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경남뉴스는 일상에서 소소해 지나치는 궁금한 것들을 찾아 이를 흥미롭게 설명하는 코너를 마련합니다. 유레카(eureka)는 '알았다!'라는 뜻입니다.
경남 함양군에서 다음달 말 연암문화제를 연다는 함양군의 보도자료를 보고 '연암'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왜 연암이란 이름의 문화제가 함양에서 열릴까 하는 궁금증이 슬슬 다가서더군요.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호 연암(蓮庵)과 조선시대 박지원의 호 연암(燕巖)이 우선 스챴습니다. 한글로는 같지만 구 창업주의 호는 락희화학(현 LG화학)이 창업한 부산 부산진구 연지동(蓮池洞)의 연에서 따왔고, 박지원의 호는 그가 정치적 풍파를 겪을 때 은거했던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燕巖峽)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찾아보니 조선시대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써 유명한 박지원이 함양과 연결 되고, 뜻밖에 물레방아의 발원지가 함양군 안의면 안심마을이란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참고로 열하일기는 조선 정조 4년(1780년) 연암 박지원이 중국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 하는 사절로 청나라에 가 보고 들은 것을 적은 여행기(춘추전국시대 연나라 수도 연경(燕京)에서 건륭제의 여름 별장지인 열하까지)입니다. 당시 지금의 미국처럼 중국은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지요.
함양군에 따르면, 이 물레방아는 연암 박지원이 안의현감으로 있을 때(1792~1796년) 열하일기를 토대로 안심마을에 설치했다네요. 설치됐던 위치는 모른답니다.
그가 안의현감을 떠난 40년 후인 1836년, 안의면을 흐르는 남강 지류 지우천의 합수부(물이 합쳐지는 곳)에 정연상이란 사람이 물레방아 방앗간을 운영했다네요. 이후 정연덕 씨가 이어 받아 운영을 했는데 1936년(병자년) 큰 홍수에 떠내려가 물레방아와 확이 하천에 수몰됐답니다.
확은 방아의 공이로 찧을 수 있게 돌절구 모양으로 우묵하게 판 돌입니다.
그로부터 51년 후인 1987년 이곳 대지초교의 윤완호 선생이 지난 흔적을 더듬어 정연덕 씨의 손자인 정이균 씨의 동의 아래 냇가 바닥 속을 파뒤져 돌로 된 학을 출토했습니다. 이를 윤한호 선생(대지초교 교장 역임)의 아들인 윤창술(경상국립대 교수) 씨가 함양 본가에서 보관하다가 2015년 8월 1일 함양군에 기증을 했다네요.
이 확은 화강석이며 크기는 지름이 안쪽 60cm·바깥쪽 80cm, 높이는 100cm입니다.
그동안 선친의 뜻을 이어 확을 관리해온 윤완호 선생의 장남 윤명술 씨는 당시 "이 확이 발견된 곳이 1836년부터 정연상 씨가 물레방앗간을 운영해오던 자리인 점과 그의 아들 정연덕 씨가 운영해오다 1936년 병자년 홍수로 물레방앗간이 떠내려간 점, 그 자리에 돌이 수몰돼 있다가 발견된 점을 미뤄 박지원 선생이 만든 확으로 추정된다"고 말했습니다.
함양에서는 8월 말에 연암 박지원의 호를 붙인 연암함양문화제가 열립니다. 물레방아를 함양에 처음 설치한 의미도 담았습니다.
물레방아는 두메산골 정취가 물씬 와닿는 물건입니다.
큰 나무바퀴와 굴대에 공이를 장치해 쏟아지는 물이 나무바퀴를 돌리면 굴대에 꿴 넓적한 나무가 방아채의 한 끝을 눌러 번쩍 들어올렸다가 떨어뜨리면 그 끝의 공이가 확 속의 곡식을 찧도록 돼 있습니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나오고, 그 옛날 마을 청춘남녀의 연예질 장소로도 빠지지 않은, 어느 시골 것보다 친근한 게 물레방아이지요.