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신간] 경복궁의 유령(천주당 무녀 진령군의 일대기)-상권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2.04 19:13 | 최종 수정 2023.02.05 09:51 의견 0

작가 권오형 씨가 6·25 피난 생활 때 할머니께서 들려 주신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소설 '경복궁의 유령'(도서출판 행복에너지)을 펴냈다. 492쪽, 2만 2000원.

한국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소설의 전개가 독특하다. 신비로운 전설적 소재와 구한 말의 혼란한 역사를 교차시키며 독자들을 틈 없이 몰아친다. 지역 방언을 살린 필력은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한 내용을 잘 떠받쳐준다.

저자는 경기대 문학연구소 연구위원, 농민문학 이사 등을 거쳐 지금은 한국문인협회 및 소설가협회 회원이다. '영원한 삶의 소야곡', '끝나지 않은 전쟁', '소설 신기단' 등 다수의 작품으로 활발한 집필을 하고 있다.

■ 참고 자료

▶출판사 서평

혼란의 구한말, 숙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들이 만들어가는 조선의 새 역사

오래된 세도정치의 폐습으로 백성들의 조정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극에 달하고, 왕실을 둘러싼 세도가들의 권력 대결이 격화되며, 먼 서쪽에서 온 이양인들에 의해 ‘민주주의’, ‘만민평등’, ‘야소교(그리스도교)’ 등 국가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개념이 전파되기 시작하던 혼란의 조선 말. 철종 임금이 후사 없이 붕어(崩御)를 맞고, 어린 고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권력을 쥐게 된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이러한 서양 세력과 그들의 사상을 반역으로 규정하고 엄격히 탄압하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뛰어난 무공과 굳은 심지를 소유했으나 철모르는 소년의 일면 역시 가지고 있는 청년승 소웅(업보), 그와는 태생의 숙명으로 얽매인 사이이며 남몰래 그를 사모하는 여인 소아, 야수 같은 행동력과 싸늘한 손속을 갖추고 소아에게 일그러진 애정을 가진 쇠돌바우, 그리고 어릴 때부터 숲속을 뛰어다니며 무공을 갖춰 임금님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당돌한 성정의 야생녀 초혜….

네 명의 소년소녀는 태어나자마자 다양한 사연을 안고 세상에 홀로 되어 현무, 장무, 백무의 이름을 쓰는 세 스님의 슬하에 거둬져 함께 자라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들은 서로 헤어져 장성하게 되고, 장성한 청년이 된 업보가 의문의 상처로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산속 화전민들의 마을에 나타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초혜와 오해 가득한 만남을 하게 되면서 네 명의 운명은 급변한다.

부득이한 선의의 거짓말로 시작된 업보와 초혜의 여행은 예상치 못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된다.

그들은 ‘동학도의 난’ 이후로 극렬해진 ‘반역도’에 대한 탄압 속에서도 조선의 변화를 꿈꾸는 민초들, 야소교인들, 개화파 지식인들과 인연을 맺게 되는 한편 호랑이 같은 권력과 여우 같은 권모술수를 가진 독재자 흥선대원군과 어린 나이에 구중궁궐의 암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허우적대는 중전 민씨,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권문세가들의 투쟁에 말려들며 거대한 제국주의의 물결 속 추풍낙엽처럼 흔들리는 조선의 운명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경기대 문학연구소 연구위원, 농민문학 이사 등을 거쳐 한국문인협회 및 소설가협회 회원으로서 '영원한 삶의 소야곡', '끝나지 않은 전쟁', '소설 신기단' 등 다수의 작품으로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권오형 작가는 소설 '경복궁의 유령' 속에서 어린 시절, 6·25의 화마 속 험난한 피난 생활을 하면서 할머니께서 들려 주신 신비로운 이야기를 기반으로 독특한 한국적 상상력을 전개해 나간다.

특히 신비로운 전설적 소재와 구한 말의 혼란한 실제 역사가 교차하며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와 지역 방언을 잘 살린 현실감 넘치는 필력은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이다.

▶저자 소개/권오형

저자 권오형

<작품집>

•영원한 삶의 소야곡

•끝나지 않은 전쟁

•시베리아 횡단 열차(3권)

•마지막 애인

•소설 신기단

•사랑의 열망

•지옥의 전설(3권) 외 다수

<이력>

•인하대 산업기술대학원 수료

•전. 경기대 문학연구소 연구위원

•전. 농민문학 이사

•전. 상장건설사 사외이사

•한국문인협회 및 소설가협회 회원

•국가유공, 상이군경회 회원

•순수문학상 수상

•세계문화교류협회 평화봉사상 수상

▶목차

머리말 4

1. 동물의 왕국 16

2. 죽음의 목탁소리 26

3. 소년승의 정체 39

4. 하늘에 맡겨진 운명 56

5. 불타는 산막 (1) 77

6. 불타는 산막 (2) 89

7. 백호의 현몽 106

8. 역사의 뒤안길 125

9. 화마 속의 천년고찰 136

10. 왜구의 간자들 153

11. 죽음의 도망자 170

12. 천년 원귀 181

13. 엇갈리는 운명 198

14. 양주 땅 봉원사 212

15. 고난의 천리길 225

16. 천주학의 서양 신부 243

17. 상여막의 목소리 260

18. 삼신당의 신녀 278

19. 귀신드리(신굿) 295

20. 봉원사 가는 길 309

21. 진흙 속의 보물 328

22. 기이한 인연 346

23. 귀신들의 혈투 362

24. 진장방의 새(왕실) 무당 378

25. 운현궁의 예배당 398

26. 죽동궁의 찬바람 415

27. 엇갈린 운명 429

28. 개암사에서 만난 인연 444

29. 끝나지 않은 진실 458

30. 불타는 궁궐 471

▶본문 미리보기

머리말

내가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었던 지나간 세월의 옛이야기 하나를 들춰내 볼까 한다. 경복궁의 유령 얘기다.

그러니까, 아주아주 오래된 옛날 옛적의 내 어린 시절에 내게는 참으로 말 못 할 시련이 찾아왔다. 6.25가 터진 것이다. 우리 마을에서는 이때 우리 가족들만이 서둘러 피난길을 떠나야 했는데, 아마도 조부님께서 공산당에 대한 지식이 조금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놈의 피난길이었다. 마을 뒤쪽에 있는 을채골 재터를 넘어 샛강이 흐르는 자갈 강변을 걸어서 지리산 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려던 피난길이었는바 그것이 참으로 고통스럽기가 짝이 없었다. 쇠머리를 벗길 듯한 그놈의 뙤약볕 때문이었다.

게다가, 맨몸으로도 걸어서 따라가기 힘든 자갈 강변을 베겟뭉치 같은 피난 보퉁이까지 짊어지고 어른들을 뒤따라가자니, 나는 그만 체력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는 것이 그토록 힘들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내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피난 보따리에 짓눌려서 어른들이 나보다도 먼저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눈치껏 이를 악물고 어른들을 뒤따라가야만 했다. 행여 나를 길가에 내버리고 갈까 봐 겁이 나서였다. 피난길의 분위기가 그랬었다. 자칫, 내가 투정이라도 부리면 대번에 나를 그 자리에서 내버리고 갈 것 같은 분위기 말이다.

거기에다 하늘마저 내 편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힘이 들고, 무덥고, 겁이 나서 죽겠는데 갑자기 하늘이 배탈이라도 난 듯 요동을 치며 생전에 본 적조차 없는 괴물 같은 비행기 두 대가 나타나 머리 위를 맴돌면서 내게 겁을 주는가 싶더니 그만 세상이 둘러 꺼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말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결코 멀지 않은 거리에서 갑자기 검붉은 불기둥이 솟구쳐 오르며, 그놈의 폭음 소리는 왜 또 그렇게나 큰지,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졸도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뒤이어 내 기억 속에 떠오른 것은, 아련한 꿈길 속에 펼쳐진 천상의 낙원이었다. 늙은 고목나무 둥치들의 잎새가 하늘을 가린 그늘 밑의 바윗돌들 사이로 시원스레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다람쥐들의 천국이었는바,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성주 산성 아래 청암사 계곡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훗날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피난길에서 내가 졸도를 해버리자 어른들은 그때서야 내 육체적인 한계를 알아채고 이곳 청암사 계곡으로 발길을 돌려 어린것의 생명을 돌보고자 했던 모양이었다. 참으로 복 받을 일을 한 것임이 분명했으나 그것이 또한 문제였다. 우리 가족들이 나 때문에 발이 묶여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사이, 인민군들이 우리보다 먼저 남쪽으로 쳐내려가는 바람에 가족들은 그만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겠으랴. 이때, 내가 가족들의 피난길을 훼방 놓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가족들은 정녕 고생은 고생들대로 하면서 지리산 자락의 어딘가에서 인민군대에 따라잡혀 죽임을 당했거나, 또는 그들에게 끌려가 빨치산이 되어 무주고혼의 신세들이 되고 말았을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작 나에게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마을 사람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때 피난 갈 엄두도 못 내고 마을 근처에서 얼쩡대다가 그만 인민군대를 맞이하게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마을 뒤쪽 재터에는 국군부대가 매복해 있었다고 하였거니와,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 국군을 전멸시킨 것으로 오해를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에 인민군들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분명히 보복을 당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전세가 역전이 되어 인민군들이 모두 퇴각하고 나자 드디어 인민군 부역자들과 공산당들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작되게 되었던바, 이때 무사히 피난살이를 끝내고 마을로 돌아온 우리 가족들은 그만 아연실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마을이 유령의 마을로 변하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조부님께서는 결코 마을의 불행을 방관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불행을 겪게 된 근본적 원인은 조부님에게 그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하거니와, 그러기 위해서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나의 증조부님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노릇이다.

증조부께서는 원래 버려진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곳 삼백골의 외떨어진 산자락 아래에 있던 전답을 구입하여 농사를 지으셨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해, 이곳에다 원두막을 짓고 참외 농사를 지으셨는데, 이때 사냥꾼 한 분이 이곳을 지나치다가 원두막에 들러 쉬어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시절에는 대원군의 사냥꾼 징집으로 인하여 사냥꾼의 모습을 본다는 게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그 풍모 또한 예사롭지 않았던지 증조부께서는 이곳 원두막에서나마 손님에 대한 예우를 다하였고, 그것으로 마음이 통하여 서로 간에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그랬는데, 이 사냥꾼이 놀랍게도 고종황제께서 왜인들 모르게 비밀리에 운영하던‘활빈당’의 일원이라 하였던바, 사냥꾼으로 위장하여 전국을 누비고 다니면서 의혈단의 인재를 찾아다니던 참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황제께서 붕어하시고 국권마저 침탈이 되자 사냥꾼도 더 이상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사냥꾼과의 약조를 위해 증조부께서는 결코 의혈단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원두막이 있던 이곳 삼백골의 외딴 산자락 아래에다 오두막을 지어서 이사를 와 사냥꾼을 기다리며 살게 되셨다고 했다. 나라님과의 약조란 기필코 지켜야 하는 것이 사대부의 도리요 본분일 뿐만 아니라 언젠가 새로운 황제가 의혈단을 운영하게 될 것이요, 왜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왕조의 기틀을 다시 다지게 될 것이므로 백성 된 도리를 가벼이 할 수는 없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 삼백골의 이름조차 당신께서 이곳에 은거하여 사냥꾼을 기다리며 살았다는 뜻으로 ‘은거실’이라 했다는 것인데, 오두막은 훗날에 조부님이 장성하시어 번듯하게 새로 신축을 해서 사셨지만 외로움만은 감당하기 힘드셨던지, 이웃 마을 사람들을 하나둘씩 꼬드겨 집터까지 무상으로 제공을 해가며 십여 호가 넘는 아담한 마을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그랬는데, 그만 그놈의 6.25가 조부님의 꿈과 희망마저 앗아가 버리는 지경에 이르고 만 셈이었다. 조부님만 아니었다면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이곳으로 이사와 살지 않았을 것이요. 인민군으로 인하여 비극을 맞이하게 될 일도 겪게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무주고혼의 신세가 되고 나면 우리 가족들인들 어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있을 일이겠는가.

조부님이 마을 사람들의 구명을 위해 생사를 걸고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한 가지 이유가 분명 더 있었다. 황국의 망령이 조부님에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놈의 망령은 나에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증조부께서 이 후손에게 물려준 마음의 덫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여기 경복궁의 유령이 태어나게 된 것이거니와 이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피난 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었다. 나이가 너무도 어렸던 탓에 기억이 의식의 저편으로 묻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원거리 소풍을 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하필이면 청암사의 그 먼 절간이었던 것이다. 이때, 계곡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너무도 놀라운 광경에 그만 엄청난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꿈속에서 보았던 천상의 낙원이 현실이 되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꿈속에서 뛰놀았던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나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참으로 놀라운 기억을 하나 떠올리게 되었다.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고 엄하기만 했던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내가 살포시 잠이 들려는데 할머님이 그러셨다.

“… 내 어린 시절에 어른들을 따라 한양으로 대궐 구경을 갔었는데…”

그때 마침 수염을 허옇게 기른 신선 같은 노인이 대궐 앞에 앉아서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수염을 하얗게 기른 신선이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다’라는 말로 들렸었다. 참으로 기억이 되살아날 법도 한 신비스러운 신선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소풍에서 돌아온 내가 언제인가 조부님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는데, 뜻밖에 조부님께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조부님이 조모님과 혼인을 하고 나서의 일이라고 했다. 두 분께서 혼인할 때의 나이가 일곱 살과 여덟 살 때였다니, 증조부님께서 코흘리개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대궐 구경을 빌미로 황국의 망령 속에 가둬두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었나 짐작해볼 뿐이다.

조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국권이 침탈되고 황제께서 붕어하고 나신 뒤라 아마도 어느 전직 대감님께서 그것을 통탄하시어 왜놈들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그렇게 울분을 쏟아 냈을 것이라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조모님이 피난 시절에 그 청암사 계곡에서 기약 없는 피난살이의 막막함과 두려움을 잠시라도 잊기 위하여 누군가에게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것이었으며, 내가 그것을 신비로운 신선의 이야기로 기억해 내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아 알 수가 있게 된 것이었으며, 내가 할머님의 품에 안겨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 볼 뿐이다.

그리고 어느덧 내가 조부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지 반세기의 세월이 더 흘러갔다. 조부님께서는 끝끝내 황국의 망령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시어 당신의 아들인 나의 부친을 꿈과 현실도 구분 못 하는 인생의 낙오자로 만든 것도 모자라서 나에게까지 경복궁의 유령 속에 갇혀 살게 하셨으나 여한은 없다. 경복궁의 유령을 이 세상에 탄생시킴으로써 내 생전의 마음의 짐을 털어버릴 수가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저자 권오형

저작권자 ⓒ 더경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