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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어에서 찾는 생활의 지혜] 과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배반낭자(杯盤狼藉)'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4.30 13:08 | 최종 수정 2023.04.30 15:42 의견 0

배반낭자(杯盤狼藉)는 평소 잘 쓰는 사자성어가 아닙니다. 하지만 전하는 뜻은 깊습니다.

의미는 '술잔과 그릇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술을 흥겹게 마시고 노는 모양 또는 술자리가 끝난 후의 난잡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한자는 잔 배(杯), 쟁반 반(盤), 어지러울 낭(狼), 어지러울 자(藉)입니다. 한자 자체마저도 어렵네요. 하지만 흥청망청한 술이 실수 등으로 배반한다든가 연회장에 아릿다운 낭자가 있다는 등으로 연결시키면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것도 같습니다.

단절의 시대 상징인 코로나 시대 식당. 불과 1년여 전 우리의 모습이다.

다음은 중국의 역사책인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유명한 해학가 순우곤은 언변, 말재주가 뛰어나 여러 차례 사신으로 파견되었지만 비굴한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요.

어느 날 제나라는 초(楚)나라의 침략을 불시에 받습니다. 급한 제나라 위왕(威王)은 이웃 조(趙)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순우곤을 파견합니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잘 읽는 순우곤이 조나라 왕을 꾀어 병사 10만 명과 전차 1000승(乘)을 이끌고 제나라로 돌아오자 이를 본 초나라 병사들은 겁에 질려 밤을 이용해 꽁무니를 빼버립니다.

위왕은 나라의 큰 위기를 모면하자 순우곤을 위해 축하연을 베풀지요. 술자리란 게 거나하게 취하고 흥청망청하게 되지만 판이 좀 심했나 봅니다.

이 술자리에서 손우곤이 위왕에게 말합니다.

순우곤이 “날이 저물어 술도 거의 떨어지고 취흥이 돌면서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서로의 신발이 뒤섞이며 술잔과 그릇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고 넌지시 조언합니다. 여기서 나온 게 사자성어 배반낭자(杯盤狼藉)입니다.

또한 지혜로운 순우곤은 주색을 겸비한 위왕에게 간접적으로 다음과 같이 간(諫)합니다.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퍼지는데 만사가 모두 그와 같습니다[酒極則亂 樂極則悲 萬事盡然].” 달도 차면 기울고 나라의 운세도 같다는 말이지요.

이말을 들은 위왕은 순우곤의 진솔하고 충직함을 깨닫고 밤새 주연을 삼갔다고 하며, 순우곤을 제후의 주객(主客·외국사신 접대 관리의 우두머리)으로 삼아 왕실에서 주연을 베풀 때는 꼭 곁에 두고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오늘날 인사불성으로 과하게 술을 마셔 몸과 마음을 해치는 경우가 많지요. 이를 경계하는 의미에서 배반낭자라는 고사성어가 주는 의미는 넘다릅니다.

우리 인류는 옛날 말로 역병인 코로나19란 전염병으로 너무나 큰 재앙을 치렀습니다. 무려 3년에 가까운 시절을 만남이 단절된채 지냈습니다. 저녁 9시면 집으로 가야 하고 하루 종일 얼굴을 숨긴채 마주보고 말도 제대로 못붙였지요. 배반낭자는 오랫동안 물질만능에, 밤낮없이 흥청망청 산데 대한 경종의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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