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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속담 순례] '어정칠월(七月), 동동팔월(八月)'(15)

정창현 기자 승인 2023.09.23 16:51 | 최종 수정 2023.09.23 23:47 의견 0

농어업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농업과 어업에 관한 속담(俗談)을 찾아 그 속담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알아봅니다. 속담은 민간에 전해지는 짧은 말로 그 속엔 풍자와 비판, 교훈 등을 지니고 있지요. 어떤 생활의 지혜가 담겼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어정칠월, 동동팔월' 속담은 농가에서 음력 칠월(양력으론 8월 상순)은 어정어정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팔월은 추수에 바빠 동동거린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처서 절기를 전후한 음력 7월에는 바쁜 농삿일이 없고, 이어지는 8월엔 추수로 엄청 바쁘다는 의미이지요.

경남 진주시 진성면 구천마을 한 농업인이 지난 8월 말 이삭이 팬 벼논에 피(잡초)를 뽑고 있다. 정창현 기자

옛날엔 머슴들의 휴가날인 ‘백중절(百中節)’이란 게 있었습니다. 음력 7월 보름을 말하는데, 백중절엔 놀이판을 벌여 기력을 채워주는 음식을 먹으며 한여름 논메기 등으로 지친 몸을 달랬습니다. 머슴을 부리는 주인은 이날 읍내에 나가서 옷도 사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라고 용돈을 줍니다.

이 때 하는 백중놀이는 농업인의 여름철 축제로, 경남 ‘밀양백중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돼 있지요.

'칠월에 들어온 머슴이 주인 마누라 속곳 걱정한다'는 속담도 이 속담과 연관이 있습니다. '칠월 머슴'은 머슴살이를 시작하지만 할 일이 없어 주인 마누라 속곳(속옷)까지 걱정한다는 뜻입니다. 자기와 관계 없는 일을 주제넘게 걱정한다는 말이지요.

'미끈유월'이란 말도 있습니다. 폭염에 지쳐 할 일을 미적대다간 한 달이 금방 지나가니 복더위에도 부지런히 일하라는 속담입니다.

'어정칠월'은 '미끈유월'에 이어 오지요. 칠월은 '호미씻이'라고 호미를 고방(庫房·광) 안에 걸어 놓고 '복놀이'를 하는데 어영부영 대다가는 금방 또 한 달이 간다는 채근(採根·캐서 앎)입니다.

호미씻이란 한여름 세벌 김매기가 끝난 후 음력 칠월칠석이나 백중(7월 15일)에 그간 고생한 일꾼들을 하루 쉬게 한 놀이입니다. 김매기를 모두 마쳤으니 호미를 쓸 일이 없다하여 호미씻이라고 불리지요. 백줄놀이 연장선입니다.

'동동팔월'은 추수 시기입니다.

봄철 영농 설계 때는 '작은 벼룩 등에 엄청 규모가 큰 육간대청'을 지을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떠벌이다가 정작 가을겆이철에는 '시러베(실없는 패거리) 장단에 호박국을 끓이는 엉뚱한 짓'으로 발을 동동거리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어정칠월'과 뜻이 같은 '건들칠월'도 있습니다.

음력 7월은 건들바람처럼 어정어정 하는 사이에 획 지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건들팔월'이라고도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어정 칠월'을 표준어로 삼습니다.

참고로 어정과 비슷한 '건들' 단어를 살펴봅니다.

건들은 문화어(북한 표준말)로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는 모양'을 뜻합니다. 표준말에 '건들건들'이 있습니다. '바람이 부드럽게 살랑살랑 부는 모양'입니다. '건들거리다'는 '바람이 부드럽게 살랑살랑 불다'는 뜻입니다.

'건들바람'은 이러한 낱말에서 넘어온 낱말입니다.

아무튼 농촌엔 사계절 제철마다 할 일들이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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