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자 부산의 한 유력 일간지가 민선 8기 부산시 구·군청의 구·군보(구·군청 발행 홍보지)와 관련한 기사를 내면서 "구청장을 '아이돌 스타'로 포장한 구청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반면 "구청장 이름은 빼라"고 한 곳도 있다며 대비를 시켰습니다.
부산 지역은 물론 전국의 시·군·구청은 거의 시보(시청)나 군보(군청), 구보(구청)를 발행합니다. 보통 한달에 한번씩 타블로이드판으로 수개 면에서 십수개 면을 냅니다.
이 매체가 부산의 16개 구·군이 최근 발행한 7월호 구·군보 내용을 확인했더니 대부분 1, 2개 면을 할애해 신임 구청장의 취임사, 주요 공약, 인터뷰 등을 다뤘습니다.
가장 눈살을 찌푸리게 한 A구의 구보는 1면 머리기사에 구청장 취임식을 다뤘고 취임 첫날 동행취재한 내용을 3면에 담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기사는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따봉’을 외치거나 그의 손을 덥석 잡고 스스럼없이 포옹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새벽 거리에서 그의 인기는 아이돌스타가 부럽지 않았다”고 했다고 전합니다. 부제에서는 ‘주민에게 이미 아이돌스타’라고 한 번 더 강조했다고 합니다.
어느 구에서는 재선 구청장인데도 8면 중 특집면까지 3개면에다 구청장의 치적을 알렸다고 합니다.
굳이 이런 현상은 부산시 기초단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방자치제가 30년 세월을 쌓았는데도 과잉홍보는 여전합니다. 적극적으로 하는 홍보는 두말이 필요 없이 좋습니다. 하지만 전혀 분위기에 맞지 않는, '어거지성 홍보'를 하는 빈도가 꽤 높습니다.
요즘 사회 분야마다 각자의 베테랑 노하우를 가진 사람은 부지기수이지요. 구청장, 시장만큼 배우지 않은 사람 없고, 시·군·구보를 만드는 공무원들보다 사회 인식이 못한 사람이 거의 없는 요즘입니다.
문제는 이런 시민들의 의식 수준에 비해, 멋 모르고 오버 하는 관계자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기초단체장이 인사권을 가진 '만인지상'이라 과잉충성을 하는 사례가 많고, 덮고 가리려는 내용이 적지 않지요. 대부분의 시민들로선 불쾌한 일이지만, 혀만 차고선 지나칩니다.
반면 부산의 두 구청은 지면에서 구청장의 노출을 최대한 줄였다고 하네요.
B구의 구보에는 구청장 이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고, 사진도 얼굴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행사사진 1장이 유일하답니다. B구의 관계자는 “구청장이 구보에 자신의 이름을 빼고 대신 구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더 담으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했답니다.
낯뜨거울 정도로 단체장을 포장한 곳이 있는가 하면 단체장 이름 자체를 아예 뺀 곳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경남 진주시의 사례를 살펴봅니다.
저희 매체는 2월 초에 창간했으니 그 이후를 보겠습니다. 6월 1일이 지방선거일이었는데 보도자료 맨 끝에는 진주시장 이름을 댄 멘트가 항시 있었습니다. 기사에 첨부된 사진도 시장의 사진이 부지기수였지요.
선거를 한달 가량 남겨둔 시점에서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보도자료 마지막에 <조규일 진주시장은 "~~~"라고 말했다>는 의례적인 멘트가 선거일을 한달 여 앞두곤 <진주시 관계자는 "~~~"라고 말했다>로 바뀝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 조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자 곧바로 멘트 주체가 <조규일 시장은 "~~"라고 말했다>로 바뀝니다. 철저히 계산된 행위이지요.
더한 것은 건물 개장이나 서비스 시작 등의 행사들에서 시장의 얼굴 사진이 자꾸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지난달 경남에서 처음으로 진주 중앙지하도상가(에나몰)에 개장한다는 e-스포츠센터 기사에 달린 몇 장의 사진은 온통 조 시장 얼굴만 도드라져 있지, 경남에서 처음 보는 센터의 내부 모습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물놀이장을 개장하는데 시민들은 어떤 시설이 들어서 있는지가 궁금하지,시장 얼굴을 봐야할 이유는 없겠지요.
위의 e-스포츠 커뮤니티센터 앞의 사진은 시장 얼굴만 도드라지게 하려고 찍은 사진입니다. 독자들은 무엇을 찍은 건지 사진설명이 없으면 도통 알 길이 없지요. 밑의 사진은 본지가 이를 지적한 한참 뒤 'e-스포츠 대회 경남대표 선발전 진주서 열린다'는 기사 관련 사진인데 독자들은 센터의 내부를 대체로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조 시장이 KBS 드라마 '징크스의 여인'을 찍은 진주중앙시장에 간 사진입니다. 그는 이날 생선도 사고 그랬습니다. 어린애들 동원 등 사전 준비가 있었지만 큰 무리감은 없는 홍보 이벤트입니다. 단체장 홍보 사진은 이럴 때 내는 것이지요.
이처럼 기초단체로선 단체장을 홍보할 틀은 참 많습니다. 축사를 한다든지, 재해 취약지에 가서 지적을 한다든지, 주민과 환담을 한다든지 다양합니다.
최근 들어 지자체의 단체장 홍보가 도를 넘어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어떤 땐 홍보 라인의 정체성과 사리 판단 능력이 의심되는 경우를 많이 접합니다.
보도자료 '열에 여덟'은 단체장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옵니다. 기사 분위기도 모른채 홍수처럼 내놓는 홍보 사진은 안 하니만 못합니다.
실제 홍보 효과가 이들의 '딸랑이 열성' 만큼 대단할까요? 노출 대비 가성비는 어느 정도일까요? 비웃음만 나올지 모릅니다.
기초단체의 관계자들이 지레 단체장에게 충성하기 위해서이지 설마 백주대낮에 주민을 상대로 '옛날 영화관 대한늬우스식 홍보'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지자체장도 "요즘 왜 내 얼굴이 언론에 나오지 않느냐"고 담당자를 구박하진 않을 겁니다. 되레 단체장 본인도 어거지성 기사나 사진을 보면 낮이 많이 간지럽겠지요. 이를 인식하지 못 한다면 표심으로 뽑힌 단체장으로선 함량 미달, 자격 미달입니다.
진심일지는 모르지만 설령 쇼라고 할 지라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홍보를 잘 하는 곳이 있습니다. 경남 의령군수의 경우 군수가 재선 직후 취임 준비보다 가뭄부터 챙기자며 현장을 바로 달려갔고, 경남 산청군수는 언제나 수수한 차림으로 현장에 나가 주민들을 만나는 보도자료와 사진이 많더군요.
시민단체들은 시·군·구보가 단체장 홍보지로 전락했다고 지적합니다. 오래 전부터 나오는 비판이지요. 단체장을 과도하게 미화하거나 분위기에 맞지 않는 표현과 사진은 주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부산경실련 도한영 사무처장은 “구보에 구청장을 과도한 표현으로 포장하거나 공약일지라도 30% 이상 지면에 배치하는 건 문제가 있다. 정작 구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담을 공간이 부족해진다”고 지적했네요.
젊잖은 척 정장에 넥타이 매고 현장 가서 사진 찍은 일은 결코 단체장의 제일 덕목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