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농축업과 어업과 관련한 속담(俗談)을 찾아 그 속담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알아봅니다. 속담은 민간에 전해지는 짧은 말로 그 속엔 풍자와 비판, 교훈 등을 지니고 있지요. 어떤 생활의 지혜가 담겼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벼논의 나락 수확이 대부분 끝났습니다.
농업인들은 근자에 이상기온으로 폭염과 폭우가 잦아 농사 짓기가 매우 어려워졌다며 걱정입니다. 올해는 과수의 봄꽃이 필 무렵 한파에 따른 냉해로 꽃이 말라비틀어져 꽃가루 수정이 제대로 안 됐고, 여름엔 장마와 폭염이 이어지면서 과일과 채소가 탄저병과 무름병 등으로 가을추수철 농업인들의 얼굴이 말이 아닙니다.
오늘은 두더지에 관한 속담을 소개합니다. 두더지는 수확철과 관련이 많습니다.
벼 수확철인 이맘때 벼논에 가면 주위에 두더지가 파놓은 구멍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논가에 죽어 있는 두더지 모습도 더러 봅니다. 기자도 휴일에 추수일을 돕기 위해 논에 가서 죽은 두더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먹을 것도 많은데 왜 죽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만 정확한 이유를 알 길은 없습니다. 이유를 찾자면 두더지가 죽어 있는 곳은 대체로 산에 인접한 논들입니다. 밤새 멧돼지가 내려와 주로 밤에 활동하는 두더지가 나타나면 죽이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얼추 맞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멧돼지는 도심에도 자주 출몰하지만 수확을 앞둔 벼논을 뛰다니며 쑥밭처럼 만들어놓습니다. 벼논의 주변 즉, 가장자리인 논둑 근처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닌 발자국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논둑 근처에서 굴을 파고 서식하는 두더지가 밤이면 나와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고, 멧돼지가 이 녀석들을 잡으려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것이지요. 발길에 걸려 밟혀죽지만 먹을거리가 아니어서 그냥 두고 갔다는 짐작을 해봅니다. 이른바 시골에서 농사를 숱하게 지어본 기자의 경험칙입니다.
두더지는 농사에 실(失)과 득(得)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실을 보면 두더지는 땅을 잘 팝니다.
겨울철을 난 봄날, 논둑에 가보면 구멍이 숭숭 나 있습니다. 모내기를 한 논에도 두더지가 논둑을 파놓아 가둔 물이 흘러내리는 경우가 있지요. 둑이 터지는 이유입니다. 논두렁 풀을 베는 것은 벼의 통풍 때문이기도 하지만 논두렁에 두더쥐나 땅강아지가 구멍을 내지 못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마 다랑이논 나락농사를 지어본 분들은 두더지가 낸 구멍에 논둑이 터진 경험을 많이 했을 겁니다. 큰비가 내린 후 가보면 한 두 논엔 항시 논둑이 터져 있지요. 키 높이의 논둑이 무너져내려 삽으로 낑낑거리며 흙더미를 퍼 올려 돌과 함께 쌓아 다지던 기억입니다.
예전 어르신들은 큰비가 올 때 삽을 들고 나가 물꼬를 돌보면서 두더지가 파놓은 구멍이 있는지, 물이 새지 않는지를 살핍니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농사 속담과 에누리없이 관통하는 말입니다. 밭이나 과수원도 논과 마찬가지입니다. 폭우 때 산사태 등 사태가 나는 이유입니다.
두더지는 긍정적인 역할도 합니다.
속담 '두더지가 많으면 땅심이 좋다'가 이 사례에 속합니다.
기자는 최근 휴일에 밤 과수원에서 밤을 줍다가 낙엽이 쌓인 바닥에 두더지가 오가며 뚫어놓은 구멍을 자주 봤습니다. 땅이 거름 등으로 유기물질이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유기물이란 동식물이나 미생물의 몸을 구성하거나 이들 생물체가 만들어 낸 화합물입니다. 유기물이 많으니 지렁이 등 벌레가 많이 생기고, 이를 잡아먹으려는 두더지 같은 동물이 나타나게 됩니다.
과수원 등 산에 두더지가 다닌 구멍이 많다는 것은 땅에 그만큼 영양분이 많아 두더지의 먹잇감인 미생물 등 벌레가 많다는 증거입니다. 땅에 떨어진 과수와 낙엽이 썩으면서 땅속 벌레가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두더지가 많으면 땅심이 좋다'는 속담 설명에 '논흙에 거름 등 좋은 부식(腐蝕·썩거나 발효됨) 함량이 많으면 지렁이와 굼벵이가 많아진다'고 써놓은 것이 이 때문입니다. 두더지는 땅속의 먹잇감을 찾기 때문에 이들 먹이가 풍부해지는 곳을 당연히 찾게 됩니다.
따라서 두더지들이 땅굴을 파는 것은 땅을 파헤쳐 치니 땅에 산소공급도 원활하게 해주고 땅심(농작물을 길러 내는 땅의 힘)이 좋은 포장임을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볏짚과 풀 등을 갈아서 엎어 흙과 거름을 섞으면 땅심이 좋아집니다. 논과 밭을 추수 후나 모내기 전에 한 번씩 갈아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두더지는 한동안 논에서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독한 농약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친환경농법이 개발돼 동물에 대한 농약 영향이 크게 줄고 친환경농업을 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두더지 등이 논으로 다시 삶의 터전을 잡는 것 같습니다. 메뚜기가 다시 돌아온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문제는 "그래서?"입니다. 논에 두더지가 많으면 땅심이 좋다는 것은 알겠는데 논둑이나 밭둑이 터지고 산사태가 나는 것은 또 어쩌란 것이란 말이지요. 매사가 그렇듯 좋은 두쪽을 잘 단도리를 해서 좋은 땅심으로 풍년 농사를 짓도록 하라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