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인천 지하주차장 화재로 본 긴급 점검] 늘어나는 전기차 화재···지하 전기충전시설 의무화 없애야

정기홍 기자 승인 2024.08.07 11:55 | 최종 수정 2024.08.10 12:49 의견 0

전기차 화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불의 원인이 배터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하지만 보다 정확한 화인(火因)은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4일 인천 아파트단지에선 사흘 전 주차해놓고 충전 중이지도 않은 벤츠 전기차(EQE350)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미스터리에 갑론을박이 오가고 경찰 국과수 감식 등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두껑 보고도 놀란다'고 5일에는 서울 건물 지하에 주차된 하이브리드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며 100여명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민들은 전기차 공포에 노출돼 있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전기차는 지하에 주차 말라"는 민원이 쇄도하고 있고, 일부 아파트단지에선 "주차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고 있다. 전기차 주차 문제로 주민 간에 멱살잡이를 한 곳도 있다.

지난 2021년 11월 충주 호암동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충전 중이던 SM3 전기차에 불이 난 모습. 충주소방서 제공

기자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우려 말을 들어왔다.

농축업에 종사하는 한 지인이 커피숍에서 만나는 주민들 간에 말이 돈다며 법을 빨리 개정해 아파트 지하에 전기차 주차를 못 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큰일'이란 생각에 취재를 시작했지만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아다시피 전기차에 장착된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불이 나면 끄기 어렵다는 것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취재를 잠시 멈추고 지냈는데 이번에 인천에서 큰 전기차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이 지인은 당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이 걸린 이런 일은 하지 않고, 맨날 싸움질만 해댄다"며 국회를 엄청 욕했다.

국회는 지금까지 반응이 없다.

하기야 프랑스 파리에서 저렇게 호성적을 거두고 있는 MZ 세대에게 잘 싸웠다고 박수 치는 의원이 없단다. 젊은 선수들이 내뱉는 말은 '여의도 어법'에 짜중만 나던 머리가 오랜만에 맑아지고 있다. 젊은이가 훨씬 낫다. 양궁 3관왕 김우진은 "오늘 딴 메달은 과거"라며 우쭐대지 마라고 했다.

전기차는 테슬라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과 우리의 현대차와 기아가 만들어낸다.

과연 의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까. 아니 달려고 나설까? 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당분간 못 나설 것 같은 우려가 와닿는다. 국회의 그동안 행태를 보면 전치차 불로 아파트가 쑥대밭이 돼 인명 피해가 여럿이 나야 입법화에 나설 것이다.

대기업의 정치권에 대한 로비력은 대단하다. 기자가 알던 대기업 대관 업무 담당자는 어느 날 기자에게 15년 정도 대관일을 하면서 20억 원 이상은 썼다고 했다.

전기차 화재 사고는 이처럼 제조사와 보험사, 정치권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말이 시중의 여론이다. 벌써 전기차 제조사들은 '국회 로비'에 진력할 것으로 짐작된다.

전국의 전기차는 60만 7000대에 이른다.

▶전기차 화재 사례

지난 8월 1일 오전 인천시 서구 청라동의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메르세데스 벤츠 EQE 350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 8시간 20분 만에 진화됐다. 이 차량은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 당국은 고열과 다량의 연기 분출로 진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지하주차장 진입 어려움은 물론 호스로 뿌려대는 물로는 끌 수 없었다. 당연히 아파트에 물을 담은 수조(水槽·물을 담아 두는 큰 통)가 있을 리 없다.

이 화재로 차량 140대가 불탔고 주차장 내부의 전기 설비와 수도 배관이 불타 5개동 480여 가구의 전기와 물이 끊겼다. 사고 당시 화염으로 지하 주차장 내부의 온도가 1500도까지 치솟으면서 전기 설비와 수도 배관 등이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완전히 불에 탄 피해 차량은 40대이고, 100대는 열손과 그을림 피해를 입었다.

기자는 전기차 화재의 심각성을 말핼 때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일반 화재처럼 끄면 되겠지 했다. 하지만 일반 화재완 완전히 결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전기차 화재의 발화점으로 지목된 이 차량은 3일 가까이 운행을 하지 않고 주차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 서부경찰서가 이 지하 주차장 CCTV 등을 살핀 결과 이 전기차 40대 차주는 지난달 29일 오후 7시 16분쯤 차를 일반차량 주차구역에 세워둔 장면을 확인했다.

차에서 불이 난 시점은 지난 1일 오전 6시 15분쯤으로 주차 59시간이 지난 뒤 불이 났다. 차량에 외부적인 충격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 당시 CCTV 영상에는 지하주차장에 있던 사고 차량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다가 폭발과 함께 불길이 치솟는 모습이 담겼다.

소방 관계자는 “화재 당시 해당 전기차는 충전 구역이 아닌 일반 주차 구역에 주차 중이었다”고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화재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진행 중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불이 나면 무려 1500도까지 온도가 올라간다.

아파트 건물을 지지 하는 기둥과 보는 이미 내구성과 강도가 급격하게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 전문가들은 내부 철근은 온도에 의해 늘어났을 것이고 콘크리트 강도는 설계기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즉시 보수 보강 공사를 해야 붕괴 등 또다른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부산 연제구의 한 도로에서 가게를 들이받은 전기차 택시에서 불이 나자 근처를 지나던 시민이 택시기사를 구하고 있다. 부산경찰청 제공

▶인천 전기차 화재 미스터리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전기차 화재는 화재 발생 사흘 전부터 계속 주차 중이었다는 점에서 화재 원인이 의문으로 남는다.

전기차 전문가들은 "전기차 배터리 내부에서 분리막이 손상된 경우 운행이나 충전 중이 아니더라도 불이 날 수 있다"고 추측했다.

또 화재 당시 이 전기차는 충전구역이 아닌 일반주차구역에 주차 중이었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한 언론에서 "배터리 덴드라이트(dendrite)에 의한 '단락(短絡·합선)'이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덴드라이트란 배터리 내부 물질인 리튬 중 일부가 급속 충전을 자주 하는 등의 원인으로 음극 표면에 쌓여 만들어지는 나뭇가지 모양의 결정체다.

차량이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도 리튬이나 불순물이 이동해 결정체가 서서히 자라면서 배터리 분리막에 구멍을 내면 만나지 말아야 할 양극과 음극이 만나면서 합선이 발생하고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선 교수는 "국내 업체들은 덴드라이트 문제를 어느 정도 개선해 왔지만, 중국은 삼원계 배터리 후발 주자로 한국보다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에 불이 난 벤츠 전기차(EQE350)에는 중국 CATL이 삼원계 배터리인 NCM(니켈·코발트·망간) 811 배터리를 공급하고, 다른 중국 업체 파라시스도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NCM 811 배터리는 니켈 80%, 코발트 10%, 망간 10%가 탑재되는 하이니켈 배터리다. 니켈 비율이 높으면 더 많은 전기 에너지를 충전해 주행거리가 길어진다. 다만 화학적 구조가 불안정해 충격이나 고온 상황에서 열 폭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단점이 있다.

다른 전문가들은 전기차 배터리 내 분리막 손상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배터리에 과도한 열이나 물리적 충격이 가해져 분리막이 손상되고 양극재와 음극재가 직접 만나 화재나 폭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도 언론 인터뷰에서 “화재가 난 차량이 주행 중에 배터리가 탑재된 하부가 충격을 받고, 이 때문에 배터리 내부 분리막이 손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 배터리 업체 연구원은 "완충된 상태에서 충전기를 빼고 이후에 12시간이나 하루가 지난 이후에 불이 나는 경우가 가끔 있기는 하다"며 "그동안 과충전 등 누적된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더운 여름 날씨와 결합해 단락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차량이 갑자기 폭발한 것이 '각형 배터리' 화재 양상을 보인다는 분석도 나왔다.

CATL의 NCM 811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만드는 파우치 형태와는 다른 각형 배터리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사각 형태의 금속 캔으로 감싼 각형 배터리는 단단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높지만 캔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해 열과 압력이 한도 이상 높아지면 폭발하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불안한 주민들

'전기차 지하주차·충전 금지합니다'

최근 전기차 화재 우려가 커지면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지하 주차장 내 전기차 주차·충전 시설 제한에 나섰다. 지상 주차장보다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하는 전기차 화재는 인명·재산 피해가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안전상의 이유에서다.

지난 4일 인천 청라지구 아파트단지 지하 주차장에 사흘 전에 주차해둔 벤츠 전기차(EQE350)에서화재가 발생하는 순간 장면. CCTV 영상

서울의 500가구 규모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자대표회의는 인천 전기차 화재 직후 전기차 지하 주차장 출입금지를 결의했다. 이에 따라 지하 충전 설비를 철거해 지상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서울 은평구 아파트단지에서는 지하 1~3층에 있는 전기차 충전 구역을 지하 1층 입구와 지상으로 옮기고 전기차는 당분간 주차장 주차 등록을 받지 않기로 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지난 2일 주민 40여 명이 앉아 ‘전기차를 지상에만 주차하도록 하자’는 안건을 놓고 긴급 주민 회의가 열렸지만 주민끼리 멱살잡이까지 하는 상황만 보인채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카오톡 단톡방에는 이미 입주민 간 아파트 내 지하 전기차 충전구역을 지상이나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방안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인천과 같은 사고가 언제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차 차주들은 "우릴 범죄자 취급한다"며 다른 입주자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전기차 주차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전기차 차주 주민들 간에 갈등을 빚고 있다.

전기차 차주들은 "정부에서 보조금까지 줘가며 친환경차로 전기차를 보급했다"며 예비 범죄자로 보는 것에 상당히 언짢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지은 아파트 단지들의 고민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단지 지하에 통으로 대형 주차장을 만들어 지상엔 잔디 등을 심어 주차 공간을 거의 두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지상 주차장을 만들 땅이 없어 지상 전기차 주차 공간을 마련할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곳이 태반이다.

▶ 전기차 증가 일로, 화재도 덩달아 잦아

전기차 화재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160건이었다. 2018년 3건에서 2019년 7건,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2건으로 늘었다.

이 중 아파트를 포함한 다중이용시설의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2018년엔 단 한 것도 없다가 지난해 10건으로 늘었다. 전체 화제 건수는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2018년 3건에서 지난해 72건까지 늘어나는 등 뚜렷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화재보험협회 등에 따르면 전기차량 화재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옥외에 전기차 충전 시설을 마련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전기차 관련 제도적 허점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의 전기차 주차 및 충전시설 설치는 의무 사항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21년 6월 시행한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른 규정이다.

따라서 100가구 이상 신축 공동주택은 주차 대수 5% 이상, 2022년 1월 28일 이전 건축허가를 받은 아파트는 공간 2% 이상 범위로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 자동차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해야 한다.

다만 지상이나 지하 설치는 따로 정하지 않았다. 입주민 의결에 따라 지상주차장 또는 별도의 공간에 설치할 수 있다.

이에 지하주차·충전 시설에 대한 우려는 지속 제기돼왔다.

앞서 올해 초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는 아파트입주민 투표를 통해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출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에 있던 전기차 충전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지상에 새로 설치하기도 했다.

소방 당국도 전기차 충전시설의 지상 설치를 권고하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관련 조례 개정안까지 발의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면 위험성이 더 커질 우려가 있다. 지하 주차장의 구조적 특성상 화재 진압이 까다롭고 유독가스 등 화재 연기 배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 화재는 '열폭주' 현상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으론 진화가 어렵다.

한번 불이 나면 전기차 배터리가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순식간에 온도가 용광로에 버금가는 1000도 이상 올라간다. 일반 분말소화기를 사용하더라도 소화분말이 리튬배터리 내부까지 미치지 못해 냉각효과도 거의 없다.

▶화재 대처법

전기차는 불이 나면 불을 끄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금으로선 수조에 담궈서 끄는 것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런 진화용 수조를 구비해 놓은 곳은 거의 없다. 인천시의 경우 등록된 전기차만 4만 3천 대가 넘는데 진화용 수조는 딱 한 개다.

등록 대수 대비 화재 발생 비율은 전기차와 내연기관차가 비슷하지만 진화는 전기차가 훨씬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방관들이 쉴 새 없이 호스 물을 뿌려도 불을 쉽사리 잡을 수 없다.

전기차는 배터리가 젖는 걸 막기 위해 방수 처리를 해놓는 데다 국내 전기차에 주로 쓰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우 불이 나면 불과 2~3분 안에 1000도 가까이 열이 올라가는 '열폭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선양국 한양대 교수는 "전해질이 원료이고 양극재에서 산소가 나온다. 리튬을 먹여 놓은 음극 탄소재료에도 불이 잘 붙는다. 이런 것들이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확 붙는다"고 말했다.

최근엔 불이 난 전기차에 공기 차단용 덮개를 씌운 뒤 주변에 수조를 설치해 침수시키는 진화법이 도입됐다.

하지만 전국 소방서에 보급된 진화용 수조는 아직 200여 개밖에 안 된다. 이마저도 수조를 설치하기 어려운 곳이나 대형 차량 화재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다양한 진화 장비를 개발할 필요가 있고, 표준화 규정을 만들어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더경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