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본관은 어디인고?" "관향은?"
어르신 앞에 앉으면 으레 성을 묻고선 던지는 말이다. 머뭇거리면 "자네, 고향은 어디인고?"라고 한다. 이어 고향 말이 나오면 상대 어르신은 속으로 "가정교육이 덜된 집안이일세"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어르신이 '고향'을 묻는 것도 그냥 던지는 말이 아니라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옛날에는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집성촌이 많아 어르신으로선 고향을 알면 금방 마을과 집안의 여러 가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동네엔 0씨가 많이 살제"하며 특정인을 언급하고선 대충 알았다는 듯이 마무리한다.
젊은 사람들은 "왜 첨단을 걷는 21세기에 기를 쓰고 구닥다리같은 본관을 말하지?"라며 반항기를 도발하곤 한다. 기자도 젊은 시절엔 그랬다.
기자의 선친께서 어릴 때 "무슨 파에 몇대 손"이란 말을 숱하게 했다. 그때마다 듣기 싫어 슬그머니 자리를 떠곤 했다. 30대까지는 동년배 간에 자주 쓰는 말도 아니어서 무던하게 넘어갔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묵직해지는 중년이 되니 이를 주고 받는 일은 자주 생겼다.
"그때 좀 더 세심하게 들어놓을 걸"
그래도 돌아가신 선친의 집요한 언급 덕분에 상대방이 "무슨 파, 몇대 손?"이라며 말을 걸면 '핑비총알'같이 대답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참고로 핑비는 팽이의 진주 지방 사투리다. '핑비총알 겉다'란 '팽이처럼 잘 돌고 총알같이 빠르다'는 의미로, 신속한 사람이나 일을 비유적으로 쓴다.
하지만 집안의 가업과 전통은 후대들에게 자주 들려주어야 한다. 어릴 때 들은 한마디의 말과 아무렇지 않았던 경험은 평생 따라다니면서 한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끼친다.
이 글의 본론인 본관과 관향 그리고 고향의 뜻을 알아보자.
본관(本貫)은 시조 할아버지가 성씨(姓氏)를 갖고 자손을 퍼뜨린 곳이다.
'김해 김씨'라고 하면 경남 김해가 본관이다. 진주(진양) 정씨하면 진주가 본관이다. 이른바 생산물의 원산지인 셈이다.
어렵지만 옛날엔 가문간(家門間·집안 간)에 편지를 주고 받을 때 '모관후인(某貫後人)'이라며 반드시 본관을 밝혔다. 요즘도 쓰는 분들이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진주 정씨의 경우 '晉州後人(진주후인)'이라고 쓴다.
관향(貫鄕)은 윗대 조상들이 한 곳에서 누대(累代·여러 대)에 걸쳐 살아온 동네를 말한다.
태어나 자라고 ,일가친척이 있고, 선산(先山)도 있다. 시제(時祭)도 이곳에서 뫼신다. 뫼시다는 모시다의 옛말이다.
따라서 대체로 관향은 본관보다 더 오래 살아온 곳이다. 사회 생활이 다양화 되면서 시조가 있는 지역을 떠나 사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진주 정씨들이 진주에서만 살지 않고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로 흩어져 사는 게 요즘 실상이다.
또한 관향은 그동안 이력서에 출생지를 기입할 때 활용해왔지만 요즘은 자기 자신이 태어난 지역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고향(故鄕)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 또는 자기 조상이 오래 누리며 살던 곳이란 풀이처럼 보다 넓은 의미로 쓰인다.
어려운 단어들이지만 고향의 다른 말은 고구(故丘), 고리(故里), 고산(故山), 고원(故園), 관산(關山), 구향(舊鄕), 향관(鄕關) 등이 있다.
■ 다음은 정지용 시인의 시 '고향'(원본)입니다. 고향 한번 그려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