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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5일)은 한식···애잔한 유래

정창현 기자 승인 2024.04.05 12:12 | 최종 수정 2024.04.05 12:24 의견 0

오늘(5일)은 한식(寒食)입니다. 차가울 한(寒)과 밥 식(食)자가 합쳐져 '찬 음식을 먹는 날'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의 고사에서 내려오는 풍습입니다. 오늘은 또 식목일이기도 합니다. 1960~1970년대 식목일엔 사방(砂防)사업이라고 민둥산에 산사태 등을 막기 위해 나무를 많이 심었지요. 오늘 날씨는 맑고 포근해 나무 심기에 좋습니다.

산소 이미지. 정기홍 기자

한식을 알아봅니다.

한식은 절기인 청명(淸明)과 같은 날이거나 하루 다음 날 찾아오고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입니다. 한식은 청명처럼 '절기'가 아니라 '명절'로 삼았습니다. ​다만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로 여겨 풍습을 특별히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청명절이라 해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여겼다고 하네요. 격세지감(隔世之感·변화가 많아 다른 세상과 같은 느낌)을 느낍니다.

한식은 고려시대 때부터 큰 명절로 여겼다고 합니다. 국가에서는 종묘와 경령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관리에게는 3일의 휴가를 주었으며 죄수의 사형을 금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때 발간된 '동국세시기'의 삼월조에는 한식에 대해 "산소에 올라가 제사를 올리는 풍속은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네 명절에 행한다. 술, 과일,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이것을 명절 하례 혹은 절사(節祀)라 한다. 선대부터 내려오는 풍속이 가풍에 따라서 다소간 다르지만 한식과 추석이 성행한다. 까닭에 사방 교외에는 사대부 여인들까지 줄을 지어 끊이지 않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기록은 당시 한식이 큰 명절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한식은 원래 우리의 풍습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와 토착화됐습니다.

춘추시대 제나라에서는 한식을 금연일(禁烟日), 냉절(冷節), 숙식(熟食)으로 불렀습니다.

한식의 유래는 춘추시대의 인물 개자추(介子推)와 관련된 설화와 고대의 개화(改火) 의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개자추 설화에 따르면 '이 날은 풍우(風雨·바람과 비)가 심해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習慣)에서 왔다'고 합니다.

진나라의 문공(文公)이 왕이 된 뒤 왕을 만든 충신들을 포상했는데 충신 개자추가 포상자에 들지 못합니다. 개자추는 문공이 굶주렸을 때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 바쳤을 정도로 충신 중의 충신이었지요. 개자추는 낙담해 산중에 들어가 숨어버립니다. 문공이 뒤에 잘못을 뉘우치고 그를 찾았으나 산중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문공은 불을 놓으면 개자추가 불을 피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불을 질렀지요. 하지만 끝내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를 껴안고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 죽었습니다. 문공은 이에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 날은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후일에 이를 두고 탐천지공(貪天之功), 즉 '하늘의 공을 탐 내 자신의 공인 체 한다'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날은 메일국수를 한식면(寒食麵)으로 부르며 해 먹고 쑥단자, 쑥탕, 쑥떡을 만들어 향긋한 쑥냄새로 봄의 정취를 나누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날 왕실에서는 종묘(宗廟·역대 왕과 왕비 위패 모신 사당)와 각 능원(陵園·왕실 무덤)에 제향(祭享·제사의식) 지내고 관·공리들에게 공가(公暇·공식적인 휴가)를 줘 성묘를 하도록 했습니다. 민간에서는 조상의 산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냈고요. 제사에 앞서 산신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개화(改火) 유래설은 원시시대에 '오래된 불'은 생명력이 없어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여겨 기존 불을 끄고 새불을 피우는 의식을 주기적으로 했답니다. 한식 무렵이 구화(舊火)를 끄고 신화(新火)를 점화하는 과도기 구간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개자추 설화가 그럴 듯하지만 이미 원시 때부터 있어 왔던 개화 의식 관습에서 파생됐다며 개화설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것이든 좋은 풍습이라면 지속 이어야겠지요.

우리나라에서는 한반도 북쪽이 남쪽에 비해 한식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식 날은 청명과 함께 악귀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일명 '손 없는 날'로 여겨 산소에 잔디를 새로 입히거나 비석과 상석을 세우고 이장을 하는 등 산소를 보수하곤 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지상에 있는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라고 여겨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무너져 내린 산소를 돌보거나 이장을 하기 좋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일부 지방에서는 청명에 '내 나무'라고 해 아이가 혼인할 때 농(장농)을 만들어 줄 재목감을 심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날엔 또 쑥떡, 화전, 창면, 화면과 진달래로 빚은 두견주 등의 음식을 마련해 나눠먹었습니다.

한식날 놀이로는 함남 지역의 민요 ‘돈돌날이’ 놀이가 알려져 있습니다.

한식 다음 날 함남 북청 지방의 부녀자들이 강가나 모래산 기슭에 모여 달래를 캐고, 오후가 되면 ‘돈돌날이’를 비롯해 20여 개의 민요를 번갈아 부르며 춤을 추며 놉니다. 함남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북청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언젠가는 잘 살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이 민요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땅이 다시 우리의 손에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해석해 항일 성격의 민요로 인식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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