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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속담 순례] '가을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18)

정창현 기자 승인 2023.10.16 12:21 | 최종 수정 2023.10.17 06:17 의견 0

농어업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농축업과 어업과 관련한 속담(俗談)을 찾아 그 속담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알아봅니다. 속담은 민간에 전해지는 짧은 말로 그 속엔 풍자와 비판, 교훈 등을 지니고 있지요. 어떤 생활의 지혜가 담겼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한해 벼농사를 마무리 하는 시기입니다. 이른바 가을걷이를 하는 것이지요.

보통 가을걷이는 벼를 포함한 깨, 콩, 고구마, 고추 등 여러 곡물을 수확하는 것을 뜻하지만 벼 추수를 통칭해 쓰기도 합니다.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기 전 옛날엔 '타작을 한다'고 했지요. 타작(打作)은 도리깨 등으로 곡식의 이삭을 때려서 알곡을 거두는 겁니다.

너무 수확을 늦춰도 알곡들이 땅에 떨어져 소출이 줄게 됩니다. 서리가 내리는 등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에 짧은 기간에 추수를 마쳐야 합니다. 때를 놓치면 동해(凍害)나 참새, 들쥐 등의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팔십 어르신이 옛날처럼 낫으로 다랭이논 벼를 베고 있다. 경남 산청군 제공

농삿일 기계화는 잃은 것도 많습니다.

벼를 베는 모습과 논둑에 볏단을 세우거나 논에 늘어서 말리던 광경은 더 이상 보기 힘듭니다.

당연히 볏짐을 져 나르던 지게나 소달구지, 경운기도 없어졌고 집 마당에서 탈곡을 하던 모습도 못 봅니다. 발로 딛고 돌리던 탈곡기 타작은 더 언감생심입니다. 이를 '족답탈곡기'라고 하네요. 타작하던 날 탈곡 볏단을 옮기며 만들어진 더미에서 장난 치던 동심도 기억 언저리에만 남았습니다.

당연히 낟가리(露積·농촌 집 마당이나 넓은 터에 쌓아두는 곡식단)도 없지요. 요즘은 곤포사일리지(일명 공룡알)이라고 볏짚을 돌돌 말아 소 축사로 이동합니다. 베일러라고 짚을 마는 기계가 합니다.

예전엔 모든 수확을 손으로 해야 했기에 늘 일손이 부족해 밤까지 불을 밝혀가며 타작을 했었지요.

벼가 고개를 숙일 때나 벼를 벨 때 논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메뚜기는 이젠 눈을 씻고 봐도 보기 어렵습니다. 메뚜기를 잡아 잡풀 줄기에 끼우는 재미는 그 자체가 놀이였습니다. 이를 볶으면 고소해 맛있게 먹었지요.

또 입추 무렵에 파종했던 겨울 김장용 무와 배추를 보살펴야 하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상강 무렵엔 보리 파종을 했습니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는 이런 가을 농사철의 바쁨을 잘 담고 있는 속담입니다. 가을 수확철엔 온 식구가 동원되어도 손이 모자라 부엌에서 불을 땔 때 뒤적이는 부지깽이도 한 손 거든다는 뜻입니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뛴다'로 조금 변형돼 씁니다.

수확에 무슨 부지깽이가 필요하겠습니까?

너무 바빠 쓸모없는 것까지 일하러 나선다는 것을 은유한 것이지요.

나무불쏘시개 이미지. 정기홍 기자

벽난로나 캠핑용 쇠부지깽이. 11번가 홈페이지 캡처

비슷한 속담으론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가 있습니다.

신분이 높은 사람도 일손을 거들어야 할 만큼 농촌의 가을이 바쁜 계절임을 강조하는 속담입니다. 오죽하면 ‘가을에는 죽은 송장도 꿈지럭거린다’고 했겠습니까?

요즘은 오래 전 손 모내기를 할 때에 비해 벼의 수확 시기가 40일 정도 빨라졌다고 하네요. 이유는 기계화로 모내는 시기가 앞당겨졌고 콤바인으로 벼를 베는 동시에 탈곡하기 때문입니다. 금방 끝냅니다. 예컨대 10여 명이 매달려 하던 벼 수확을 콤바인 1대가 불과 몇 시간 만에 끝내버립니다.

이어 수확한 벼는 수분을 적당히 없애기 위해 건조기에 넣어 말립니다. 이도 넣어만 놓으면 자동으로 작동합니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와 비슷한 속담은 몇 개 있습니다.

'부지깽이가 곤두선다'는 부지깽이도 누워 있을 틈이 없이 곤두서서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몹시 바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릅니다.

'가을 메(杵)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는 가을에 메는 용도가 많아 부지깽이도 메로 쓰인다는 뜻으로, 어떤 물건이 자주 쓰여 그와 비슷한 것까지 마구 대용됨을 이르는 말입니다.

메(杵)의 음과 뜻은 '공이 저(공이 처)'로 절굿공이나 방망이를 뜻합니다. 공이는 절구나 방아확에 든 물건을 찧거나 빻는 기구입니다.

가을에 못지 않게 봄 모내기철의 부지깽이 관련 속담이 있습니다.

'모내기 철에는 아궁 앞의 부지깽이도 뛴다'는 모내기 철에는 모든 사람이 바쁘게 뛰어다니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늦모내기 때에는 아궁 앞의 부지깽이도 뛴다'도 무슨 일이고 몹시 바쁠 때에는 누구나 다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고 철 늦게 하는 모내기는 되도록 빨리 끝내야 하기 때문에 몹시 바쁘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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