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태어난 고향은 경남 진주시의 동부 지역 마을입니다. 어릴 때 시끌법적했던 마을은 언제부터인가 을씨년스러운 마을로 변해버렸습니다. 아이의 울음이 끊긴지도 오래이고 100호가 훌쩍 넘던 마을은 이제 20여호에 불과합니다.

젊은 회사원 가정과 퇴직한 외지인 몇 집이 마을로 들어왔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기자가 자란 마을의 지금 풍경입니다.

요즘 동네 한가운데 있는 마을회관을 지날 때면 마음의 한켠엔 멍울이 생겨 종종 상념으로 다가와 밟힙니다.

3여 년 전 마을회관엔 어르신들로 북적였습니다. 싱크대와 스포츠 용기들도 있었지요. 어르신들이 회관에 모여 음식을 해서 드시며 놀다가 일어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1~2년 새 어르신들의 온기는 사라져 한적합니다. 그분들 중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해 요양원으로 가셨거나 집안에서 지냅니다. 소슬하고 서늘합니다.

며칠 전 두 개의 기사를 접했습니다. "저게 아이디어야"하며 무릎을 쳤던 기사입니다. 그런데 내면을 더 들여다보니 조금 복잡한 구석은 있습니다.

먼저 전남 여수의 작은 섬마을 초도의 이야기 입니다. 기자의 고향 마을처럼 어르신들이 경로당에서 점심을 함께 드시는 내용입니다. 우선 KBS의 뉴스 사진을 몇장 보겠습니다.

초도 대동마을 김진수 이장이 SNS에 올린 사정 글입니다.

초도 대동마을 어르신들이 음식을 만들어 차려놓고 즐겁게 점심을 드십니다.

전국에서 기부한 음식과 직접 마련한 점심을 드시는 어르신들

냉장고 안에 있는 전국에서 기부한 음식 재료들

김진수 대동마을 이장이 SNS를 통해 어르신들의 점심용 찬거리 도움을 청했고, 사정이 알려지면서 크지는 않지만 재료와 성금이 답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르신들은 이 온정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점심을 드신다고 합니다. 어르신들과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마을에 오랜만에 생기가 돈다고 하네요.

전남 여수시 초도 전경. 여수시 제공

덤으로 조도를 조금 더 알아봅니다.

초도는 전남 여수시 삼산면 초도리에 위치한 면적 7.72㎢의 섬으로 450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어업과 함께 보리, 콩, 고구마 등을 심어 생업에 종사합니다. 새의 섬이란 뜻으로 조도(鳥島)라고도 불립니다.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77㎞, 거문도에서 북쪽으로 18㎞ 해상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루 한번 정기여객선이 여수에서 오가고 두어시간 걸립니다.

천천히 걷고 오래 머물러도 좋을 섬이라고 합니다. 특산물은 전복이고 대동해수욕장, 정강해수욕장이 있습니다.

다시 어르신들의 식사 이야기를 잇습니다.

"경로당으로 나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곳 대동마을엔 점심 때가 가까워지면 마을방송이 울려퍼집니다. 사전에 여성 어르신들이 점심 식사거리를 마련합니다.

점심상에는 주민들이 잡은 해산물과 싱싱한 채소로 만든 반찬이 제법 푸짐하게 올라옵니다. 닭도리탕에 간단한 반주도 곁들여집니다. 작은 잔칫날같은 분위기입니다.

김진수 이장은 "마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울이면 배가 자주 다니지 않아 섬 밖에서 시장 봐오는 것도 쉽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사정을 알렸다"고 했습니다.

한 지원자도 "제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기부를 했다. 선한 영향력이 넓어진 것 같다"며 뿌듯해하더군요.

멀리 서울은 물론 가까운 인근 여수에서도 바닷길을 건너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섬마을에 푸근한 온기를 더합니다.

다음은 '어르신 공유주택' 이야기입니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70~80세 어르신이 함께 사는 공유주택을 지어 열었더니 가족과 같은, 친구와 같은 분위기가 됐다는 기사입니다.

부산진구 초읍동 커뮤니티하우스인 ‘도란도란하우스’로, 돌봄망에선 핫플레이스로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네 분의 남녀 어르신이 지냅니다.

적적한 어르신들이 가족과 같은 생활을 하며 유대감이 끈끈해지고, 복지행정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도 주목을 받는다고 합니다.

다만 지속적인 사업 예산의 뒷받침이 숙제가 되겠지만은요.

부산진구에 있는 ‘초읍 도란도란하우스’ 전경. 부산진구 제공

“와 전화를 안 받노. 뭔 일 있는 줄 알았다”

한 공간에서 친구로 지내는 이웃이 기척이 없으면 이처럼 안부를 묻습니다. 이야기 벗도 돼 주고 병원 이용 등 일상의 일들을 주고받습니다. 홀로 사는 어르신 가정 방문도우미 역할을 하는 요구르트아줌마가 필요 없는 곳입니다.

공동 거실에는 물을 데울 수 있는 전자레인지와 커피 포드 등 간단한 주방기기들도 구비돼 있습니다.

이들 어르신은 이전에 전혀 연이 없었다고 합니다. 박경자 어르신은 “밥 같이 먹고 (같은 공간에서) 잠 같이 자면 가족이지. 죽을 때 다 돼서 만난 마지막 가족”이라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도란도란하우스는 부산의 첫 어르신 공공 공유주택입니다. 지난 2019년 보건복지부 ‘지역사회통합돌봄 선도사업’에 선정돼 2021년 만들어졌습니다.

4층짜리 건물의 3, 4층에는 각각 6개의 방이 있고 최대 20년까지 살 수 있다네요. 65세 이상 부산진 구민이면 조건 없이 입주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노인돌봄제도는 크게 노인 장기요양 서비스와 저소득층 대상 서비스가 있는데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거나 가난해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란도란하우스는 여기에서 제외된 틈을 메우려는 행정 서비스입니다.

가난과 병을 인정 받지 못한, 정부의 정책이 빠뜨린 어르신을 챙기는 제도입니다. 주위엔 이러한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지난해 부산의 어르신 68만 1885명 중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인정 받은 분은 단 9%(6만 1329명)였다고 합니다. 전국 최대 어르신 기초수급자 비율을 가진 도시입니다.

따라서 도란도란하우스는 8대 특별시·광역시 가운데 처음으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부산의 특수성을 감안한 행정 서비스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도란도란하우스는 출범 1년만에 운영 예산 40%가 삭감됐다고 하네요. 통합돌봄사업 예산 중 구비를 제외한 국비(8억 원), 시비(2억 원) 지원이 중단된 탓입니다.

위의 두 사례를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성공의 여부는 '지속성의 문제'로 보입니다.

돈의 문제이지만 초고령시대에 어르신의 돌봄 행정과 사회적 돌봄이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를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전국의 지자체가 대안으로 시도해볼 이유는 있어 보입니다. 민간과의 협업으로 넓혀봄직도 합니다.

분명 예산 확보 문제가 걸림돌이지만 정부와 지자체에서 민간에 일정 금액을 지원을 하고 대상자인 어르신(자제 포함)의 부담율을 조금 더 올리면 해결책이 나올 듯도 합니다.

부산의 도란도란하우스는 농어촌 마을에 정착시켜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텃밭도 가꾸면서 건강도 지키는 틀로 정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몇년 전 경남의 어느 지역에서 중노년의 여성 어르신들이 한집에서 생활하며 언니 동생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이야기도 전국에 알려졌었지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이란 하나 하나 만들어가며 시행착오를 거치면 안착할 수 있습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도 합니다.

위의 두 지역 공동체에서 보여준 틀이 조금 더 영역을 넓혀가면 고독사나 가족 간병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