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비롯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 현수막 문구 논쟁이 벌어졌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수영구에 달려던 현수막 문구 "그래도 이재명은 안됩니다"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게시를 불허했다.
이 문구가 대선 출마가 유력시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낙선운동 성격을 담고 있다는 것이 선관위의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선관위가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편파적 판단을 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앞서 조국혁신당은 지난 11일부터 이 지역에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 불참 정연욱도 내란공범이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걸었다.
이어 정 의원은 맞불로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란 현수막을 걸기로 하고 국회에 파견된 선관위 협력관에게 사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담당 부서의 해석과 심의를 거쳐 불허 통보를 했다.
선관위는 ‘안 됩니다’ 문구를 사용할 경우 공직선거법 254조 선거운동기간위반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 조항은 선거운동 기간 전에 선거법이 허용하는 범위 밖에서 각종 인쇄물 등 매체를 활용해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선관위가 정 의원의 현수막 문구를 사실상 선거운동으로 본 것이다.
즉 정 의원의 현수막은 조기 대선 가능성을 고려해 이 대표의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았고, 조국혁신당의 현수막은 총선이 3년 이상 남아 사전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선관위는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됐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봤을 때는 대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어서 정치적 구호는 직접적인 선거운동에 이르지 않기 때문에 제한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선관위는 ‘내란공범’이나 ‘재명아 감방 가자’, ‘이재명을 구속하라’ 등의 문구는 선거운동이 아닌 단순 정치구호에 해당돼 제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선관위가 정치 중립을 위반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정 의원 측은 “문구상 ‘안 됩니다’의 의미를 선관위가 공식 문의한 적이 없다”며 “‘정치를 하면 안 된다’ 등 다의적 의미로 지역민들에게 해석을 맡긴 것인데 선관위는 ‘조기 대선에 나가면 안 된다’로 해석해 정치적 판단을 했다”고 지젇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아직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는데 선관위가 무슨 권한으로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을 전제해 결정했나”며 “선관위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유죄 판결이 확정돼 출마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상정하지 않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주잩했다. 그는 “선관위에 엄중히 경고하고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서지영 원내대변인도 “선관위가 이 대표를 민주당 후보로 미리 확정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공격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도 페이스북에 “탄핵소추에 관한 헌재 결정에 대해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선관위가 ‘탄핵 인용’이라는 결과뿐 아니라 ‘민주당 후보는 이재명’이라고 기정사실화하는 가장 편파적 예단을 하고 있다”며 “이러니까 선관위가 ‘부정선거’ 의심을 받는다”고 직격했다.
선관위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선관위는 지난 2020년 4월 총선 이틀 전까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을 향한 민주당의 ‘100년 친일(親日) 청산 투표로 심판하자’ 문구를 허용했지만, 미래통합당이 쓰려던 ‘민생 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라는 문구는 당시 문재인 정권을 연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허용하지 않았다.
또 2021년 4·7 보궐선거 때도 TBS(교통방송)의 ‘#1합시다’ 캠페인이 기호 1번 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선관위는 문제 삼지 않았다. 더불어 ‘내로남불’, ‘위선’, ‘무능’ 단어가 특정 정당(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며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선관위는 이 외에도 2022년 대선 때 소쿠리투표 소동으로 불법 선거 논란을 자초했다.
지난해에는 장관급인 사무국장과 차관급인 사무차장 등 최고위직은 물론 중간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이 무더기로 밝혀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한편 선관위는 이중 잣대 논란이 커지자 23일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 주재로 전체회의를 열고 현수막 표현에 대해 재논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