ‘잘 알고 받자’는 건, 만약 대출상환이 늦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또 그게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것 정도는 최소한 사전에 공부하자는 뜻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신용카드를 만들고 이것저것 구입 후 자금 경색으로 연체를 하거나 혹은 당장 급하다고 겁 없이 대부업체나 사채로 달려가는 것과 같은 일은 하지 말자는 게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옛말에 “빚보증 서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지금 시대 버전으로 바꾸면 “함부로 대출받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 정도가 될 수 있다.

사실 대출을 받는 그 순간부터 자기 삶은 없고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치밀한 계획 아래 대출을 일으켜야 한다. 최소한의 금액으로, 그리고 최대한 대출 기간을 짧게 잡아야 한다. 동시에 중간에 생길 수 있는 변수까지 감안해야 한다. 사업을 할 때, 자신이 갖고 있는 돈을 전부 걸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흔히 사업 실패 후 재기할 수 있도록 가진 돈의 30%는 남겨두라고 한다. 대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받을 수 있는 한도에 상응하는 금액 전부를 받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작은 변수에도 삶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글쓴이 어머니는 생전에 ‘빚’ 지는 것을 죄악시했다. 그래서 ‘레버리지’라는 개념을 설명해도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빚지며 사는 건 곧 남의 살림 살아주는 것”이라는, 평생 어머니가 갖고 있던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글쓴이의 저술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김병천 선배가 없었다면, 이 책은 출판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김 선배는, 글쓴이가 ‘신용’이 과거의 신분제를 대신하는 현대판 ‘계급’이라는 문제의식을 갖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정내라는 오랜 기간 글쓴이가 원활히 책을 낼 수 있도록 교정을 봐준 고마운 후배다. 그런데 이번에 공동작업을 통해 함께 책을 출간할 수 있어 기쁜 마음이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친 유익한 책을 내 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글쓴이가 저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내의 배려는,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데 가장 큰 힘이 됐다. 아빠의 저술활동을 응원해준 아들 龍源이와 딸 采源이의 사랑은, 글쓴이가 와병(臥病) 중에도 힘을 내 저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자 앞으로도 내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이유다. (서인석)

이 책은 글쓴이가 제19대 후반부터 제21대 초까지 8년여 간 국회에 근무한 가운데, 주로 제20대 국회(2016~2020년) 때 매진했던 정책적 작업을 기초로 하고 있다.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글쓴이가 첫 책을 낸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분들이 정말 많이 떠오른다(연예인들이 왜 수상소감을 길게 말하는지 처음 공감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감사 인사는 출판 된 책과 함께 만나서 직접 전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특별히 세 분에게만 감사를 전하려고 한다.

가장 먼저 저술 작업과 관련한 정책적 아이디어의 원천을 제공해 준 제윤경 전 의원께 감사인사를 드린다. 이 책에서 거론되는 정책의 시작과 끝은 제 의원의 삶과 직결돼 있고 동시에 그의 의제(議題)라는 점을 고백한다. 제 의원은 오랜 시간 채무자 보호 운동에 매진했고 그들과 함께 생활해왔다. 특히 그 모든 시간을 단지 감정적 공감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구조적 문제로 확장해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해왔다. 그동안 기득권과 자본력을 가진 자들, 그리고 그들의 논리를 답습하는 많은 사람들이 채무자 보호를 위한 목소리를 묵살했다. 때로는 반대했고 도덕적 해이라 손가락질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약자들을 위해 꿋꿋이 목소리를 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곁에서 지켜보며 뼈저리게 느꼈다. 그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본문에 게시된 통계는 민형배 의원과 제윤경 전 의원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요구한 자료를 재인용한 것이다.

두 번째로 감사할 사람은 바로 글쓴이의 남편이다. 늘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는, 일견 단단해보여도 내면은 매우 연약한 아내에게, 남편은 언제나 자신감과 긍정 마인드를 불어넣어주는 존재이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글쓴이는 상처투성이로 겉만 씩씩한 외톨이였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면서부터 비로소 글쓴이는, 앞으로의 인생에서 상처마저 아름답게 빛나면서 내면은 더 씩씩하고 단단한 정내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출판뿐 아니라 글쓴이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서인석 전 보좌관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싶다. 서 보좌관은 글쓴이의 학창시절과 사회생활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멘토이자 은사다.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갖는 게 소원이었지만 문제의식을 구체적 성과물로 외화 할 능력이 부족했던 후배를 위해, 투병 중에도 공동작업을 통해 이처럼 책이라는 구체적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애써주었다. 서 보좌관과 함께 글쓴이로 이름 올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를 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송함을 느낀다. 책을 출판하는 지금 내게 남은 소원은 서 보좌관이 건강을 회복해 글쓴이와 함께 오래오래 인생에 대한 대화와 지적 교류를 나누는 것이다. 매일 서 보좌관과의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한편 이 책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글쓴이의 잘못이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더 공부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미력하나마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국회에서 근무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본, 채무로 인해 고통 받던 많은 분들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열심히 살면 인생에서 절대 실패는 없을 것이다”라고 자신했던 나 스스로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어디 계실지 모를 이분들이, 바로 이 책으로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면서 절대로 삶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정내라)

‘돈’은 내가 관심을 두지 않을 때는 절대 내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삶이 어려워져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어느 새 내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가장 큰 ‘규정력’으로 작용한다. 이 책이 대출에 대한 독자의 인식 전환과 함께 채무자가 하루 빨리 이전의 정상적 삶으로 돌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글쓴이로서 더 바랄 것이 없다.

2022년 11월

글쓴이 서인석·정내라

▶추천사

빚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대한민국

제윤경(전 국회의원)

위기를 과연 예측할 수 있을까? 경제 환경이 불과 1년 사이 확 바뀌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2021년만 해도 제로 금리 시대를 살면서 빚 갚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저렴한 것이 ‘빚’이라는 믿음으로 돈을 빌려 집과 주식과 코인에 투자하는 열풍이 불었다. 영혼을 끌어 모으듯 동원 가능한 모든 빚을 모아 집과 주식과 코인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씁쓸하지만 대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러다 큰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2년 초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은 회색코뿔소로 비유되던 잠재 위험이 하나둘씩 현실화되고 있다면서 금융시장 불안을 경고했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1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투자은행이 파산하고 대형 금융사와 증권사가 연이어 줄도산할 당시에도 이미 사전에 이러한 비극을 예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다만 그러한 예언은 사태가 심각해진 이후에야 조명 받는다. 애초에 위기를 몰고 온 것이 낙관론이기 때문에 광적인 낙관론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우려의 목소리는 잔칫상에 끼얹는 찬물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래서 위기가 현실화된 이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언제나 시장은 급반전한 것으로 보인다. 훈풍만 불 것 같던 자산 시장에 느닷없이 인플레이션 몬스터가 출연해 미국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도 물가상승과 금리인상이라는 벼락 돌풍을 몰고왔다.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미국의 기준금리가 자이언트 스텝으로 상승하고 있다. 2008년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리먼사태는 2004년부터 시작된 2년간의 금리상승이 기폭제가 됐다. 2년 동안 기준금리가 4%포인트 상승하면서 모기지 대출의 연체율이 16%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모기지 대출회사의 파산을 시작으로 금융회사의 연쇄 파산이 금융위기를 몰고 왔다.

2022년 8월 현재 미국의 금리는 9개월간 3%포인트 상승하고 있고, 상승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미국과의 금리 역전 현상을 피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은행은 2021년 0.5%의 초저금리 시대를 끝내고 11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2.0%포인트 상승시켰다. 특히 7월 금리인상으로 0.5%포인트의 빅스텝이 현실화됐다. 연말까지 이런 흐름이 반복되면 기준금리는 최악의 경우 3%를 넘어설 수도 있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 대출은 연초 3% 수준이었으나 2022년 8월에는 6%까지 치솟았다.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면 7% 이상으로 뛰어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순식간에 금리의 역습을 받는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됐다.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1년 4분기 가계대출의 잠정수치와 당시의 변동금리 비중 74.2%를 근거로 추산한 결과,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액은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 약 3조3000억 원 가량 증가한다. 이를 1인당 연이자 부담으로 계산해보면 16만4000원 가량 된다. 2021년 8월부터 2022년 5월까지 5차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씩 인상돼 왔고 7월에는 0.5%포인트라는 빅스텝 상승이 이뤄지면서 가계 이자부담은 일 년이 채 안 된 시간 동안 110만원 증가한 셈이다. 여기에 연말까지 1% 이상 더 오른다면 1인당 이자부담은 65만 원 넘게 추가된다.

불과 1년 7개월 만에 국민 한 사람 마다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이자가 175만 원 이상 증가했다. 과연 이 증가세를 현재의 가계가 감당할 수 있을지, 취약한 차주(借主)는 얼마나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며, 이들의 부실을 과연 금융회사들은 감당할 수 있을지,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 104.3%로 조사대상 36개국 중 글로벌 1위 가계부채 위험 국가 대한민국, 가계신용잔액 2000조원을 향해 폭증하는 위험천만한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을 냉정하게 되돌아볼 때다.

| 가계신용잔액 2000조 원을 목전에 둔 대한민국

직장인 김대출 씨는 2021년 말 소위 ‘영끌’을 통해 집을 장만했다. 전용면적 84㎡ 중형아파트를 12억8582만 원에 매입했다. 대출은 LTV 상한인 4억3716만 원 전부를 끌어 썼다. 대출을 일으킬 당시 이자율은 3.9% 비거치 원리금 상환방식으로, 매월 상환액은 209만 원이었다. 맞벌이 부부로 월 소득이 600만 원에 달하기 때문에 다소 부담은 되지만 이전보다 빠듯하게 살면 13억 원에 달하는 내 집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출이자가 치솟기 시작했다. 2021년 대비 1.6%가량 오른 대출이자로 월 상환액이 248만 원까지 급등했다. 미국발 금리인상 뉴스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연말에는 7%까지 이자율이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괜한 우려가 아닌 상황이다. 7%까지 오르면 상환액은 291만 원, 소득의 절반이다. 자동차 할부금과 아이 둘 사교육비만 200만 원이 넘는데, 남은 돈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2021년 7월까지만 해도 0.5%였으나 8월 이후 1년간 7차례에 걸쳐 2%포인트 인상됐다. 기준금리가 2.5%까지 올라온 건 2014년 7월 이후 8년 만이다. 그러고도 한국은행은 연말까지 기준금리 3%까지의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앞선 사례는 부동산 정보 플랫폼 직방이 2020년 1월~2022년 4월 서울 전체 아파트 매매거래 12만2465건(계약일 집계기준)을 표본집단으로 시뮬레이션 한 결과를 재구성한 가상 시나리오다. 가상이기는 하지만 표본집단의 아파트 매매가격, 금리 조건, LTV 상한기준선 등 현실조건을 촘촘히 반영한 시뮬레이션으로, 이와 비슷한 사례의 채무자들이 상당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몇 차례 조정을 거치긴 했으나 대한민국 부동산시장은 소득의 몇 배에 달하는 상승으로 서민과 중산층에게 허탈함과 공포심을 안겨줬다. 오죽하면 “번 돈을 전부 쓰지 않고 모아 집을 사려면 거북이만큼의 수명이 필요하다”는 서글픈 개그가 등장했을까. 특히나 집값 상승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집값을 잡을 것이라 믿으며 무리한 내 집 마련을 미뤄뒀던 사람들, 혹은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해 돈을 벌기 시작한 사회초년생에게 지난 몇 년간의 집값 폭등은 공포감을 지나 분노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노가 영끌로 이어져 무리한 내 집 마련의 팬데믹마저 형성됐다. 마침 초저금리 시대였고 금융권은 대출 증가로 사상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면서 대출 영업에 혈안이 됐다.

영끌은 단순히 내 집 마련이라는 소박한 꿈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실거주 목적이 아닌 고수익 실현을 위해 전세를 끼고 집에 투자하는 갭투자가 부동산 시장의 가격 상승에 불을 붙였다.

부동산 시장은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흐름에 따라 가격이 변동된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이 오르는 것이고, 반대로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주택 공급이 더 많아지면 집값이 안정되거나 하락할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의 수요와 공급, 그에 따른 가격결정은 일반적인 소비재와 같이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주택 수요가 필요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대한 수요는 대체 수단이 없고 절대적이기 때문에 내 집을 갖지 못하면 타인의 부동산을 임대해서라도 수요를 충족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무주택자에게는 집이 필요에 의한 수요, 즉 실수요이겠으나 다주택자에게는 임대 수익을 얻거나 매매 차익을 남기는 투자수요이기도 하다.

실수요에 의해서만 부동산 시장이 작동한다면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집값이 오르지 않고 오히려 하락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부동산 시장의 비이성적인 가격 상승은 투자수요를 끊임없이 확대해 왔다.

심지어 실수요자들조차 내 집 한 채 가격이 상승한 만큼 차익을 실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승폭만큼 돈을 벌었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러한 믿음은 보통 사람들에게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고, 그 무리한 주택 구입은 금융시장에서 가계 부채 폭등을 불러왔다. 요컨대 수요가 수요를 만들고 그 수요에 의해 폭등하는 집값이 투자수요를 만들고 투자수요는 다시 영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갭투자는 더 나아가 부동산 임대 시장, 전세시장의 가격 상승까지 야기한다. 갭투자 자체가 영끌의 대표적인 투자 유형일 수 있다. 자기 자본이 충분치 않은 사람이 전세가 비율이 높은 부동산을 매입해 적은 자기자본으로 부동산 투자 수익을 노리는 것이다.

가령 3억 원짜리 집을 전세 계약 2억 7000만 원을 끼고 구매하면 자기 자본은 3000만 원만 필요하다. 그 집의 시세가 1년에 5000만 원가량 상승했다면 자기 자본 3000만 원으로 연 5000만 원의 수익이 발생하는 것이다(여기에서 갭투자의 실제 수익률은 세금도 고려해야 하고, 가격 상승 이후 매각했을 때 정확히 계산될 수 있다). 언뜻 기가 막히게 ‘힙한’ 투자 테크닉처럼 여겨진다.

이처럼 갭투자자들은 소자본으로 타인의 자본, 즉 전세금을 지렛대 삼아 단기간에 높은 투자 수익을 챙길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갭투자는 자신이 실제 거주하는 주택을 별도로 소유하고 있는 경우, 즉 1주택을 소유하고도 일정 이상의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다. 따라서 갭투자는 다주택 소유자, 혹은 투기가 가능한 자산가들이 해오던 투자 방식이다.

갭투자는 일반적인 부동산 투자에 비해 리스크가 크다. 가격이 상승 추세일 경우에만 안정적인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전세 수요 흐름이 원활해야 한다. 만에 하나 전세입자의 계약이 만료된 시점에서 기존 세입자가 더 이상 전세 계약을 원치 않는데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다면 낭패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일컬어 ‘역전세’라고 한다. 역전세가 발생하면 깡통 전세가 되고 전세금을 돌려줄 만한 자기 자본이 충분치 않을 때 세입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물론이고 소유주는 말 그대로 파산 상태에 이른다. 따라서 일종의 유동성 위기가 큰 투자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 영끌 열풍은, 이처럼 위험한 갭투자에 대해서도 과감한 투자를 서슴지 않게 만들었다. 유동성 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자산가들의 과감한 투자는 이해할 수 있지만, 2030 청년들의 영끌 갭투자는 말 그대로 ‘도박’이다. 그러나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작동할 때 리스크에 대한 이성적인 우려는 설 곳이 없다.

맞벌이로 500만원을 버는 가정이 부동산에 영끌한 투자로 매월 이자만 300만 원을 지출하고 생활비를 아끼려 컵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일주일에 몇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행복하단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거나 거래가 침체되거나 전세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투자에 따른 여러 변수들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로 간주되고 혹은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정 자체가 정신 나간 것으로 치부된다.

부동산 투자에서 리스크란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는, 상상의 범주 안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가정이 된다. 금리는 영원히 제로 금리 수준에 머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이자를 부담하기 위한 소득은 전혀 변동이 없을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높은 레버리지로 영끌한 투자는 기회를 포착한 지혜로 추앙된다.

그렇게 가계부채는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흥분과 절망, 탐욕과 박탈감, 기대와 분노 등이 분출되면서 이유 있는 폭등을 거듭한다. 여기에 정부 당국의 금융정책 또한 한몫을 거든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가계 부채 관련 금융규제 완화 방안을 내놓았다. 전통적으로 금융관료들은 금융시장의 자율을 강조해 왔다.

금융의 혁신과 창의를 촉진하기 위해 금융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를 낮추는 것에도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유지해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정책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반대 의사를 표하면서 당시의 여당과 여러 차례 충돌하기도 했다.

대출 규제에 대해서도 규제 정책이 금융시장을 위축시키거나 실수요자에게 대출의 문턱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규제 완화를 더 선호한다. 결국 대출 규제를 풀어서 빚에 따른 위험을 시장에 맡기자는 신념이 날개를 달았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자금의 대출한도가 4억 원에서 6억 원으로 확대되고, 소득대비 상환원리금 규제(DTI), 집값 대비 부채비율(LTV) 등의 금융규제가 완화된다. 여기에 더해 투기 과열지구 및 조정대상 지역 등 규제지역의 조정 작업을 추진하면서 규제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

애초에 투기 과열지구 지정은 집값 안정화를 위한 규제임과 동시에 가계부채 급등을 관리하기 위한 금융규제 정책이다. 이 규제를 무턱대고 완화하는 것은 서울 수도권 지역의 갭투자를 부추기고 소득이나 자산가치 대비 부채비율이 높아지면서 금융 고위험군을 양산할 수 있다.

현재 금융권에서 집계되는 가계부채 규모가 1800조 원을 넘어섰다. 2022년 8월 신한은행에서 발표한 「2022 보통사람들의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가구당 평균 부채 잔액은 1억164만 원으로 전년(8753만 원) 대비 1411만 원(16.1%) 증가했다.

가구당 평균 소득은 월 평균 493만 원으로, 이 또한 전년에 비해 늘어난 수치다. 500만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1억 원이 넘는 돈의 원리금을 매월 부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싱글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교육비 지출과 함께 원리금 상환이 만만치 않은 상태로 봐야 한다.

실제로 2022년 8월 6일 국제금융협회(IIF)가 발표한 세계 부채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36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한국이 104.3%로 가장 높았다. 우리는 가계부채 규모가 GDP를 웃도는 유일한 나라인 것이다. 동시에 이는 높은 이자 부담에 따른 고통이 어느 곳보다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갑작스럽고 가파른 금리인상이 예고되는 현 시점에서 정부가 또다시 가계에 빚을 더 내라고 시그널을 보내는 것은, 무책임하거나 현 시점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일 수 있다.

| ‘영끌’에서 ‘영끝’으로 내몰리는 청년 채무자들

2021년 한국은행의 금융안정상황 보고에 따르면, 청년층의 가계부채 비중이 코로나19 이후 크게 확대돼 2020년 말에는 전체 가계부채의 27%로, 500조 원 가까이 상승했다. 전세자금 대출, 주택담보 대출, 신용대출 등 모든 종류의 청년층 대출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청년층의 주요 주거 형태가 전월세라는 점, 정부가 청년층 주거 지원 차원에서 전세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대출 증가가 일면 이해가 된다. 신용대출 또한 은행과 인터넷 전문은행을 중심으로 비대면 대출 상품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이뤄지면서, 상대적으로 모바일 소비에 강한 청년층을 중심으로 비대면 대출수요가 크게 증가했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청년층의 주택 담보 대출 증가다. 주택가격의 상승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청년층의 자산 보유 수준으로는 주택구입에 나서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층의 주택매입 거래가 큰 폭으로 증가해 2021년 상반기 수도권 아파트 매매거래 중 36.6%를 차지했다. 수도권의 중형아파트 평균가격은 최근 10억 원을 돌파했다. 평균 거래 가격은 7억 원 전후다. 담보 대출을 통해 주택 거래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청년층의 소득 대비 부채 상환 비율 규제를 감안할 때 동원 가능한 대출 한도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이전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LTV규제가 70%가 최대치였기 때문에 7억 원짜리 집을 사려면 4억9000만 원까지가 최대 대출 한도다. 여기에 DTI규제까지 감안하면 연소득이 5000만 원 수준이어도 3억 원 이상 대출받을 수 없다. 결국 수도권의 평균 아파트를 매입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본이 4억 원 이상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2021년 상반기 수도권 아파트를 매매한 사람 10명 중 4명이 청년층이었다는 것은, 영끌에 의한 무리한 투자일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담보대출뿐 아니라 전세를 끼고 투자하는 갭투자, 제1금융권 담보대출 외에도 신용대출과 제2금융권 대출 등을 동원한 말 그대로 영혼을 끌어 모으는 듯한 위험천만한 투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청년들의 신용대출 증가율이 2020년 이후 여타 대출보다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사실도 담보대출과 신용대출까지 모두 끌어 모아 부동산에 무모한 투자가 이뤄졌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제2금융권에서의 대출 증가율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3월 말까지 20대의 제2금융권 주택담보 대출은 5조1000억 원에서 8조1000억 원으로 58.8% 폭증했고, 30대 역시 제2금융권 대출 증가율이 33.2%(50조 원에서 66조6000억 원)로 심각한 수준이다.

동원가능한 모든 빚을 끌어 모아 소위 영끌을 감행했던 분야는 부동산에 한정되지 않았다. 영끌의 목적지는 일부 주택구입자금의 부족 자본뿐 아니라 주식투자와 코인투자로 향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21년 6대 증권사(미래, KB, NH, 한투, 키움, 유안타)의 신규 계좌 723만 개 중 54%가 2030 세대의 것이라고 한다.

자본시장 연구원에서도 코로나19 이후 2030세대가 신규 주식 투자자의 53.4%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상화폐 시장에서도 2021년 기준 4대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의 이용자 60%가량을 2030세대가 차지했다.

부동산과 주식, 코인에 대한 청년의 영끌과 빚투를 동반한 패닉바잉(공황구매)은 2021년까지 자산시장의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는 자신의 저서 '야성적 충동'에서 자산 가격의 거품이 형성되는 경로를 설명한 바 있다. 그는 경제가 호황을 띠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자산 가격 상승이 이후 언론 등의 논란, 즉 추가 상승여력이 있다거나 하방 압력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과 만나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그 관심이 자산 시장의 투자 수요를 늘린다고 한다.

시작은 경제 선순환에 의한 정상적인 자산가격 상승이지만, 그 상승이 투자 수요를 창출하고 그로 인해 자산 가격은 더 오른다는 것이다. 이후 자산 가격은 더 올랐기 때문에 오르는, 불패신화에 갇혀 투기 수요를 끌어 모으는 비이성적 과열상태로 나아간다고 설명한다. 요컨대 실수요 확장이 가격을 올리고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투자 수요가 따라 붙고 그로 인한 가격 상승은 불패 신화와 함께 투기 수요, 즉 지금과 같은 영끌 현상을 만들어 패닉바잉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투자수요에서 투기수요로 시장이 팽창하는 시기에는 온갖 성공신화들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나 빼고 다 부자가 되는 것 같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박탈감과 열패감이 평소 이성적인 사람들의 머릿속을 흔들어 놓는다. 친구들이 하나둘 코인을 시작할 때, 주식 계좌들을 개설하고 마이너스 통장을 들고 투자를 시작했을 때, “저런 위험한 행동을 왜 하냐?”며 혀를 찼다.

그런데 순식간에 코인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주가가 신기록을 경신할 때마다 환호하는 친구들 틈에서 나만 손해 보는 것 같고 나만 바보가 된 듯한 기분에 빠져 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특별히 손해를 보았거나 무언가 잃어버린 것이 아닌데도 성실히 일해서 돈 버는 것만으로 자신만 돈을 까먹고 있는 듯한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이다. 뒤늦게라도 투자 대열에 합류해야만 할 것 같아 결국 코인 거래소에 가입하고 주식 계좌를 개설한다.

처음은 소액으로, 매월 조금씩 분산투자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이러한 소액 투자의 열기가 시장에 상승장을 연출한다. 소액으로 시작했는데 자신도 수익 실현의 대열에 합류한다. 주식시장의 경우 하루 가격 등락폭이 30%로 제한돼 있다. 그러나 코인 시장은 이러한 제동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하루 투자만으로도 대박과 쪽박을 경험할 수 있다.

소액으로 시작한 코인 투자가 하루만에 10% 이상 수익을 냈다고 가정해 보자. 100만 원의 10% 즉 10만 원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실현하지도 않은 10만 원의 투자 수익을 당장 통장에 돈이 들어온 듯 기뻐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매우 복잡하다. 잠시 기쁘고 흥분되지만 곧이어 다른 감정에 빠진다.

똑같은 코인 혹은 주식 종목에 투자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1000만 원을 투자한 것이다. 같은 수익률인데 친구는 100만 원을 벌었다. 자신도 100만 원이 아니라 1000만 원을 투자했더라면, 혹은 여기 저기 동원 가능한 대출한도를 떠올려보고 1억 원을 투자했더라면, 같은 10%이지만 투자 수익은 투자 금액에 따라 10만 원 일 수도 있고 100만 원, 1000만 원일 수 있다.

다시 말해 투자 밑천의 크기에 따라 손에 쥐는 이익의 차이는 더 벌어진다. 10만 원을 벌었다는 흥분은 금새 지나가고 자신은 손해 본 기분에 빠진다. 이러한 박탈감은 수익률의 크기가 커질수록 더 심화된다. 100% 수익률을 기록했다면 투자 금액에 따라 100만 원, 1000만 원, 1억 원으로 실제 실현 수익이 더 크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합리적이라면 당장 내가 투자해서 얻은 투자 수익이 진짜 이익이라는 생각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다.

이미 소액투자를 결심할 때도 합리적인 생각과 그에 걸맞는 심리상태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두려움, 기대감, 흥분 등의 감정이 합리적인 판단보다 투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머리보다 감정이 투자에 더 큰 영향을 미치면서 소액 투자는 돈을 벌고도 손해 보는 느낌을 주고 그로 인해 투자액은 점점 자산의 전부, 더 나아가 빚투와 영끌까지 직진하는 것이다.

2022년 들어 경기가 급선회하면서 금리와 물가가 치솟고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경기 침체마저 예상되고 있다. 최근 BIS(국제결제은행)는 「2022 연례보고서」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2021년까지 풍부한 유동성, 자산시장의 과열, 야성적 충동에 의한 투기 거래 급증으로 자산시장은 부동산에서 주식, 코인 시장까지 연일 상승장을 연출하며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러다 2021년 연말부터 터져나온 인플레이션, 금리인상 등의 우려와 함께 일 년이 채 안 된 사이, 시장은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여기서 가장 먼저 매(?)를 맞는 계층이 바로 빚투, 영끌족이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도 청년층 부채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임계수준을 초과하는 차주의 비중이 전체 차주의 6.3%이나 2030 청년 세대의 초과 차주 비중은 11.3%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특히 2022년 5월 99.9%의 자산 가치가 폭락해 시가총액 50조 원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루나, 테라USD 쇼크는 코인시장 대폭락의 신호탄이 됐다. 코인시장은 청년층의 빚투와 영끌의 대표 투자 시장이다. 이 쇼크 이후 영끌족의 처참하고 비참한 이야기가 각종 게시판에서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4000여만 원을 루나 코인에 투자했는데 5시간 만에 88% 손실을 본 뒤 실시간 방송 중에 오열했다는 유투버 이야기, 용돈과 알바비 모두를 모아 투자했는데 99% 손실을 보았다는 이야기, 어느 코인 매매 방송의 30대 유명 진행자는 한때 70억 원까지 벌었으나 상당수의 손실을 보고 손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파이어족을 꿈꾸며 주식, 펀드, 코인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MZ세대가 조기 은퇴는커녕 영끌로 인해 청년 신용 불량자의 꼬리표를 달아야 할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2022년 초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은 “잠재 위험들이 하나둘씩 현실화하고 있어 그야말로 ‘멀리 있던 회색 코뿔소’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상황이다”라고 우려한 바 있다. 그의 표현대로 지난해부터 예측됐던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가능성이 회색 코뿔소처럼 우리 눈앞에서 선명해지고 있다. 예측할 수 없었던 위험은 분명 아니다. 다만 알면서도 피하지 못하고 크게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미셀 부커가 만들어낸 비유적 표현인 회색 코뿔소처럼, 금리인상 예측에 따른 주식시장, 부동산 시장, 코인 등의 투자 시장의 급락과 빚의 몰락이 우리를 코뿔소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코로나 19에서 금리인상까지 벼랑 끝 자영업자들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고통과 어려움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은 자영업자의 고통과 폐업 위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나 다름없다.

한국은행의 2022년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빚이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40%나 급증했다. 이제 자영업자의 전체 부채 규모가 1000조 원에 바짝 다가간 960조 원에 달한다. 현재 진행 중인 금리인상과 물가상승은 이미 지난해부터 예견된 회색 코뿔소였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재앙으로 ‘블랙스완’이다.

전례 없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전 세계가 거리두기와 멈춰서기를 반복해야 했다. 경제 전체가 바이러스의 후폭풍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중에서도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와 존폐 위협은 급격한 금리 상승을 만나 부실의 뇌관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빚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소득 하위 30%의 자영업자들은 기존 채무를 갚거나 생활비가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소득이 급격하게 하락했으니 기존 빚 갚는 데에도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고, 당연히 생활비도 부족해 새로운 빚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예측가능한 상황이다.

소득 하위 30%에 해당되는 자영업자는 현재 신용부실이 시작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나마 코로나 사태인 만큼 정부에서 자영업자의 금융문제를 정책적으로 지원해 왔다. 원금 상환이나 이자 상환을 유예해주고 정부 보증 대출을 확대해 자영업자의 코로나 위기를 지원했다. 이 같은 지원책들로 인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자영업자의 폐업율은 2020년 11.8%로, 2019년 12.7%보다 오히려 감소하기도 했다.

여기에 자영업자에게 제공됐던 금융완화 조치가 2022년 9월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이 경우 자영업자의 DSR은 39.1%에서 41.3%로 증가한다.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빚을 갚는 데 지출해야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재 자영업자 중 적자 가구는 78만 가구로 추산되는데 이 또한 금융완화 조치가 종료될 경우 83만 가구로 늘어난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부채는 177조 원으로 전체 자영업 가구가 보유한 부채의 36.2%나 된다.

향후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금융완화 조치 종료와 함께 금리인상의 폭탄마저 끌어안을 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금리인상과 물가상승으로 소비심리마저 얼어붙고 있다. 시중 물가는 2022년 7월 말 기준 전체 품목 중 5% 이상 상승한 게 50%나 된다.

소비자들이 본격적으로 지갑을 닫기 시작할 만한 우울한 현실이다. 이는 자영업자의 매출 악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지원과 관련, 2022년 9월 정부가 최대 3년간 만기연장 및 최대 1년간 상환유예 조치를 밝힘에 따라, 금융지원이 종료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금리인상과 물가상승으로 인한 경기 후퇴로 자영업자는 향후 혹독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말 그대로 금융지원 종료와 금리인상,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경기 후퇴까지 자영업자에게는 삼중고가 겹쳐, 2022년 하반기와 2023년 상반기 혹독한 시간이 예상된다. 말 그대로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0조 원에 달하는 자영업 부채가 악성화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고, 이는 전체 가계부채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다.

|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급박한 금리인상과 물가 상승 압박에 따른 경기 후퇴부터 과도한 가계 부채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충격전망에 이르기까지 경제상황 전반이 비관적이다. 이럴 때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책은 최소한 ‘빚’의 문제에서 기존과는 다른 접근을 시도하며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가계부채의 원인 진단과 문제 해결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 중 정내라는 나와 함께 제20대 국회에서 금융의 약탈적 행위들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했던 선임 비서관으로, 앞으로 벌어질 가계부채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금융시장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으로서, 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만 4년간 활동했다. 저소득 저신용자들에게 빚을 부추기는 금융회사의 약탈적이고 잔인한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 주빌리은행을 만든 후 그 활동의 성과물을 법 개정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국회에 입성했다.

4년간의 정무위원회 활동을 통해 최소한 부실 채권에 대한 정부 당국과 금융회사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부실채권이 단지 금융 시장에서 가치가 폭락한 상품으로만 이해돼서는 안 되고, 사람들의 삶을 왜곡시킨다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했다. 부실채권 처리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당기간 동안 지독한 추심에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지 알리고자 했다.

대한민국 금융시장은 글로벌 경제 10위권에 오른 선진국이라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야만적이고 후진적이다. 민주주의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인권을 완벽하게 차단한 채 금융시장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해 왔다.

물론 이러한 인권 감수성 측면으로만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다. 주요 선진국들은 약탈적 대출과 과잉대출을 차주의 상환 능력을 뛰어넘는 대출로 정의하고, 이를 규제하고 있다. 규제 이유는 신용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더 나아가 금융시장을 건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거시적 목표를 포함하고 있다.

미국의 약탈적 대출 금지와 관련된 입법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가 진행된 후 2010년에 도드-프랭크 월가 개혁 및 소비자보호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으로 탄생했다. 이 법의 제정 사유는 금융위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금융위기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과도한 대출 행위를 지목하고 있다.

키우던 강아지 명의로 대출이 가능할 만큼 대출 규제가 느슨했고 그렇게 과잉대출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과잉대출에 대한 금융회사의 모럴 해저드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금융위기를 낳은 것이 아니라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로 과잉대출이 이뤄졌고 그것이 금융위기까지 불러왔다.

도드-프랭크 법이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금융소비자 보호를 핵심 내용으로 제정됐다는 점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과도한 가계 부채 상태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하는지 방향은 분명하다. 하지만 금리와 물가가 동시에 치솟고 경기 후퇴 전망이 확실시 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막연히 취약차주를 보호하겠다는 공염불만 반복하고 있고, 언론은 정부의 취약차주 보호 방안을 다시 한 번 도덕적 해이로 몰아붙이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정치적 공방이 거센 가운데 경제 변수들이 하루하루 비관적으로 급변하고 있는데도,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 해석과 관련된 해법 논의 자체가 전무한 실정이다.

회색 코뿔소가 커다란 소리와 진동으로 다가오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느라 분주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다른 일로 바쁘다. 금리인상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시작된 만큼, 정부는 부동산 시장과 금융시장의 연쇄 위기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 한 권으로 해법이 도출되고 위기를 준비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빚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용기가 되고, 나아가 진짜 문제의 원인은 채무자가 아닌 금융시스템과 금융회사들에 있음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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