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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하는 말 되짚어보기] "단풍 구경 원 없이 했네"···'원 없이'가 무슨 뜻?

정기홍 기자 승인 2024.11.17 20:00 | 최종 수정 2024.11.17 22:09 의견 0

더경남뉴스가 일상에서 무심코, 대충 넘기는 말을 찾아 그 정확한 뜻을 짚어보겠습니다. 제대로 된 언어 생활은 일상을 편하게 하고, 말도 줄이면 매우 경제적입니다. 말에 두서가 없어 말이 많아지면 기(氣)를 쇠하게 한다고도 합니다. 좋은 제보도 기다립니다. 한글 세대인 젊은층을 위한 코너이기도 합니다. 편집자 주

"단풍 구경 원 없이 했네", "오늘 소고기 원 없이 뭇다(먹었다)", "원 없이 살다가 가면 좋겠다"

이들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고 듣습니다. '원 없이'라니요?

뜻이 '더 이상 원하는 것 없이'라고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함께 알아보시지요.

'원 없이'의 원형은 '원 없다'입니다. 여기에서의 원은 한자 '원(怨)'입니다. 원망할 원(怨)입니다. 의외라고 생각할 분이 있을 겁니다.

따라서 '원 없이'를 풀이하면 '원망 없이'가 됩니다. 뒤끝이 있는 '원한 없이?'와는 뜻 차이가 있습니다.

'원 없이'의 사전의 의미는 '못마땅하게 여겨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입니다.

원망(怨望)은 '못마땅하게 여겨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함'을 뜻하고 원망(怨恨)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이니 의미가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 없이'란 말을 쓸 때 어감상 대체로 '한정 없이', '원하는 만큼' 등으로 느낍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원 없이'는 '원망할 마음(이유) 없이'가 정확한 뜻입니다.

용례를 다시 살펴 보면 ▲'구경을 원 없이 했네'는 '구경을 원망할 것 없을 정도로 실컷 했네' ▲'그분 원 없이 살다 갔네'는 '그분 원망할 것 없이 풍족하게, 만족하게 살다 갔네' 등입니다.

누군가가 "그분 원 없이 살다 갔네"라고 말하면 보통 '원하는 만큼' 살다가 간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잘못된 해석입니다. 남을 원망하지 않을 만큼 살아 갔다는 의미이겠지요.

달리 말하면 못 풀고 남은 원한의 뜻인 '여한(餘恨) 없이'와 비슷합니다.

부모님이 '너희들 잘 사는 것 보니 난 더 이상 원 없다'라고 했다면 '원망할 것이 없을 정도로 잘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원하는 것 없다'로도 통하지만 '원 없다'란 말에 충실하자면 곁가지가 되겠지요.

대다수의 분들이 어감상의 고정 관념에 '원 없이'를 잘못 해석합니다. 뜻을 헤아려보곤 뜻밖이라고 할 독자분도 있겠지만 지금부터 뜻을 알고 쓰고 들으면 언어 생활이 윤택해지겠지요.

이 글을 지인한테 보여주며 뜻을 물었더니 바로 '후회 없이'가 아니냐고 하더군요. 누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자가 '원망할 원'이라고 일러주니 "무서운 단어네"라고 하더군요.

'원 없이'는 '한정 없이'도, '원하는 만큼'도, '후회 없이'도 아닌 '원망 없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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