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3월 8일로 다가섰습니다. 농·축·수협과 산림조합의 조합장을 뽑는 선거입니다. 국회의원, 시장·군수, 자치의원 선거 뺨칠 정도로 물밑 경쟁이 치열합니다. 더경남뉴스가 창간 1주년(4일)을 맞아 참일꾼을 뽑는 조합장 선거를 4회에 걸쳐 선거운동 현장과 문제점, 해결책 등을 짚어봅니다.
[조합장 선거 시리즈] 왜 조합장에 목 매나(3)
"일개 농어산촌의 작은 시골 조합장이라고 말하면 지역 경제와 지역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4년 임기 내내 억대 연봉에 판공비는 여느 굴지의 대기업 대표에 못지 않습니다. 1천명이 넘는 조합원에게 공식적인 선물 등으로 푸지게 베풀며 폼을 잡을 수 있지요. 이만한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인사권도 막강하지요"
기자가 조합장 선거(3월 8일)를 앞두고 만난 주민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들은 말이다. 어느 조합원은 조합장 자리를 '꿀 바른 떡'에 비유했다.
이 같은 조합장 메리트는 지역 주민들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었고, 큰 돈을 버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농어촌 지역에서는 어느 직종과 자리보다 매력적으로 여기고 있었다. 만난 세간의 주민들 말이 투박하긴 해도 '부러운 자리'란 말이다.
▶서울대-삼성맨도 출마
지역의 유력 인사들이 기를 쓰고 조합장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많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욕심을 낼만한 여러 여건이 충족한다. 조합장 선거가 대선·총선·지선에 이어 '제4의 선거'로 불릴만큼 조합원은 물론 지역 사회에서의 관심은 적지 않다.
실제 주민들의 언급처럼 1억 원대가 넘는 연봉에다가 조합장이 활용할 수 있는, 판공비성 돈도 수천만원에서 억대가 되는 것은 여러 통로를 통해 확인이 됐다.
경남 진주의 한 단위농협(회원농협)의 감사를 역임한 한 인사는 "경남의 경우 조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1억 원대 연봉을 받는다고 보면 큰 무리는 없다"고 말했다. 1억 원을 훨씬 넘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산림조합은 농협과 축협, 수협보다 연봉 수준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진주의 한 농협에서는 이번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서울대-삼성그룹 근무' 이력을 가진 후보도 출마해 지역에서는 화제로 회자되고 있다.
▶조합은 어떤 역할? 조합장은 어떤 자리?
부러움의 대상인 조합장 임기는 4년이다. 연임도 가능하다.
농어촌에서 사는 대부분의 주민은 권역별로 있는 농축협이나 수협, 산림조합을 통해 경제 활동을 한다. 조합은 농림수축산 자금과 정부 보조금 입출금 등 '돈줄(금융 거래) 역할'을 하고 농자재와 생필품 매장도 운영한다.
따라서 주민들은 조합에 가입해야 편리함은 물론 크고 작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적정 규모 이상의 농림수축산업을 영위하는 중대 농가는 조합과 뗄래야 뗄 수 없은 관계다.
농협의 경우를 살펴보자.
사업은 ▲신용 ▲경제 ▲지도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다.
신용사업은 상호금융(예금과 대출), 공제(보험 등), 신용보증(농림축수산인 대신 보증) 등을 한다. 즉 예·적금과 대출, 보험, 보증 업무를 서비스를 한다.
경제사업은 영농 준비에서부터 농산물 생산→유통→가공→소비 과정을 농협이 직접 하거나 농어민에게 지원을 한다.
영농 정보와 과학영농 기술을 보급해 생산비 절감을 유도한다. 경남 진주진양농협에서는 영양 액비와 역병 방제를 위한 '아인산'을 개발해 보급 중이다.
또 농산물의 공동선별 및 공동출하로 유통비를 절감하고 산지집하장, 미곡종합처리장, 수송 차량 등 농산물 산지 유통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지도사업은 영농 자재와 생활물자를 지원한다.
영농 편의와 농가의 소비 생활에 연관이 있다.
또한 조합은 환경·벤처 농업을 추진해 첨단 기술 교육과 유통 정보 등의 사업도 한다.
구체적으로 조합원에게 벼 육모용 자재 등 영농자재 지원, 간행물 무상지원, 노인 독감예방 접종 지원, 조합원 자녀 장학금 지원, 김장김치 지원, 토양 검사 등을 한다.
강원 고성군의 한 조합원은 "3개 사업이 톱니같이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를 종합하면 농협은 농업인에게 농업 관련 종합 서비스를 하는 것은 물론 일반 시중은행이 하는 업무도 한다. 농업과 금융 모두를 한다고 보면 된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창구여서 조합장은 '황금알을 지닌' 자리로 말해도 무리가 없다. 조합장의 지위와 역할은 이처럼 일반인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축협도 마찬가지이고 수협도, 산림조합도 역할은 비슷하다.
▶조합 설립 요건은?
현행 농업협동조합법의 시행령에 따르면 조합 설립 인가의 최소 조합원수는 ▲지역 농·축협은 1000명 ▲품목이나 업종의 농·축협과 원예협은 200명 ▲특별·광역시 또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고시 지역은 300명이어야 한다.
농협의 조합원수는 상대적으로 많아 1000~2000명대다.
출자금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지역 농·축협의 경우 5억원 이상이다.
농식품부는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조합은 설립 인가를 취소하거나 합병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준에 못 미쳐도 돼 선거를 치를 수 있고 그 결과도 유효하다.
경남 진주시에서는 12개의 농협과 1개 축협, 1개의 산림조합 등 총 14개 조합이 있다. 14개 조합의 조합원은 2만 4891명이다.
바다를 접하는 강원 고성군의 경우 3개 농협, 1개 축협, 1개 산림조합, 2개 수협 등 7개의 조합이 있다.
영농 규모가 큰 진주와 규모가 작은 고성은 조합의 수와 개별 조합원의 차이가 제법 난다.
▶조합장은 정말 제왕적인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조합의 직원이나 조합원들은 조합장 권한을 '제왕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합장 선거가 혼탁하게 전개되는 이유는 이 같은 조합장의 막강 권한 때문이다.
경남의 경우 조합원의 규모가 대체로 1천명 이상이어서 이들 조합장 연봉은 1억원을 훌쩍 넘긴다.
차량도 지원되며 거액의 업무추진비도 사용한다. 복수의 농축산인에 따르면, 개인 업무추진비를 포함해 조합의 공식 판공비성 돈을 합하면 1억원 이상인 곳은 많다.
물론 이 수준에 못 미치는 곳도 적지는 않다.
6년 전 강원도에서 축협 임원을 했던 한 축산인은 "당시 대의원 회의를 통해 조합장 연봉을 5천만원에서부터 5백만원 단위로 올리는 결정을 했었다. 지금은 훨씬 더 올랐을 것"이라며 "요즘은 연봉 7천만원은 되고 조합원에게 주는 공식 선물 등 조합장의 손을 거치는 판공비성 돈은 수천만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조합원이 적은 강원도의 경우이고 경남과 호남, 충청의 경우는 영농인의 수가 훨씬 많아 여건이 더 좋다.
시리즈(1)에서 언급했듯이 조합장 선거가 조합장 당선 직후부터 4년간 진행된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현직 조합장은 이렇게 간접으로 인심을 얻는다는 의미다.
조합장의 연봉과 판공비 규모는 조합의 자산 규모에 따라 결정된다. 조합 이사회에서 이를 결정하는데 최종 승인은 조합원 중에 뽑힌 대의원의 총회에서 한다.
여기에다가 임시직 고용 등 인사권까지 쥐고 있다.
조합장이 가진 이처럼 막강하다. 시골의 한 고을에서 치러지는 '몰라도 되는 선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경남 진주에서 농협 조합장에 출마하는 60대 후보는 십수년 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이 됐다가 불출마 시효가 지나 이번에 출마를 한다. 그를 아는 주민은 "조합장 자리가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조합장을 한번 경험을 한 사람은 절대 꿀이 흐르는 자리를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다소 다르지만 강원 고성군의 축협 조합원은 첫 동시선거 때 횡재를 한 조합장도 더러 있었다는 옛 이야기도 일러주었다.
그는 "조합장의 임기는 4년인데 첫 통합선거에서 당선된 직전 조합장은 최장 6년을 한 경우도 있었는데 지역에서는 복이 굴러온 사람으로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조합장엔 상임-비상임이 있다
조합장은 상임조합장과 비상임조합장으로 구분된다. 일반인이 잘 모르는 내용이다.
농협법상 상임-비상임 조합장 기준은 조합의 자산 2500억 원이 기준이 된다. 비상임 조합장을 두고 있는 농협은 전체 1115곳 중 462곳(41%)에 이른다.
상임 조합장의 연임은 2회까지, 즉 한번 당선된 뒤 두번을 더 할 수 있다. 비상임 조합장은 연임 제한이 없다.
따라서 비상임 조합장은 이번 선거에서 최대 10선을 노리는 농협 조합장이 다시 출마했다. 재임 기간이 수십 년인 조합장도 있다.
대전 원예농협과 충북 제천 봉양농협 조합장은 ‘10선’에 도전한다. 대전 유성농협과 북대전농협 조합장은 각각 7선과 5선, 경기 군포농협 조합장은 4선 도전 의사를 밝혔다. 10선 도전자가 당선되면 재임은 40년이 된다.
이런 규정에 꼼수도 등장한다. 조합장 지위를 상임에서 비상임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농협법에는 자산 규모 2500억 원 이상 조합의 경우 조합장 지위를 상임에서 비상임으로 전환하고, 전문경영인인 상임이사에게 조합 운영을 맡기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합장은 조합의 대표권(대외 교류), 직원 임면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복지와 교육 분야도 총괄한다. 다만 신용 사업, 경제 사업은 제한돼 있다.
이는 조합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경영 전문성을 강화해 조합원 이익을 증대시키자는 게 애초의 법 취지다.
하지만 현장에선 법 취지와 다르게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지역에선 비상임 조합장이 농산물 유통·판매부터 금융 사업까지 경영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는 비상임 조합장이 상임이사를 선임하는 인사추천위원회에 참여하고 2년마다 경영 실적 평가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권한을 분산하기 위한 조항이지만 상임이사가 비상임 조합장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구조다.
비상임 조합장의 입맛에 맞는 측근이나 친인척을 상임이사로 선임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상임 조합장을 이른바 '소왕국의 왕'이라고 부른다.
현재로선 비상임 조합장을 견제하거나 감시할 수단이 없다.
3번 연속 연임이 제한된 상임 조합장과 달리 비상임 조합장은 연임 제한 규정이 없다. 현재 4선 이상 농협 조합장은 전국에서 110명이 넘는다.
반면 수협의 경우는 비상임 조합장에게 1회 연임만 허용하고 있다.
이를 고치기 위해 국회에서는 비상임 조합장의 연임을 제한하는 ‘3선 제한’ 농협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해당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부분 농촌 지역구인 여야 의원들이 표를 의식해 조합장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비상임 조합장의 영향력은 무시 못할 만큼 크다.
▶조합 이름의 선물은 실제 조합장 얼굴로
대부분의 조합원은 농협-축협, 농협-축협-산림조합, 농협-수협 등에 가입돼 있다. 중대농가의 경우 한 사람이 몇 군데의 조합원이란 말이다.
조합은 조합원이 참여해 만들어진 조직이어서 회비를 내는 조합원들에게 주기적으로 각종 감사의 선물을 준다. 명절이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 집안 경조사가 있을 땐 각종 선물이 준비된다. 조합 발전에 도움을 줘 고맙다는 인사치레의 공식적인 선물이다.
경남 지수의 한 축협 조합원은 "조합장이 경조사 때나 평소에 조합원 집을 방문할 때 빈손으로 가지 않고 소주 한 박스에 돼지고기라도 사들고 간다. 이게 현 조합장의 사전 선거운동과 같은 것"이라며 "내 돈이 아닌데 내 돈과 같이 한해에 수천만원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경남 고성의 조합원은 이를 두고 "조합장이 주무른다"는 말로 대신했다. 농촌 사람의 억세고 두루뭉슬한 말투를 감안하면 과장된 점도 있어 보이지만 여러 사람의 말과 정황을 고려하면 크게 틀리지는 않아 보인다.
▶조합장은 지방의원, 단체장 가는 섬돌?
일부 조합장은 지역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조합을 운영하면서 지위를 다져 지방 정계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조합장 자리가 디딤돌(섬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연임을 하면서 인지도를 높여 기초·광역 의원, 자치단체장 출마의 교두보로 삼는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조합장은 지지 세력이 있어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 가진다. 국회의원 등 기존 정치인들이 조합장들의 조직을 활용한다. 말하자면 '선거 말꾼(말 몰이꾼)' 역할을 하는 셈이다.
부산의 한 지역 매체에 따르면, 부산의 한 수협 조합원은 “규모가 큰 조합의 조합장이 내년 총선 비례대표 출마를 위해 바쁘게 다닌다는 소문이 돈다”고 전했다.
▶연재 마지막인 네 번째 기사에서는 '조합장 선거 해결책'(3월 8일 선거 이후)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